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lright – 웅산 (Universal 2018)

눈을 감고 들어도 누구인지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로 개성이 강한 연주자나 보컬이 있다.  웅산이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2003년 첫 앨범 <Love Letters>를 발표했을 때부터 웅산은 개성 강한 보컬이었다. 또한 인기 스타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지금처럼’, 그러니까 첫 앨범에 담긴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재즈 보컬로서 계속 노래해 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처럼’을 용납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찬사에 취하지 않고 매번 그 ‘다음’을 향했다. 스탠더드 보컬과는 다른 진득한 블루스 보컬을 들려준 <The Blues>(2005), 보컬을 넘어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던 <Yesterday>(2007), 자기 음악에 대한 확신 속에 자작곡, 스탠더드 곡 외에 가요, 팝, 록의 명곡들을 새로이 노래했던 <Falling In Love>(2008), 그리고 이를 보다 확장했던<Close Your Eyes>(2009), <Tomorrow>(2011), <I Love You>(2013) 등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늘 새로운 곳을 찾아 길을 나서는 여행자와 같았다.

그런 중 그녀는 2015년의 8번째 앨범 <Temptations>부터 <Close Your Eyes>같은 앨범에서 희미하게 제시했던 스무드 재즈에 관심을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스무드 재즈는 도시적 질감의 사운드에 편안한 대중적 정서가 특징이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분위기에 연주의 즐거움을 희생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대중적 이유로 음악을 가볍게 가져가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3년이 흘렀다. 2016년 미니 앨범 <Jazz Is My Life>을 거쳐 이번에 새로이 발매된 9번째 정규 앨범은 3년 전에 보여주었던 웅산식 스무드 재즈의 완성된 모습을 담고 있다. 그 모습이란 기존에 그녀가 보여주었던 재즈, 블루스, 팝 적인 면을 스무드 재즈라는 틀 안에서 새로이 펼치는 것이었다. 그 결과 한층 새로운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앨범의 제작까지 담당한 존 비슬리(건반, 피아노) 벤자민 쉐퍼드(베이스), 테리온 걸리(드럼), 폴 잭슨 주니어(기타), 데이먼 브라운(트럼펫) 등 미국의 유명 재즈 연주자들, 그리고 우리 연주자 찰리 정(기타)이 함께 한 이번 앨범에서도 웅산은 자작곡, 스탠더드 곡, 팝, 록의 고전을 고루 노래했다. 이 곡들은 새로운 환경에 대한 그녀의 적응과 변화를 다채롭게 바라보게 해준다

먼저 두 곡의 스탠더드 곡은 스무드 재즈의 도시적 질감을 그녀가 이해하고 그에 맞추어 주어진 텍스트를 변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플래터스의 노래로 유명한 “Smoke Gets In Your Eyes”를 보통 다른 보컬들은 뜨거웠던 사랑이 떠난 후에 남는 회한이라는 곡의 내용을 반영해 내지르는 창법으로 노래하곤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전의 다른 보컬들이 것과 달리 과감하게 힘을 빼고 부드럽게 노래했다. 이별의 폭풍이 지나고 허전함 속에 어렵게 찾은 새로운 평화를 담아냈다고 할까? 여기에 존 비슬리의 몽환적인 키보드와 래리 칼튼 만큼이나 블루지하면서도 매끄러운 톤을 지닌 잘리 정의 나른한 기타는 곡을 더 평화롭게 만든다.

 ‘“You And The Night And The Music”의 경우, 벤자민 쉐퍼드의 베이스 연주가 인상적이기도 한 이 곡을 그녀는 곡 제목이 말하는 음악, 사랑, 밤 중 밤에 방점을 두어 노래했다. 스모키 보이스로 그녀가 그려낸 밤은 매혹적인 것을 넘어 신비롭기까지 하다. 나는 이 곡을 들으며 달콤한 긴장 속에 처음 함께 보내는 연인들의 밤을 떠올렸다. 음악으로도 완화하기 힘든 떨리는 밤 말이다.

