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 – 남경윤 (Jnam Music 2019)

남경윤의 지난 9년의 음악적 삶을 정리한 앨범

반갑다.

피아노 연주자 남경윤으로부터 새로운 앨범을 준비했다는 뜻 밖의 전화를 받았을 때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9년 만의 새 앨범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2005년 존 남(John Nam)이란 이름으로 <Energy And Angular Momentum>을 발표한 이후 그는 <No Regrets>(2007), <Into A New Groove>(2008) 그리고 <Trio>(2010)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앨범 활동을 했다. 그러다가 돌연 9년간 새 앨범 소식이 없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대구에 정착하여 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교수이자 한 가정의 남편과 아빠로서의 삶, 그러니까 생활인으로서 남경윤의 삶에 보다 충실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이 기간 동안 그가 음악과 유리된 삶을 살았다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앨범을 기획하고 녹음할 여유가 부족했을 뿐 연주 활동은 꾸준히 했다. 무엇보다 삶이 특별한 감흥을 줄 때마다 곡을 쓰곤 했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에 담긴 8곡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 자작곡들로 인해 나는 이번 앨범을 남경윤의 지난 9년간의 삶의 요약으로 이해한다. 물론 이전 앨범들에도 그는 자작곡을 선보이곤 했다. 그러나 전 곡을 자작곡으로만 채운 적은 없었다. 보컬의 힘을 빌린 곡도 없다. 또한 남경윤에 따르면 9년간 작곡한 여러 곡들 중에 각 해를 대표하는 9곡을 골라 연주할까 생각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음악에 담긴 그의 지난 9년은 어떤 것이었을까? 무엇보다 긍정과 낙관의 삶이 아니었나 싶다. 마냥 좋았던 일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있다. 남경윤의 경우 좌절, 불안보다는 인정, 희망으로 삶의 굴곡을 받아들인 것 같다. 두 번째 곡 “The Great Storm”이 대표적이다. 폭풍이 몰아쳤던 한 여름 밤을 그린 이 곡은 폭풍이라는 무섭고 압도적인 이미지를 매우 밝고 경쾌하게 표현했다. 그렇다고 폭풍에 굴하지 않고 나아가는 인간승리 식의 극적으로 표현하지도 않았다. 안정적인 장소에 굳건히 발을 딛고 거친 바람이 불고 굵은 비가 쉴 새 없이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으로 연주했다. 창 밖은 폭풍이 몰아치는데 실내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갖는 느낌이랄까? 긴장을 머금은 테마는 이내 남경윤의 오밀조밀한 솔로로 부드럽게 이완된다.

“Waiting Again”도 마찬가지다. 지루한 기다림을 주제로 한 이 곡을 남경윤은 3박자의 살랑거리는 왈츠 리듬으로 표현했다. 그 결과 테마에 담긴 우수는 달콤함을 띈다. 이러한 달콤함은 “Sleepless Nights”에서도 이어진다. 이 느린 발라드 곡에서 남경윤은 낮의 일을 되짚어보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골몰하기도 하는 불면의 밤을 테마 근처를 맴도는 솔로로 표현했다. 하지만 그 불면에는 잠을 자지 못한 것에 대한 괴로움은 없다. 온전한 나로서 고독한 시간을 즐기는 충만이 있을 뿐이다. 

한편 앨범에는 연주자로서 자신을 돌아보고 또 내일을 꿈꾸는 남경윤의 마음 또한 담겨 있다. 아리 호닉의 펑키한 드럼 연주로 시작하는 타이틀 곡 “J.A.M”이 그런 경우다. 여기서 “J.A.M”은 “Just About Music”의 약자로 미국 코넬 대학시절 그가 살았던 기숙사를 말한다. 남경윤은 이 곳에 마련된 무대에서 여러 다양한 성형의 연주자들과 연주하며 음악적 역량을 키웠다 한다. 이 외에도 그는 대학원 시절 미시건과 뉴욕에서 잼 세션을 이끌기도 했다. 따라서 이 곡의 제목은 말 그대로 “잼(Jam)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것은 곧 재즈의 즉흥, 만남을 통한 새로움의 창출을 의미한다. 앨범의 마지막 곡“Nostalgia in New York” 또한 뉴욕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대한 추억을 담고 있다. 그 추억을 그는 매우 역동적이고 밝은 분위기로 표현했다.

이를 보면 지난 9년간 남경윤은 조금 더 음악 자체에 매진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한 자신의 상황을 안타까워했던 것 같다. 뉴욕의 삶과 대구의 삶을 비교하며 음악적 갈증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돌아갈 수 없는 과거만 그리워하지는 않았다.  4분의 5박자의 뒤뚱거리는 리듬의 “The Next Step”을 통해 그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런데“The Great Storm”처럼 다소 극적일 수 있는 주제임에도 그의 연주는 매우 평화롭고 여유롭다. 이것은 그가 몽상적인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연속으로서의 미래를 꿈꾸고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의 연주를 지속하고 그 반복 속에서 새로움을 이끌어 내려 함을 생각하게 한다. (이번 앨범은 그 첫 결과물일 것이다.)

