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It from the Top – Bob James (Victor 2003)

bj  필자는 지금까지 재즈에서 스타일간의 우열은 없다는 견해를 여러 글을 통해 피력해 왔다. 특히 퓨전/스무드 재즈가 스타일 그 자체로는 하드 밥이나 프리 재즈 등의 다른 스타일의 재즈와 비교 시 결코 하위 부류로 평가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을 여러 차례 펼쳤다. 그러면서 실 예로 언급하곤 했던 것이 바로 밥 제임스의 경우였다. 실제 밥 제임스는 현재 뿌리를 퓨전/스무드 재즈에 두고 있으면서도 단순히 분위기만을 강조하는 연주를 펼쳐오지 않았다. 전체 사운드의 기조가 부드러움과 편안함에 바탕을 두고 있을 뿐 연주에 있어서는 매우 훌륭한 솜씨를 지닌 연주자이다. 그리고 그 역시 재즈 연주자로서의 데뷔는 퓨전, 스무드가 아닌 전통적인 피아노 트리오 앨범을 통해서였다. 단지 현재 밥 제임스가 퓨전/스무드 재즈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그의 취향 때문일 뿐이다. 그리고 그의 퓨전/스무드 재즈 앨범들은 분위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연주도 강하게 드러난다.

이런 그가 일본의 빅터 레코드로 이적을 하면서 그 첫 번째 앨범으로 어쿠스틱 재즈 피아노 트리오 앨범을 녹음했다. 분명 이것은 뜻밖의 일이다. 왜냐하면 필자는 지금까지 연주 자체에 있어서 그 실력을 인정 받은 만큼 흔히 말하는 자존심을 위해 “나도 이러한 연주를 할 수 있다”는 시위성의 의미로 전통적인 재즈 피아노 트리오 녹음을 하기 보다는 그만의 퓨전/스무드 재즈를 지속적으로 추구해 나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앨범은 밥 제임스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전환기를 예고한다기 보다는 일종의 휴식 같은 앨범이 아닐까 생각된다. 일종의 기분 전환이랄까? 이런 이유로 이 앨범의 수록 곡 모두는 감상에 있어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다. 밥 제임스가 펼치는 연주는 코드의 보이싱에 있어서도 섬세함을 보여주면서도 그 연결에 있어서는 밥 스타일의 피아노 트리오에서 흔히 발견되는 커다란 비약을 보여주지 않는다. 매우 안정적인 진행을 보이는데 그래서 그만큼 오른손의 멜로디가 확연히 드러난다. 그리고 그가 들려주는 아기자기한 오른손 멜로디는 그의 이전 퓨전/스무드 재즈 앨범과 연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 이번 앨범은 전통적인 피아노 트리오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연주 자체의 전개에 있어서는 그의 이전 활동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삼분법에 의거한 전통적인 스윙 리듬에 집착하지 않는 면에서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위해 “Straighten Up & Fly Right”를 들어보자. 탄력적인 리듬을 통해서 재즈적인 감각을 맛볼 수 있지만 전체적인 리듬 파트의 진행은 퓨전/스무드 재즈의 패턴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배제한 어쿠스틱 퓨전/스무드 재즈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필자는 오히려 이러한 진행이 맘에 든다. 사실 자신의 현재를 버리고 다른 것을 추구하는 연주는 상당한 위험부담이 따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러한 퓨전/스무드 적인 사운드는 전통적인 재즈 외에 다양한 스타일의 재즈를 연주해온 베이스의 제임스 지니어스와 이미 밥 제임스의 두 장의 퓨전/스무드 앨범에서 인상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던 빌리 킬슨에 의해 보다 더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한편 이번 앨범의 가장 큰 특징은 매 곡마다 과거 피아노 연주자들에 대한 헌정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레드 갈란드, 냇 킹 콜, 빌 에반스, 오스카 피터슨부터 시작해서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글렌 굴드까지 다양한 연주자들이 그의 헌정 대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역시 밥 제임스는 밥 제임스다 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러한 헌정들이 단순히 과거 연주자들의 피아노 스타일을 성대모사 같은 모방이 아니라 밥 제임스만의 독자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텔로니어스 몽크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단속적이고 침묵을 강조한 연주를 펼쳤던 말 왈드론에 대한 헌정 연주인 “Soul Eyes”만 하더라도 말 왈드론의 피아노를 그대로 반영한다면 자못 심각한 연주가 나오게 마련인데 의외로 경쾌함과 밝은 면이 드러난다. 이처럼 과거 연주자의 전형을 재현하는 식의 헌정이 아니라 밥 제임스의 개인적 인상에 의거한 헌정이기에 상이한 스타일의 피아노 연주자에 대한 헌정 연주임에도 불구하고 앨범 전체는 매우 일관된 면을 보인다.

이번 밥 제임스의 뜻밖의 어쿠스틱 연주는 일본 레이블로 이적을 하면서 제작자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을 해본다. 이미 비너스 레이블의 음반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어떠한 연주자건 일본 레이블에서 녹음을 하게 되면 다소간의 차이가 있더라도 일본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연주를 들려주지 않았던가? 따라서 이번 밥 제임스의 앨범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만약 이 앨범의 아이디어가 일본 제작자로부터 나왔다면 이 역시 기발한 것이었다고 평가를 내리고 싶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면을 고수하면서도 결코 퓨전/스무드 재즈에서 느낄 수 있었던 편안함과 도시적 세련됨을 잃지 않은 연주가 나왔기 때문이다. (필자는 회의적이지만) 보통 퓨전/스무드 재즈로 재즈와 친숙해지기를 권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보다는 오히려 이번 밥 제임스의 앨범이야말로 어쿠스틱 사운드와 재즈 자체에 친숙할 수 있는 앨범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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