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Goes On – Carla Bley (ECM 2020)

Life Goes On – Carla Bley (ECM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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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 블레이는 이제 그녀를 대표했던 빅 밴드 연주는 물론 중규모 편성의 활동까지 뒤로 하고 트리오 활동에 집중하려는 것 같다. 2013년의 <Trios>, 2015년의 <Andando el Tiempo>에 이어 다시 트리오 앨범을 선보이니 말이다. 그녀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슬픈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올 해 우리 나이로 82세가 되었음을 생각하면 그에 걸맞은 처신이기도 하다.

그녀가 여러 편성 가운데 트리오를 선택한 것은 편성의 단출함이 주는 용이함과 함께 한 연주자와의 호흡 때문이라 생각한다. 색소폰 연주자 앤디 쉐퍼드, 일렉트릭 베이스 연주자 스티브 스왈로우 그리고 칼라 블레이 자신의 피아노로 이루어진 이 트리오는 1994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칼라 블레이의 다른 편성의 연주에서도 함께 했다.) 그만큼 다른 편성의 밴드보다 오랜 역사 그에 걸맞은 호흡을 지닌 것이다.

칼라 블레이 트리오는 편성의 독특함만큼이나 여타 트리오와는 차별화된 개성을 지녔다. 베이스가 리듬 부분만을 담당하지 않고 적극 솔로 연주에 가담한다는 것, 대신 피아노가 한발 뒤로 물러나 여백 많은 연주로 전체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즉흥 연주를 허용하면서도 실내악적인 울림에 공을 들인다는 것이다. 정돈된 하나의 덩어리로서의 트리오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다.

트리오의 이러한 특성은 칼라 블레이가 피아노 연주자 이전에 작곡가, 편곡가 그리고 밴드 리더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작곡 단계에서부터 구체적인 음악적 이미지가 있고 이것이 연주를 통해 구현되는 것에 연주 이상으로 관심을 둔다. 이를 위해서는 함께 하는 연주자들 또한 그녀의 음악을 잘 이해하고 신뢰를 주어야 할 것이다.

2019년 5월, 이전 앨범에 이어 다시 스위스 루가노에서 녹음된 이번 앨범에서도 그녀는 자작곡으로 앨범을 채웠다. 그것도 모자라 앨범 녹음 이전 수 많은 공연에서 연주하여 보다 탄탄한 호흡을 갖추었다. 그래서 세 연주자 각각의 연주적 자유를 바탕으로 곡 자체의 아름다움이 돋보이게 되었다.

앨범에 담긴 10곡은 서너 곡으로 나뉘어 “Life Goes On”, “Beautiful Telephone”, “Copycat” 이렇게 세 개의 조곡을 구성한다. 그 가운데 그녀가 건강 이상을 극복한 후에 썼다는 “Life Goes On”은 앨범 타이틀에 걸맞게 이 트리오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블루스 형식을 따르고 있음에도 블루스 곡에서 발견되는 끈끈함보다는 담백함이 돋보이는 타이틀 곡이 특히 그렇다. 이 곡에서 세 연주자는 충분한 여유를 두고 블루스를 따라 기분 좋게 움직인다. 그것이 서로 말 없이 몇 시간을 같이 있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오랜 친구들을 떠올린다. 덤덤하지만 편안한 세 연주자의 어울림은 그대로 이 트리오의 실내악적인 면모를 설명한다. 또한 탕고 리듬을 차용했으면서도 그와는 다른 분위기를 지닌 네 번째 곡 “And Then One Day”에서는 그녀의 지난 시절의 음악을 연상시키면서도 보다 정돈된 분위기로 시간의 흐름과 이를 제대로 받아들인 그녀의 현재를 보여준다.

두 번째 조곡 “Telephone Line”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서 영감을 받아 썼다고 한다. 이전에도 그녀는 미국적인 요소를 유쾌하게 표현하곤 했다. 하지만 세 곡으로 이루어진 이 조곡은 그렇지 않다. 미묘한 변화가 재치 있지만 어딘가 활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녀의 눈에 비친 트럼프 체제의 미국이 그렇다는 것일까? 그것이 그녀가 백악관의 주인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세 번째 조곡 “Copycat”의 주제는 음악적이다. 서로가 서로의 연주에 반응하며 곡을 완성해가는 과정이 주제이다. 그에 걸맞게 세 연주자는 상대를 먼저 생각하고(After You), 리더를 따르며(Follow The Leader) 서로의 연주에 반응하며(Copycat) 앞으로 나아가는 연주를 펼친다. 그래서 트리오의 실내악적 재즈의 진수를 맛보게 한다. 그럼에도 전체 사운드가 차분히 정돈된 모습을 보이는 것 또한 매력적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분위기나 주제를 제외하고 그녀와 트리오의 이전 앨범과 그리 다른 면이 없어 보일 것이다. 그렇다고 진부하다는 느낌 또한 주지 않는다. 어쩌면 그리 다르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음악을 통해 그녀는 삶은 연속이지 단절이 아님을 보여주려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삶은 지속된다. 그녀의 음악 또한 그럴 것이다.

2 COMMENTS

  1. 개인적으로 힘든일 겪고 기운받으려고 왔는데 칼라블레이 신보가 똭! 게다가 앨범 타이틀보고 약간의 소름과 뭔지모를 뭉클한 위로를 받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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