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ar East Quartet – 손성제 (ECM 2018)

색소폰 연주자 손성제와 기타 연주자 정수욱을 중심으로 판소리 보컬 김율희, 드럼 연주자 서수진으로 구성된 더 니어 이스트 쿼텟(이하 NEQ)가 ECM 레이블에서 새로운 앨범을 발매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뿌듯함, 감동을 느꼈다. 단지 현대 재즈의 독특한 지형도를 만들어 내고 있는 세계적인 레이블에서 앨범을 발매해서가 아니다. 그냥 조용히 전설로만 묻힐 수 있었던 그룹의 음악이 드디어 빛을 보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난 2010년 (현재와는 다른 멤버로) 첫 앨범 <Chaosmos>를 녹음한 후 그룹의 리더 손성제는 앨범을 발매하지 않으려 했다. 열악한 국내 재즈 시장에서 과연 누가 앨범을 구입해서 듣겠는가 하는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앨범은 발매되었다. 하지만 손성제의 예상대로 앨범은 비운의 전설로 남았다. 그러나 앨범에 대한 평가는 매우 좋았다. 앨범을 듣지 못한 사람은 많아도 앨범을 듣고 감동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로 앨범은 한국적 정서와 재즈를 매우 신선하고 아름답게 풀어냈다.

이에 힘입었을까? 손성제와 정수욱은 현재의 그룹을 구성하게 될 두 멤버를 새로이 영입해 2015년두 번째 앨범 <Passing Of Illusion>을 발매했다. 여기서도 그룹은 국악과 재즈를 소재로 한 독창적인 음악을 들려주었다.

NEQ의 음악적 특징은 단순히 국악과 재즈를 만남의 차원에서 결합하지 않았다는데 있다. 국악기를 서양악기처럼 연주하거나 우리 전통 멜로디를 서양 음악의 방식으로 연주하곤 하는 퓨전 국악과는 다르다. 이와 달리 NEQ는 한국적인 정서를 재즈적인 차원에서 표현하려 한다. 물론 판소리 보컬 김율희가 있는 만큼 그룹은 우리 국악을 공부하고 그 정서에 공감했다. 하지만 흔히 말하듯 국악의 세계화 같은 식의 관점에서 사고하지 않았다. 재즈의 너른 포용력으로 국악을 흡수하여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냈다. 유럽 연주자들이 미국 연주자들처럼 스윙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자신들의 민속 음악과 클래식 음악을 바탕으로 새로운 재즈를 만들어냈던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번 세 번째 앨범에서도 마찬가지다. 디스토션이 강하게 걸려 록적인 느낌마저 드는 정수욱의 기타와 비의적(秘儀的)인 분위기를 띈 손성제의 색소폰이 서로에게 스며드는 “Ewha”-아마도 이화(梨花), 배꽃을 의미할 것이다-에서 우리 국악의 그림자, 바람에 배꽃이 날리다가 결국 땅에 떨어지는 풍경을 담은 한국화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정수욱의 기타가 공간적 여백과 침묵의 긴장을 만들어 내는 “Mot”-아마도 “못(池)”을 의미할 것이다-도 마찬가지다. 이 곡은 못을 축조할 때 공갈이라는 아이를 묻어 둑을 완성했다는 슬픈 전설을 담고 있는 우리의 민요 “상주 함창가”를 편곡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곡 또한 김율희의 애상 가득한 노래가 없었다면 곡의 느낌은 자못 달랐을 것이다.

