Nat King Cole & Me – Gregory Porter (Blue Note 2017)

음악적 아버지 냇 킹 콜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앨범

몇 년 사이 그레고리 포터는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재즈 보컬이 되었다. 에스콰이어지(誌)와 NPR 뮤직에서는 그를 ‘미국의 차세대 위대한 재즈 보컬’로 지명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들 잡지의 기자들도 그 미래가 이리도 빨리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재 그는 자신의 솔로 활동 외에 다양한 기획 앨범에 참여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미식축구 선수로 대학시절까지 활동하다가 부상으로 그만두고 보컬의 삶을 시작했던 그가 오랜 고생 끝에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은 물론 그의 개성 강한 노래 때문이었다. 그윽한 중저음의 매력이 돋보이는 목소리로 부른 그의 노래는 감상자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었다. 음악을 듣는 대부분의 감상자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그의 노래는 그에 가장 부합되는 것이었다. 여기에 재즈와 소울을 아우르는 음악성 또한 그의 대중적 인기를 폭 넓게 해주었다. 그 결과 그는 지난 두 앨범 <Liquid Spirit>(2013)과 <Take Me To The Alley>(2016)으로 2014년과 2017년에 그레미상 최우수 재즈 보컬 앨범 부분을 수상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이 남성 보컬은 <Water>(2010), <be Good>(2012), <Liquid Spirit>(2013), <Take Me To The Alley>(2016) 등 넉 장의 앨범을 선보였다. 이들 앨범에서 그는 자작곡을 주로 노래했다. 스탠더드 곡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다섯 번째 앨범은 그렇지 않다. <Nat King Cole & Me>라는 앨범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이 냇 킹 콜이 즐겨 노래했던 스탠더드 곡들을 노래하고 있다. 계속 자작곡 중심의 활동을 할 것 같았던 그가 왜 하필 냇 킹 콜의 스탠더드 곡들을 노래했을까? 성공했으니 조금은 편안한 길을 가고 생각한 것일까?

냇 킹 콜은 재즈 보컬의 모범을 제시한 선구자의 한 명이다. 따라서 그를 주제로 앨범을 만든다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실제 많은 보컬들이 냇 킹 콜을 주제로 한 앨범을 녹음했다. 당장 생각나는 가까운 예를 들면 조지 벤슨의 2013년도 앨범 <Inspiration: A Tribute to Nat King Cole>이나 휴 콜트만의 2015년도 앨범 <Shadows: Songs of Nat King Cole> 등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레고리 포터가 냇 킹 콜을 노래한 것은 어린 시절의 추억 때문이었다. 여러 인터뷰를 통해 그는 아버지가 부재인 상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를 잘 돌보지 않았고 어머니가 그 이상의 사랑으로 그를 키웠다고 했다. 그런 중 어느 날 혼자 노래를 부르던 중 그는 어머니로부터 냇 킹 콜처럼 노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냇 킹 콜의 노래를 집중해서 듣고 따라 불렀다.

그러면서 그는 냇 킹 콜의 노래에서 일종의 부성애를 느꼈다. 늘 부재 중이었던 아버지의 자리를 부드럽고 편안한 목소리의 남성 보컬이 대신했던 것이다. 실제 그는 2004년 냇 킹 콜의 레퍼토리와 자작곡으로 이루어진 반 자전적 뮤지컬 <Nat King Cole & Me>를 통해 아버지를 대신했던 냇 킹 콜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기도 했다. 이 앨범 또한 2004년도 뮤지컬과 맥을 같이 한다.

결국 어쩌면 그레고리 포터의 첫 앨범이 되었어야 했을 지도 모르는 이 앨범은 그의 음악적 기원을 확인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실제 그는 이번 앨범을 설명하며 “내 영감의 근원, 내가 시작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죠. 그 근원은 어머니, 가스펠 음악, 그리고 냇 킹 콜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냇 킹 콜을 주제로 하면서 그레고리 포터는 보다 고전적인 사운드를 연출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 같다. 최근 각광 받는 피아노 연주자 크리스티안 샌즈, 베이스 연주자 루벤 로저스, 드럼 연주자 율리시스 오웬스 외에 빈스 벤도사가 이끄는 런던 스튜디오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것이 그렇다. 바람결처럼 부드러운 스트링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과거 넬슨 리들 오케스트라와 함께 했던 냇 킹 콜의 음악을 절로 연상시킨다. (그러고 보면 앨범 표지에서 그레고리 포터가 들고 있는 냇 킹 콜 앨범이 소편성 연주로 이루어진 <After Midnight>보다는 넬슨 리들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Night Lights>앨범이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아가 그레고리 포터의 목소리를 포근하게 감싸며 감상자가 보컬뿐만 아니라 전체 사운드에도 관심을 갖도록 이끈다.

앨범에서 그가 부른 곡들은 냇 킹 콜의 레퍼토리의 핵심이라 할만하다. 특히 “Mona Lisa”, “Smile”, “L-O-V-E”등의 곡들은 다른 많은 보컬들이 노래했어도 절로 냇 킹 콜이 연상되는 곡들이다. 또한 “Quizas, Quizas, Quizas”, “Pick Yourself Up”등도 냇 킹 콜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곡이다.

