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 르그랑(Michel Legrand 1932.02.24 ~ 2019.01.26)

영화 음악가 이전에 재즈 연주자였던 미셀 르그랑

2019년 1월 26일 미셀 르그랑이 세상을 떠났다. 만 87세 생일을 약 한 달을 앞 둔 날이었다. 사인은 패혈증. 세상을 떠나기 2주 전부터 폐 감염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는 영화 음악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실제 그는 60년 이상 영화 음악 작곡가로 활동하며 <셀부르의 우산>(1964)을 비롯해 <로슈포르의 아가씨들>(1966),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1968), <42년의 여름>(1971) <옌틀>(1983), <패션쇼>(1994) 등 수 많은 영화의 음악을 작곡했다. 그리고 그 활동은 현재까지 이어졌다. 2018년만 해도 그는 <나는 알버트를 잃었다>와 <바람의 저편>의 영화 음악을 작곡했다. 정말 쉼 없는 삶이었다. 그 결과그는 아카데미상에 13번 후보에 올라 3개의 상을 수상했고 그래미상에 17번 후보에 올라 5개의 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내가 그의 명복을 빌며 추모의 글을 쓰는 것은 영화 음악가로 그가 남긴 성과 때문은 아니다. 그가 뛰어난 재즈 작, 편곡자, 빅 밴드의 리더 그리고 피아노 연주자였기 때문이다. 1932년 2월 24일에 태어난 그는 11세에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에 입학해 작곡과 피아노 부분을 수석으로 졸업할 정도로 오랜 시간 클래식 수업을 받았지만 그 전부터 스스로 피아노를 독학하고 멜로디를 먼저 쓰고 화성을 찾는 식으로 작곡을 하는 등 자유로운 음악적 기질을 보였다. 특히 1948년 그러니까 그의 나이 17세에 보았던 디지 길레스피 빅 밴드의 공연은 그에게 재즈 연주자를 꿈꾸게 했다.

 그러나 운명은 그를 이지 리스닝 작,편곡가의 삶을 먼저 시작하게 했다. 1954년 <I Love Paris>를 시작으로 그는 음반사 제작자의 주문에 맞추어 프랑스 혹은 라틴의 감성으로 편곡해 연주한 오케스트라 앨범을 녹음했다.

재즈 앨범을 녹음할 기회는 1959년이 되어서야 찾아왔다. 그는 마일스 데이비스를 비롯해 존 콜트레인, 벤 웹스터, 빌 에반스, 도날드 버드, 아트 파머 등 당대 최고의 재즈 연주자들 수십 명과 함께 앨범 <Legrand Jazz>를 녹음했다. 여기서 미셀 그르랑은 기존 이지리스닝 음악의 편곡을 통해 연마한 편곡 실력으로 스탠더드 곡들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했다.

나는 미셀 르그랑이 이 앨범을 계기로 계속 재즈 연주자의 길을 걸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특히 그 무렵 마일스 데이비스는 길 에반스와 협력해 <Porgy & Bess>같은 빅 밴드 앨범을 녹음하고 있었다. 그래서 만약 미셀 르그랑이 트럼펫 연주자와 조금 더 의기투합했다면 길 에반스를 대신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1975년 색소폰 연주자 필 우즈와 함께 한 앨범 <Images>로 그래미상 최우수 연주 음악 작곡 부문과 빅 밴드 연주 부문의 상을 수상한 것을 생각하면 그 결과는 분명 매우 훌륭했을 것이다.

한편 1959년 그는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자신을 담은 트리오 앨범 <Paris Jazz Piano>를 녹음하기도 했다. 앨범 타이틀처럼 파리를 주제로 한 곡들을 연주한 것으로 여기서 그는 재즈의 전통에 클래식적인 정갈함과 프랑스적인 낭만을 곁들인 연주로 색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이 또한 그가 재즈 연주자로서 활동을 지속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한다.

이후에도 그는 바이올린 연주자 스테판 그라펠리와 함께 한 앨범 <Michel Legrand / Stephane Grappelli>(1992)를 비롯해 재즈 앨범을 간간히 발표했다. 그 또한 매우 훌륭했다. 한편 그가 영화를 위해 썼던 곡들 중 “What Are You Doing The Rest Of Your Life?”, “The Windmill Of Your Mind”, “You Must Believe In Spring” 등은 스탠더드 재즈 곡이 되어 지금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나는 그가 영화 음악가로만 기억되는 것이 나는 안타깝다. 그래서 재즈 작곡가, 빅 밴드의 리더,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미셀 르그랑의 사망에 대해 다시 한번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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