그렇다고 김율희가 NEQ의 음악에서 국악적인 부분을 전담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른 멤버들 모두 국악과 재즈가 만나는 접점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 접점은 우리 장단과 서양의 리듬 사이의 합일점이기도 하지만 정서적 공감대이기도 했다. 그래서 음악의 형식적인 차원에서 국악과 재즈의 경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한편 이번 앨범에서 NEQ는 첫 앨범에서 선보였었던 유랑자적 분위기를 앨범 전체에 다시 한번 불어넣었다. 우리 타악기 연주자 최소리가 함께 한 “Baram”-그렇다 “바람(風)”을 말한다-이나 “Garam”-강(江)의 옛말 “가람”을 의미할 것이다-, “Pa:do”-파도(波濤)를 의미한다-로 이어지는 흐름이 그렇다. 이들 곡의 흐름은 바람에 강물이 흘러 바다에 이르는 긴 여정을 그리게 한다. 실제 최소리의 타악기 연주와 서수진의 드럼, 정수욱의 어둡고 슬픈 기타, 여백을 조심스레 파고드는 손성제의 베이스 클라리넷 위로 김율희의 슬픔 가득한 독백조의 노래-판소리-가 흐르는 “Baram”은 시원을 알 수 없이 갑자기 불어온 바람을 그리게 하며 손성제의 애상 어린 색소폰과 정수욱의 공간감 가득한 기타, 그리고 서수진의 파문(波紋)같은 드럼이 어우러진 “Garam”은 바람에 이끌린 강물의 잔잔한 흐름을 그리게 한다. 그리고 “남도 뱃노래” 중에서 중모리 부분을 편곡한 “Pa:do” 또한 중모리라지만 진양조에 가까운 김율희의 노래와 자진모리의 빠른 템포로 연주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바람을 타고 파도를 가르며 나아가는 배의 위세를 그리게 한다.

그런데 강에서 바다로 흐르는 그림에 NEQ는 슬픔으로 가득한 곡들을 사이에 넣어 이동의 과정을 유랑자의 고독하고 슬픈 길로 바꾸었다. 판소리 “춘향가” 중 과거를 보러 떠난 이몽룡을 하염 없이 기다리는 춘향이의 마음을 표현한 “갈까부다” 부분을 편곡한 곡으로 애절한 노래와 우수 어린 색소폰이 그리움을 절로 느끼게 하는 “Galggabuda”와 헤어짐의 아쉬움과 슬픔을 안으로 머금은 듯 “Ebyul”(이별)”이 바로 그 곡들이다. 이 곡들로 인해 강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과정은 슬픈 여정으로 바뀐다.

앨범의 마지막 곡이 “Jinyang(진양)”인 것은 이러한 슬픈 여정에 방점을 찍기 위함이지 않았나 싶다.“진양조”라 불리기도 하는 “진양”은 판소리나 산조에 쓰이는 가장 느린 장단을 말한다. 계면조와 함께 사용하면 매우 슬픈 분위기를 낸다. “Jinyang”이 바로 그렇다. 이 곡에서 네 연주자는 슬픔을 넘어 우리만의 독특한 정서인 한(恨)을 그려낸다. 그러면서 후반부에 연주에서는 그 정서를 유지하면서도 조금은 아방가르드한 분위기-존 콜트레인이나 얀 가바렉의-로 한국적 공간을 넘어선다.

이처럼 NEQ의 이번 앨범은 재즈와 국악의 만남, 결합에 초점을 두는 대신 정서적 합일점을 찾아 내어 국악도 아니고 서양식 재즈도 아닌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서양인이건 한국인이건 모든 감상자들에게 신선한 공간적 체험을 하게 한다. 그러니까 그룹 이름이 의미하는 바대로 꼭 한국이 아닌 근동(Near East)의 어느 곳을 상상하게 한다. 바로 이것이 NEQ의 음악적 매력이 다.

한편 나는 우리야 아무리 국악을 듣지 않아도 한(恨)이라 불리는 슬픈 정서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는데 과연 서양인들이 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튀니지의 아누아 브라헴의 우드(Oud) 연주를 이국적인 서정 음악으로 환대했던 것처럼 과연 NEQ의 음악을 그렇게 받아들일까? 음악이 만국공통의 언어임을 생각하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부디 이 앨범으로 NEQ의 음악이 세계적인 호응을 얻기를 기대한다. 물론 그 전에 국내에서 그 환대가 시작되기를 바래본다.

4 COMMENTS

  1. ^^..개인적으론 큰 환대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정말 크지만… 일단 감상해보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2. 국내에서 환대가 시작되는 건…아마 ECM에서 발매가 되어서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시니컬한 생각을 해봅니다. 오랜만에 방문했는데, 역시! 이 앨범.. 다른 분들도 꼭 들어보셨음 좋겠습니다.

    • 네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또 그렇게 큰 환대도 없습니다. 공연 자체가 많아야 하는데 그것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니 말이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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