이들 곡들을 그레고리 포터는 멜로디를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노래했던 냇 킹 콜의 방식을 따라 담백하고 편안하게 노래한다. 기교보다는 곡 자체에 내재된 사랑, 평온, 낭만의 정서를 그대로 드러내려 했다고 할까? 테렌스 블랜차드의 트럼펫 솔로가 어우러진 “L-O-V-E”가 대표적이다. 냇 킹 콜이 표현했던 달콤한 사랑의 이미지를 그레고리 포터 또한 잘 표현했다. 극적인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배경으로 노래한“Miss Otis Regrets”, 앨범에서 가장 경쾌한 “Ballerina” 등의 곡도 냇 킹 콜의 노래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이번 앨범에서 그레고리 포터는 냇 킹 콜을 주제로 자신의 노래를 하려 한 것 같다. 냇 킬 콜의 영향을 받은 그의 음악적 현재를 보여주려 했다는 인상이 강하다. 사실 어린 시절에는 냇 킹 콜의 목소리를 닮았었을지 모르지만 현재 그의 바리톤 질감의 목소리는 우상보다 무게감이 크다. 그래서 분위기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Quizas, Quizas, Quizas” 가 대표적인 경우다. 냇 킹 콜은 이 곡을 라틴 리듬을 살려 경쾌하게 노래했다. 이를 그레고리 포터는 느린 템포를 바탕으로 낭만적 발라드처럼 노래한다. “Pick Yourself Up”도 마찬가지. 피아노 연주자 조지 시어링의 연주에 맞추어 감칠맛 나는 스윙감으로 젊은 댄디의 느낌을 주었던 냇 킹 콜에 비해 그레고리 포터는 그보다는 멋을 아는 중후한 신사의 느낌을 준다. “The Lonely One”은 어떠한가? 1957년 앨범 <After Midnight>에서 봉고가 이끄는 라틴 리듬, 후단 티졸의 트롬본 솔로를 곁들여 낭만적 밤 풍경을 그렸던 냇 킹 콜의 노래와 달리 그레고리 포터는 라틴 리듬을 희미하게 유지한 채 제목처럼 얼굴에 슬픔으로 가득한 외로운 사람의 초상을 그려낸다.

빈스 멘도사의 편곡도 이러한 질감의 차이를 고려한 듯 훨씬 웅장하다. 특히 “Mona Lisa”, “Smile”, “Nature Boy”등은 마치 영화의 주제 음악 같은 느낌을 준다.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사랑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절정의 순간을 상상하게 만든다.

한편 앨범의 중간에 배치된 “When Love Was King”은 앨범에서 가장 그레고리 포터다운 면을 드러낸다. 이 곡은 그의 자작곡으로 앨범 <Liquid Spirit>에서 이미 노래되었던 곡이다. 그는 이 곡을 이번 앨범에서는 냇 킹 콜처럼 시작해 이내 소울, 가스펠적인 면을 살려 그만의 극적인 분위기로 노래한다. 절규에 가까운 호소력 강한 노래는 슬픔이 아닌 냇 킹 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 아닌가 싶다. 특히 후반부의 “Do You Remember, Do You Remember When Love Was King”이라 외치는 부분은 지난 사람, 지난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한편 “I Wonder Who My Daddy Is”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냇 킹 콜의 노래에서 부성애를 느꼈던 그레고리 포터의 마음을 그대로 느끼게 해준다. 이 곡은 냇 킹 콜이 노래했던 곡도 아니고 그레고리 포터의 자작곡도 아니다. 글래디스 쉘리가 쓴 곡으로 여러 보컬들이 노래했는데 그 중에는 냇 킹 콜의 동생인 프레디 콜도 노래했던 적이 있다.

그 때문에 이 곡을 선택했다 싶은데 이 곡을 그는 앨범에서 가장 냇 킹 콜처럼 노래했다. 냇 킹 콜이라면 이렇게 노래했겠지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튼 진짜 아버지가 있음에도 부성애는 냇 킹 콜에게서 느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리듯 편안함과 씁쓸함이 어우러진 회상조의 노래가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나는 이 앨범이 그의 첫 앨범이 될 수도 있었겠다고 했다. 하지만 앨범을 듣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번 앨범은 지금 발표되는 것이 맞다. 첫 번째 앨범이었다면 자신의 음악적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보컬의 앨범으로 치부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과감하게 자작곡과 음악에 대한 넓은 포용력으로 성공한 뒤에 자신의 음악적 근원으로서의 냇 킹 콜에 대한 각별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 결과 냇 킹 콜의 위대함과 음악적 아버지의 영향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낸 그레고리 포터의 음악적 역량을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미식축구 선수의 길로 음악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성공한 아들의 감사 표현에 냇 킹 콜 또한 기뻐하고 감사하지 않을까 싶다.

2 COMMENTS

  1. take me to the alley… 지인들한테 영상 보내주니 다들 엄지척~ 한 지가 얼마전인 것 같은데..
    포터의 성장기를 알고 난 후 이 노래를 들으니 더 애틋하게 와닿는 것 같습니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을 것만 같은~!^^

    • 네. 따스하죠. 목소리가. 군고구마같이. ㅎ

      이번 앨범은 냇 킹 콜에 비해 좀 무거운 듯한 것이 부담이 될 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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