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키스 자렛의 음악

매년 어버이 날이 되면 나는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것과 함께 한 피아노 연주자의 생일을 혼자서 축하하며 그의 음악을 듣곤 한다. 그 연주자가 누구인가 하면 바로 피아노 연주자 키스 자렛이다. 공교롭게도 그는 1945년 5월 8일에 태어났다. 그래서 특정 연주자의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도 그의 생일만큼은 기억하고 있다.

이번 75번째에 생일을 맞아 50년째 그의 앨범을 제작해오고 있는 ECM 레이블은 2016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공연에서 연주했던 “Answer Me”를 공개했다. 솔로 콘서트의 앙코르 연주로 보이는데 공연의 본 연주를 담은 전체 앨범은 이후 발매될 것으로 보인다.

“Answer Me”를 듣는다. 푸른 하늘처럼 청명한 톤으로 담담하게 멜로디를 이어가는 키스 자렛의 연주가 무한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킨다. 냇 킹 콜이 노래해 큰 인기를 얻었던 이 곡이 원래는 아픈 실연의 이유를 신에게 묻는 내용이었기에 그랬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키스 자렛은 현존 최고의 재즈 피아노 연주자이다. 그가 최고인 것은 뛰어난 연주력만큼이나 놀라운 음악적 상상력 때문이다. 그는 앨범마다 새로움을 불어넣는다. 스타일로는 이전과 비슷할 수 있으니 그의 연주는 늘 연주하던 바로 그 당시의 “현재성”으로 가득하다.

솔로 콘서트

그 대표적인 것이 솔로 콘서트 연주다. 이 솔로 콘서트는 말 그대로 피아노 솔로로 공연하는 것이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무대에 올라간다는 것이 다르다. 무대에 올라 피아노 앞에 앉는 순간 떠오른 멜로디나, 코드 등으로 연주를 시작해 이를 확장하고 변용하며 한 시간여의 연주를 펼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솔로 콘서트 연주에는 제목이 따로 없다. 그저 공연한 장소가 제목으로 붙곤 한다.

키스 자렛의 솔로 콘서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75년 1월 독일 쾰른의 오페라 하우스 콘서트이다. 이 콘서트가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명한 것은 무엇보다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무런 준비 없이 이런 연주를 펼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연주는 마치 악보를 따라 연주한 것인 듯 완벽하다. 특히 두 개의 코드를 바탕으로 슬픔과 기쁨을 아우르는 “Part 1”의 연주는 음악의 아름다움, 그것이 주는 감동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여담이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 날의 연주가 정상적인 피아노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키스 자렛이 원했던 모델도 아니었으며 고역대가 망가진 피아노였다. 그런데 이를 극복하고 그 피아노에 맞는 음들만을 사용해 아름다운 연주를 펼친 것이다.

쾰른 콘서트를 비롯해 키스 자렛은 세계 곳곳에서 솔로 콘서트를 이어갔다. 서울에도 다녀갔다. 그 중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밀라노, 오스트리아 비엔나, 영국 런던, 스위스 로잔, 독일 브레멘, 브레겐, 뮌헨, 브라질 리우, 미국 뉴욕 등에서의 연주는 앨범으로 발매되었다.

그 가운데 주목할 앨범은 <Sun Bear Concerts>이다. 이 앨범은 1976년 11월 5일부터 18일까지 2주에 걸쳐 교토, 오사카, 나고야, 도쿄, 사포로 등 일본의 5개 도시에서 펼친 공연을 담고 있다. 원래는 이 공연 중 최고의 하나만을 앨범으로 발매하려 했는데 5개 공연 모두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뛰어나 과감히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10장의 LP 박스 앨범-CD로는 6장-으로 발매했다고 한다.

확실히 이 5개의 공연은 모두 아름답다. 키스 자렛은 재즈, 클래식, 가스펠, 블루스 등 자신에 내재된 여러 음악 스타일을 자유롭게 활용하며 침잠과 상승을 오가며 커다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역시 아무런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연주였다.

공연을 마치면 그는 관객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앙코르 연주를 하곤 한다. 이 일본 공연에서도 도쿄, 나고야, 사포로 공연에서 앙코르 연주를 했다. 이 또한 모두 즉흥 연주였다. 그 중 도쿄 공연에서의 앙코르 연주는 다시 한번 그가 멜로디를 만드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음을 보여주었다. 본 연주의 극적인 긴장을 해소하려는 듯 깊은 슬픔으로 가득한 멜로디가 다시 한번 미리 준비한 곡을 연주한 것은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너무나도 완벽하다.

