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y – Tom Harrell (High Note 2019)

Infinity – Tom Harrell (High Note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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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펫과 플뤼겔혼을 연주하는 톰 하렐은 앨범마다 뛰어난 연주력은 물론 정교한 작곡, 편곡 능력을 드러내며 머리와 가슴 모두에서 감상자를 매혹시켜왔다. 이것은 그가 호레이스 실버, 필 우즈, 조 로바노 등 소규모 콤보 밴드만큼이나 스탄 켄튼 오케스트라, 우디 허먼 빅 밴드, 코니츠 노넷 등 연주와 함께 편곡의 묘미를 살린 밴드에서 활동하면서 형성된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한편 그는 1980년대 중 후반 리더 활동을 시작한 후 주로 퀸텟 편성의 연주를 즐겼다. 그리고 꾸준히 자신의 워킹 밴드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물론 다른 편성의 연주도 있었지만 이 또한 상당수는 기존 퀸텟을 기본으로 이를 확장하거나 축약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퀸텟 연주에서도 그는 화려한 기교의 솔로 연주와 함께 그 바탕으로 아름다운 멜로디, 절묘한 코드 진행, 그리고 앙상블의 농밀한 조화로 이루어진 작, 편곡 능력을 드러내곤 했다.

이번에 새로이 선보인 앨범 <Infinity>도 톰 하렐의 뛰어난 작, 편곡 능력과 그를 포함한 다섯 연주자의 연주력 모두를 맛보게 해준다. 먼저 이번 앨범을 위해 그는 색소폰 연주자 마크 터너, 기타 연주자 찰스 알투라, 베이스 연주자 벤 스트릿, 드럼 연주자 조나단 블레이크와 퀸텟을 이루었다. 이 연주자들과 퀸텟을 이룬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이 연주자들은 각각 그와 함께 연주했던 적이 있다. 즉, 신선하면서도 익숙한 편성인 셈이다.

이 익숙한 새로운 편성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톰 하렐은 물론 참여 연주자 개개인의 개성은 물론 하나의 덩어리를 이룬 그룹의 연주 모두가 짜릿한 희열을 준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The Fast” 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여기서 다섯 연주자들은 제목처럼 마하의 속도에 도전하는 듯한 조나단 블레이크의 드럼 연주를 배경으로 빠르게 연주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연주자들의 대열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는다. 2인 3각 아니 5인 6각 달리기를 하듯 어깨동무를 단단히 한 채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엄밀히 보면 드럼을 제외하고는 모든 연주자들이 그렇게 빠르다는 느낌을 주지도 않는다. 여유를 갖고 연주한다는 느낌을 준다. 이것은 사실 각 연주자들이 잰 몸놀림을 하지만 하나의 지점에서 맴도는 연주, 제자리 뛰기 같은 연주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작, 편곡의 힘이 드러난다. 톰 하렐의 작, 편곡은 연주자들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그 자유가 곡 안에서 머물게 하는 강한 인력(引力)을 발휘한다. 그리고 이 인력은 명확한 주제에 기인한다.

이번 앨범을 위해 톰 하렐이 쓴 곡들은 “희망”, “대관식”, “포크송”, “파랑”, “땅”, “섬”, “황소자리” 등간결한 제목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즉물적이다 싶을 정도로 곡의 이미지를 명확히 반영한다. 이를테면 “희망”에서는 희망이, “대관식”에서는 왕이 자리에 오르는 장면이, “땅”에서는 단단한 토지의 질감이, “파랑”에서는 그 색의 신비가 그려지고 느껴진다. 그런 이유로 곡의 제목으로 정했겠지만 음악이 대상 그 자체인 듯한 느낌을 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것은 다시 감상의 관심을 연주로 돌린다. 작곡, 편곡 과정에서 기획된 이미지를 톰 하렐을 중심으로 한 참여 연주자들이 연주를 통해 충실히 반영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Blue”의 경우 곡에 담긴 밤 하늘 같은 푸른 이미지는 톰 하렐의 트럼펫과 마크 터너의 색소폰이 겹쳤다가 펼쳐지는 연주가 없었다면, “The Isle”에서의 이상향적 신비로움은 마크 터너의 색소폰과 찰스 알투라의 기타 사이의 미묘한 화학작용이 없었다면, “Ground”에서의 단단한 질감은 벤 스트릿의 베이스와 조나단 블레이크의 굳건한 움직임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 앨범의 미덕은 톰 하렐의 작, 편곡과 다섯 연주자 모두의 훌륭한 연주를 넘어 그 둘이 분리되지 않고 상보적 관계를 이루며 “음악”을 만들어낸다는 것에 있다. 따라서 톰 하렐이 앨범 타이틀을 실제 곡으로는 없는 “무한”으로 정한 것도 이렇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동경 가득한 추상적 개념을 지향하지 않고 안과 밖이 맞물린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주와 작, 편곡이 동등한 입장에서 어울려 자기완결적인 음악을 지향하는 것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이 앨범은 톰 하렐의 애초의 머리 속에 있던 음악의 완벽한 구현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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