이번 앨범이 지난 앨범에 이어 다시 트리오 편성을 취하고 있는 것도, 비록 조합 자체는 처음이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앨범에서 함께 했던 드럼 연주자 아리 호닉, 네 번째 앨범에서 함께 했던 베이스 연주자 벤 윌리엄스와 함께 한 것도 9년 사이의 변화만큼이나 연속성도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 사이 이 사이드 맨들의 세계적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실제 이번 앨범에서도 그는 지난 앨범들에서처럼 차분하고 사려 깊은 연주를 펼쳤다. 최대한 빨리 풀어야 좋은 수학 게임을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The Speed Game”에서조차 그의 연주는 속도에 매몰되지 않는다. 지적(知的)인 연주라 할까? 나아가 선이 분명하고 감성적이면서도 어느 순간 감상자의 예상을 벗어난 음의 선택으로 긴장을 살짝 만들어 내곤 하는 솔로는 이제는 그만의 것이라 할 만큼 개성적이다. 단맛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톡 쏘듯 새콤한 맛이 올라온다.

이번 앨범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은 첫 곡 “Fireflies”이다. 남경윤과 오랜 만의 만남을 알리는 이 첫 곡은 동남아 여행 중 보았던 반딧불이의 신비로운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사진보다는 영상에 가깝다. 반딧불이가 반짝이는 밤의 포괄적 모습이 아니라 각각의 반딧불이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다른 템포로 빛을 내는 세부적인 모습이 펼쳐지는 음들로 구성된 인트로와 강약의 조절 등을 통해 입체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 결과 밤의 신비로움은 그에 대한 남경윤의 경이감(驚異感)으로 연결되고 이것은 다시 감상자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우리는 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 그래서 이를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실제 신생은 꼭 그렇게만 흐르지 않는다. 때로는 그냥 삶의 파도에 나를 맡길 필요도 있다. 그러다 보면 신기하게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이어갈 기회가 다시 온다. 목적지에 대한 의지만 잃지 않는다면 말이다.

남경윤의 이번 앨범은 지난 9년의 기다림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그 시간이 더 좋은 음악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이 모두 그가 열심히 주어진 삶을 살았고, 그 삶이 주는 소소한 행복, 깨달음을 지나치지 않고 꾸준히 악보에 옮긴 결과이다. 즉, 일상을 음악으로 생각하고 정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그가 다른 누구보다 음악적 삶을 살았음을 의미한다.

이제 그의 삶이 앨범에 담겨 우리에게 건네졌다. 우리의 삶을 음악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댓글

KOREAN JAZZ

Princess Bari – 임미성 Quintet (Kang & Music 2009)

 재즈 보컬 임미성은 원래 성악을 전공했다가 뒤늦게 재즈의 매력에 빠져 2003년 프랑스로 건너가 재즈를 공부했다고 한다. 이러한 클래식적 소양과 프랑스에서의 경험은 많지는 않지만 국내의...
video

On Voyage – Easternmost (Easternmost 2016)

참 흥미로운 앨범이다. 이스턴모스트는 색소폰, 트럼펫의 브라스 섹션과 스트링 앙상블, 기타, 키보드, 베이스, 드럼, 타악기, 그리고 판소리 보컬 등 독특한 편성의 15인조 빅밴드 아니...

CHOI'S CHOICE

Night Lights – Gerry Mulligan (Verve 1963)

  제리 멀리건의 황금 시대는 분명 1950년대 초였다. 당시 그는 쳇 베이커와 함께 피아노가 배제된 퀄텟을 결성해 보다 자유로운 솔로와 그의 바리톤 색소폰과 쳇...

최신글

Solo Piano – Lewis Porter (Next To Silence 2018)

루이스 포터는 피아노 연주자이지만 대학에서 재즈사를 강의하고 재즈사 전반은 물론 레스터 영, 존 콜트레인에 관한 뛰어난 책을...

When Will The Blues Leaves – Paul Bley, Gary Peacock, Paul Motian (ECM 2019)

맨프레드 아이허가 다시 ECM의 창고를 뒤져 묵혔던 명연을 꺼냈다. 바로 피아노 연주자 볼 블레이, 베이스 연주자 게리 피콕, 드럼 연주자 폴...

Infinity – Tom Harrell (High Note 2019)

트럼펫과 플뤼겔혼을 연주하는 톰 하렐은 앨범마다 뛰어난 연주력은 물론 정교한 작곡, 편곡 능력을 드러내며 머리와 가슴 모두에서...

J.A.M – 남경윤 (Jnam Music 2019)

반갑다. 피아노 연주자 남경윤으로부터 새로운 앨범을 준비했다는 뜻 밖의 전화를 받았을 때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Anthem – Madeleine Peyroux (Blue Note 2019)

재즈 뮤지션은 늘 새로움을 지향한다. 그것은 타인과 나의 비교가 아닌 나의 과거와 현재의 비교를 통해 이루어지곤 한다. 이것은 나만의 스타일이라 할 수 있는 익숙함과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하는 신선함이 공존할 수 있게 해준다. 게다가 과거와 현재의 시간차가 클수록 그 비교는 깊어지고 익숙함과 신선함의 공존은 더욱 매력적이 되곤 한다.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다. 이번 앨범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아련하고 포근한 목소리로 재즈와 포크 그리고 프랑스 샹송을 가로지르며 노래했다. 그리고 이러한 익숙함 위에 새로운 요소를 가미했다. 그 새로움의 핵심은 자신의 내면에서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는 것에 있다. 그녀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었던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의 혼란을 보고 이번 앨범을 기획했다. 알려졌다시피 당시 미국 대통령 선거는 다른 어느 때보다 후보간의 대립이 심했으며 스캔들에 가까운 다양한 뉴스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미국인들은 물론 이를 지켜보는 세계인들을 혼란에 빠트렸다. 그녀 또한 일련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자신의 관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렇다고 정치인처럼 남에게 설교하듯 이야기할 수는 없는 법. 대신 그녀를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음악을 사용하기로 했고 그것이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이 된다. 한편 사회적인 주제였기 때문일까? 보다 설득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