150150

이후 앙코르 연주는 솔로 콘서트에서 본 연주만큼이나 색다른 기대를 품게 했다. 그 중 널리 알려진 연주가 1981년 독일 뮌헨의 헤어쿨레살(Herkulessaal, 헤라클레스 홀) 콘서트에서 연주한 “Mon Coeur Est Rouge”이다. 미셀 로지에 감독의 1977년 동명의 영화를 위해 키스 자렛 본인이 쓴 곡을 연주한 것인데 평온한 들판을 음 하나하나로 그리는 듯한 서정적 연주가 아름답다.

즉흥 연주 외에 널리 알려진 스탠더드 곡도 앙코르 곡으로 종종 연주한다. 1995년 2월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 콘서트에서 연주한 “Over The Rainbow”가 대표적이다. 주디 갈란드가 주연한 1939년도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이 주제곡을 그는 막 끝난 본 연주의 짜릿한 흥분을 정화하고 정리하듯 멜로디를 크게 변형하지 않은 연주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한편 젊은 시절 키스 자렛은 즉흥적 상상력만큼이나 활동 또한 활발했다. 한 달 사이에 여러 장의 앨범을 녹음하고 공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솔로, 쿼텟, 오케스트라 협연 등 다른 편성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 또한 시간의 흐름을 역행할 수 없었다. 50대에 접어들면서 그는 만성피로증후군으로 인해 2년간 활동을 쉬어야 했다. 이것이 그의 솔로 콘서트에 변화를 주었다. 복귀 후 그는 하나의 순간을 한 시간여 동안 지속시키는 연주가 아닌, 상대적으로 짧은 여러 즉흥 연주로 콘서트를 구성했다. 그래도 연주가 주는 새로움과 감동은 여전했다.

2006년 이탈리아 베니스의 라 페니스 극장 콘서트를 담은 앨범 <La Fenice>도 그렇다. 이 공연에서도 키스 자렛은 여전히 싱싱한 상상력으로 감상자를 음악적 황홀경으로 이끈다. 그 중 “Part IV”의 목가적인 정서는 감상자 또한 지금보다 더 평온한 공간을 꿈꾸게 한다.

키스 자렛은 콘서트 홀이 아닌 스튜디오에서도 솔로 연주를 녹음하곤 했다. ECM에서의 첫 앨범 <Facing You>만 해도 솔로 스튜디오 연주였다. 이 외에 <G.I. Gurdjieff: Sacred Hymns>, <Staircase> 등 몇 장의 스튜디오 솔로 앨범이 있다.

집에 마련한 작은 스튜디오에서도 솔로 앨범을 녹음하기도 했다. 1998년에 녹음된 앨범 <The Melody at Night, with You>가 대표적이다. 이 앨범은 만성피로증후군으로 활동을 쉬다가 복귀 가능성을 살피려고 혼자서 녹음 버튼을 누르고 연습하듯이 녹음한 것이다. 그런데 스탠더드 곡들을 사랑하는 사람을 다루듯 조심스레 연주한 결과가 너무나 좋았다. 당시 아내였던 로즈 안에게 바친다는 앨범 내지에 담긴 문구처럼 모든 연주는 정겨웠고 따스했다.

트리오 연주

키스 자렛은 트리오 연주로도 유명하다. 초기 시절부터 그는 찰리 헤이든(베이스), 폴 모션(드럼)과 트리오를 이루어 연주하곤 했다. ECM 레이블의 제작자 맨프레드 아이허도 트리오 앨범 녹음을 먼저 제안했다. 하지만 솔로 연주에 더 관심이 많았던 키스 자렛의 의도에 따라 트리오 앨범은 1983년이 되어서야 녹음되었다.

1983년 1월 11일과 12일 키스 자렛과 베이스 연주자 게리 피콕, 드럼 연주자 잭 드조넷은 뉴욕의 파워스테이션 스튜디오에 모였다. 서로 알고는 있었지만 앨범 녹음을 위한 연습은 하지 않은 상태였다. 무엇을 연주할지 정하지도 않았다. 그 자리에서 연주할 곡을 정해 연주했다. 그리고 3곡은 키스 자렛의 자작곡을 연주했다. 그렇게 하루하고 반나절간 앨범 석장 분량의 연주가 녹음되었다.