스무드 재즈의 세련된 질감을 더욱 강화하는 차원에서 그녀는 블루지하고 펑키한 곡들도 노래했다.재즈 록 그룹 블러드 스윗 앤 티어즈의 1968년도 명곡을 노래한 “I Love You More Than You’ll Ever Know”이 대표적이다. 그녀 또한 원곡만큼이나 블루스적 감성으로 자신의 사랑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간절함을 담아 흐느끼듯 노래했다. 이전 앨범들에서도 블루스적인 노래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러한 진득함은 <The Blues> 이후 오랜만이다. 이러한 정서적 끈끈함과 강렬한 에너지는 “I Can’t Stand The Rain”에서도 발견된다. (멤피스) 소울 보컬 앤 피블스의 1973년도 히트 곡을 그녀는 자유로이 리듬을 타면서 소울의 끈끈함을 가득 담아 노래한다. 가사와 허밍을 오가는 노래가 떠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내리는 비에도 지우지 못해 괴로운 여성이 아닌 비만 오면 뜨거워지는 여인을 그렸다 싶을 정도로 육감적이기까지 하다. 이것은 트럼펫 연주자 로이 하그로브의 그룹 RH 팩터가 소울 보컬 스테파니 맥케이와 함께 한 2003년도 곡을 노래한 “Forget Regret”에서도 발견된다. 한편 지난 해 싱글로 먼저 공개되었던 “Bear Walk”은 폴 잭슨 주니어의 감각적인 리프 연주가 돋보이는 펑키한 곡이다. 일본의 기타 연주자 지로 요시다가 쓰고 보컬 그룹 뉴욕 보이시스의 로렌 키한의 노래로도 유명한 이 곡을 그녀는 평소의 스모키 보이스와는 다른 보다 맑고 높은 톤으로 산뜻 발랄하게 노래했다. 스캣은 청순하기까지 하다. 웅산의 노래가 맞나 싶을 정도이다.

이들 곡 외에 나머지 곡들은 이번 앨범을 위해 새로이 씌어졌다. 이들 곡들은 웅산화(化)된 스무드 재즈 사운드를 제시한다. 앨범 타이틀 곡이기도 한 “I’m Alright”이 대표적이다. 웅산이 직접 곡을 쓴 이 곡은 세련된 질감과 편안한 분위기로 이루어진 스무드 재즈의 전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웅산의 노래 또한 치명적이다 싶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그러나 멜로디에 담긴 한국적-전통 음악에서의 한국적인 것이 아닌-인 서정성은 스무드 재즈의 전형과 다른 웅산식 스무드 재즈를 느끼게 한다. 역시 그녀가 작사, 작곡한 “Love Is A Losing Game”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 곡이 앨범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이 곡은 기존의 소울 곡을 노래했다 생각될 정도로 “Forget Regret”, “I Can’t Stand The Rain” 과 같이 들어도 위화감이 전혀 없다. 그래도 그 안에 담긴 애상의 정서는 자기식으로 소화한 웅산의 스무드 재즈를 느끼게 한다.

<Jazz Is My Life>에서도 함께 했던 자미 소울이 작곡하고 이주한이 가사를 쓴 “Heartless”는 테리온 걸리의 리듬과 존 비슬리의 건반, 그리고 춤추는 듯 하면서도 우수를 담은 멜로디가 이국적인 느낌으로 기존 스무드 재즈와는 다른 신선함을 제공한다. 이러한 이국적인 정취는  “Too Far”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여기서 웅산의 노래는 그대가 곁에 없어서 슬픈, 그리고 그 슬픔을 춤으로 승화시키는 여인을 그리게 한다. 한편 앨범의 마지막 곡 “Tell Me Why”는 웅산이 작사, 작곡은 물론 편곡까지 한 곡으로 눈물을 안으로 꾹 누르며 부른 듯한 웅산의 노래가 이국적인 동시에 한국적일 수도 있는 슬픔을 강하게 전달한다. 이것은 과거 <The Blues>나 <Yesterday>에 담겨 있던 신파적인 부분을 다시 회상하게 한다.

이처럼 웅산의 이번 9번째 앨범은 스무드 재즈의 세계적인 전형을 따르면서도, 웅산이라는 보컬의 개성이 담뿍 담긴 스무드 재즈를 들려준다. 그래서 스타일과 상관 없이 빛나는 웅산의 매력을 새삼 확인하게 해준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이 “I’m Alright”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어떠한 음악적 상황에서도 그녀는 괜찮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여기에 대한 나의 답은 “It’s OK”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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