이들 녹음은 정리되어 <Standards Vol. 1>, <Standards Vol. 2>, <Changes>로 발매되었다. 그 중 스탠더드 앨범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실 뒤늦게 키스 자렛이 트리오 편성으로 스탠더드 곡을 연주하기로 한 것은 당시 젊은 재즈 연주자들이 개성을 표현하겠다는 이유로 스탠더드 곡을 멀리하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스탠더드 곡이 그 동안 수많은 연주자들에 의해 수 없이 연주되었지만 여전히 연주자들에 새로운 영감을 주고 새롭게 연주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런 그의 의도대로 트리오의 연주는 훌륭했다. 키스 자렛을 중심으로 세 연주자는 널리 알려진 스탠더드 곡들을 재즈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새롭게 연주했다. 세 연주자의 유기적인 호흡도 훌륭했다. 피아노의 화려한 솔로 외에 베이스는 베이스대로 드럼은 드럼대로 자유로이 움직이며 주어진 역할 이상의 존재감으로 트리오 연주를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과거 빌 에반스가 꿈꾸었던 트리오의 이상적 현현이라 할만했다. 평자들이 이 트리오를 스탠더드 트리오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후 트리오는 키스 자렛의 솔로 콘서트처럼 공연을 하고 이를 앨범으로 발매하는 식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그 가운데 1986년 7월 독일 뮌헨 필하모니 홀 공연을 담은 <Still Live> 앨범은 이 트리오가 지닌 음악적 정수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여기서 세 연주자는 잘 알려진 스탠더드 곡들을 환상곡처럼 확장하여 완벽히 새로운 곡으로 탈바꿈한 연주를 펼쳤다. 그리고 “When I Fall In Love” 같은 곡에서는 트리오만의 서정성을 드러냈다.

과거를 새롭게 연주하려는 트리오의 시도는 1989년 쾰른 필하모니 홀 공연을 담은 앨범 <Tribute>를 통해 재즈의 역사를 빛낸 연주자들에 대한 헌정으로도 연결되었다. 이 앨범에서 트리오는 빌 에반스, 소니 롤린스, 리 코니츠, 짐 홀, 낸시 윌슨, 존 콜트레인, 찰리 파커 등 재즈사의 위대한 인물을 향해 스탠더드 곡을 하나씩 골라 연주했다.

트리오의 모든 연주는 훌륭했다.  밤 하늘의 별처럼 영롱한 피아노 톤과 명징한 베이스, 공간을 파고드는 드럼의 어울림은 지난 시대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넘어 현재를 낭만적으로 만들었다. 그 가운데 존 콜트레인을 향한 “It’s Easy To Remember”는 트리오의 낭만적 매력의 정점이라 할만했다.

한편 뉴욕의 블루노트 클럽에서 1994년 6월 3일부터 5일까지 하루에 두 차례씩 가졌던 공연을 담은 6장의 CD로 구성된 앨범 <Keith Jarrett At The Blue Note>는 순간의 감흥에 따라 연주를 다르게 하는 트리오의 모습을 제대로 맛보게 했다. 세 연주자는 같은 곡을 여러 차례 연주하면서도 다르게 연주했으며 때로는 이를 보다 자유로이 확장하여 완전히 다른 곡으로 바꾸어 버리기도 했다.

활동을 거듭할수록 현존 최고로서 트리로의 입지는 굳어졌다. 키스 자렛의 솔로 콘서트만큼이나 트리오의 공연은 그 자체로 역사를 만들어나갔다. 키스 자렛이 만성피로증후군으로 인해 쉬었다가 복귀한 후인 1999년 7월에 있었던 프랑스 파리 팔래 데 콩그레 공연을 담은 앨범 <Whisper Not>이 이듬해 발매되었을 때 프랑스 국영 라디오가 24시간 전체를 키스 자렛의 연주로만 채웠던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이 앨범은 키스 자렛의 건강을 확인하게 해주는 한편 트리오의 레퍼토리가 버드 파웰, 델로니어스 몽크 등 재즈 명인들이 직접 쓴 곡들-역시 스탠더드 곡으로 자리잡은-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주었다. 1956년 2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비운의 트럼펫 연주자 클리포드 브라운이 쓴 “Sandu”도 그 중 하나였다.

매번 신선함을 잃지 않은 연주였기에 트리오의 활동은 영원할 것 같았다. 그러나 연주자의 노화는 어쩔 수 없었다. 베이스 연주자 게리 피콕이 건강의 이유로 장거리 이동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2014년 활동을 멈추었다.

쿼텟과 기타 연주들

솔로와 트리오 활동 외에 키스 자렛은 다양한 편성의 활동을 했다.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로서 솔로와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모차르트, 바흐, 헨델, 쇼스타코비치 등을 연주하는가 하면 교회 오르간으로 즉흥 연주를 하기도 했다. 작곡가로서도 오케스트라 협연 곡을 쓰기도 했으며 집에서 피아노 외에 기타, 색소폰, 각종 민속 악기 등을 오버 더빙으로 홀로 연주하고 녹음해 앨범을 만들기도 했다.

그래도 그 가운데 솔로와 트리오 연주만큼 지속성을 띄었던 것은 쿼텟 연주였다. 리더로서 활동 초기부터 키스 자렛은 찰리 헤이든, 폴 모션이 함께 한 기존 트리오에 색소폰 연주자 듀이 레드맨을 합류시켜 쿼텟 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 쿼텟은 이국적이고 원초적인 성향의 연주를 즐겼다. 이를 위해 키스 자렛은 피아노 외에 소프라노 색소폰과 타악기를 직접 연주하기도 했다.

이 쿼텟은 1970년대 초반에 활동했다. 그 중 1976년에 녹음된 쿼텟의 마지막 앨범 <Bob-be>에 담긴 “Silence”는 쿼텟의 보기 드문 서정성이 발현된 곡이다.

이 쿼텟은 키스 자렛이 미국 연주자들과 함께 했다고 해서 아메리칸 쿼텟으로 불린다. 이와 별개로 키스 자렛은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색소폰 연주자 얀 가바렉, 베이스 연주자 팔레 다니엘손, 드럼 연주자 욘 크리스텐센이 함께 한 쿼텟을 결성해 활동했다.

유럽 연주자와 함께 했다고 해서 유러피안 쿼텟이라 불리는 이 쿼텟은 유럽의 클래식과 포크 음악의 요소를 받아들여 아메리칸 쿼텟과는 다른 질감의 연주를 펼쳤다. 특히 북유럽의 냉랭한 정서를 담은 얀 가바렉의 색소폰은 그룹의 개성을 살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약 6년간 활동했지만 유러피언 쿼텟은 그리 많은 앨범을 남기지 않았다. 그래도 1977년에 녹음된 앨범 <My Song>은 쿼텟은 물론 키스 자렛을 대표하는 앨범의 하나로 남았다. 앨범에서 쿼텟은 자유로운 연주와 키스 자렛이 만든 예쁜 멜로디를 부각시킨 연주를 고르게 했다. 그 가운데 정감 있는 멜로디를 지닌 “My Song”, “Country”, “Journey Home”은 앨범이 보다 폭 넓은 인기를 얻게 했다. 특히 국내에서도 구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My Song”은 여러 연주자가 연주하면서 점차 스탠더드 곡이 되어가고 있다.

키스 자렛은 음악적 상상력도 뛰어났지만 이를 구현하는 실행력 또한 뛰어났다. 2007년 베이스 연주자 찰리 헤이든과 듀오로 앨범을 녹음한 것도 그런 경우였다. 언급했던 것처럼 찰리 헤이든은 키스 자렛의 초기 트리오와 쿼텟 멤버였다. 그러나 이후 30년간 두 사람은 함께 할 기회가 없었다.

그런 중 2007년 키스 자렛은 찰리 헤이든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에 들어갈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자신의 집에서 인터뷰를 마친 키스 자렛은 이에 그치지 않고 찰리 헤이든에게 오랜만에 연주나 한번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30년만의 협연이었지만 결과는 매우 훌륭했다. 두 연주자는 반가움, 정겨움을 담아 스탠더드 곡을 연주했다. 드럼의 부재를 상상하기 어려운 충만한 연주였다. 이 연주는 <Jasmine>과 <last Dance>로 정리되어 발매되었다.

이렇게 거칠게나마 키스 자렛의 음악을 정리해 보았다. 사실 그의 모든 앨범은 어느 것을 들어도 다 만족스럽다. 그래서 대표작을 따로 정리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그래도 혹 그를 아직도 모르는 감상자들이 있다면 보다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앨범을 선정해 언급해보았다. 아울러 언급한 앨범 중 특정 곡들을 모아 플레이리스트로 소개해본다. 순서대로 감상한다면 지루하지 않게 키스자렛의 음악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이후 발매될 키스 자렛의 새 앨범에도 관심을 가져보길 바란다. 솔로 콘서트로 활동 폭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그의 연주는 신선하고 아름다우니 말이다.

2 COMMENTS

  1. 글 잘 읽었습니다. 얼마 전 애플뮤직 재즈 장르칸을 보니 Answer Me가 인기 트랙 1위더군요. 이러나저러나 여전히 재즈계의 슈퍼스타인 모양입니다. 이번 주 노동요는 아무래도 키스 자렛으로 채워 봐야겠어요.

    덧) 아메리칸 쿼텟 설명에서 듀이 레드맨을 조슈아 레드맨으로 잘못 쓰신 것 같습니다.

    • 고맙습니다. 재즈계의 슈퍼스타가 맞죠. 다만 그래미에서 홀대 받을뿐이죠. ㅎ

      그나저나 무의식적으로 아버지 이름 대신 아들 이름을 적었네요. 수정하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