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els Like Home – Inger Marie (Stunt 2018)

슬픔에 공감하고 이를 위로해주는 편안한 집 같은 노래.

프랑스에 살 무렵 독일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계획도 없이 무작정 떠난 여행이었다.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겠다는 계획도 없었다. 그냥 기차를 타야겠다 마음 먹었고 그런 중 뒤셀도르프가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따라서 기차에서 내린 후 막연함에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역시 되는대로 들어갔던 현대 미술관에서 나는 독일인 한 명과 일본인 한 명을 우연히 알게 되어 며칠간 그들과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지금은 이름마저 잊은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어떻게 그 낯선 곳에서 생면부지의 그들을 만나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지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운명을 생각하곤 한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그리 알려지지 않은 지역의 특정 음악이 우연한 경로로 내 마음을 사로잡을 때면 나는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수 많은 음악인들 가운데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사람의 연주나 노래를 만날 수 있었을까?

잉거 마리도 그랬다.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해외 앨범을 찾아 듣던 나는 우연히 2004년“Kultur & Spetakkel”이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노르웨이의 한 레이블을 통해 막 발매된 그녀의 첫 앨범 <Make This Moment>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의 옆모습을 희미하게 담은 표지 때문이었다. 그 표지에서 나는 포근한 멜랑콜리를 담은 음악을 기대했다. 그리고 그 기대대로 앨범은 쓸쓸함과 외로움 그리고 그것을 차분하게 위로하는 음악을 담고 있었다. 아! 이거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데 운명이란 이런 것일까? 이후 그녀의 앨범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나 말고도 그녀의 노래에 매료된 사람-그것도 음반 제작, 수입에 관련된-이 또 있었던 것이다. 이후 그녀는 스스로 한국을 제 2의 고향이라 말할 정도로 국내에서 인기를 얻었다. 17차례 공연을 펼치고 아예 우리 연주자들로 구성된 밴드를 만들고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할 정도였다.

그녀 또한 한국에서의 인기가 처음에는 실감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나처럼 운명을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1957년, 인구가 2만명도 채 안 되는 노르웨이의 작은 도시 아렌달에서 태어나 40여년간을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활동하다가 47세의 나이에 뒤늦게 발표한 첫 앨범이 약 7800킬로미터나 떨어진 한국에서 유난히 인기를 얻어 수 차례 공연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운명 이전에 음악의 힘이 아닌가 싶다. 부드러운 결이 느껴지는 스모키 보이스로 그리 힘을 들이지 않고 속삭이는 듯한 창법,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우울과 그에 대한 관조의 정서가 노르웨이보다 7시간 먼저 해를 보는 한국의 감상자들에게도 통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 <Feels Like Home>은 잉거 마리의 5번째 앨범이다. 이번 앨범에서도 그녀의 음악적 매력은 여전히 우리를 사로잡는다.

이번 앨범에서 그녀는 랜디 뉴먼의 곡으로 브라이언 아담스, 다이아나 크롤 등의 노래로 알려진“Feels Like Home”, 오티스 레딩의 히트 곡 “(Sittin’ On) The Dock Of The Bay”, 록 그룹 C.C.R의 고전 “Long As I Can See The Light”, 배리 매닐로우의 “When October Goes”, TV 미니 시리즈 <Hatfields & Mccoys>의 OST 중 한 곡으로 배우 케빈 코스트너가 이끄는 밴드 모던 웨스트의“I Know These Hills”, 그래엄 내쉬의 “Try To Find Me”, 아바의 “When All Is Said And Done”. 스웨덴의 싱어송라이터 바르브로 회르베르그의 “Med Ögon Känsliga För Grönt(녹색에 민감한 눈)”, 글렌 켐벨의 “Wichita Lineman”등 자신의 취향에 따라 세심하게 고른 영미 팝과 록, 그리고 북유럽의 명곡들을 노래했다.

그런데 그녀의 앨범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녀가 기존의 잘 알려진 곡들을 노래하는 것은 그 곡들의 명성에 기대려는 것보다 그 곡들을 진심으로 좋아했고 그 곡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감상자와 공유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그녀가 우리와 나누고 싶은 느낌은 고향 혹은 집에 대한 그리움, 던져져 있는 삶에 대한 불안과 그 속에서 꿈꾸는 소박한 희망이다.

“(Sittin’On) The Dock Of The Bay”를 들어보자. 오티스 레딩의 노래로 잘 알려진 이 곡은 떠나온 집을 그리워 하는 한편 외롭고 막막한 현실에 어찌할 바를 모른 채 한 부둣가에 앉아 있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잉거 마리는 오티스 레딩보다 더 쓸쓸히 독백하듯 나지막이 노래한다. 주어진 상황을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것은 눈까지 내리는 10월에 지난 사랑을 그리워하는  “WhenOctober Goes”, 역시 전봇대 꼭대기에서 일하는 통신 가설공이 지난 사랑을 그리워하는 “WichitaLineman”, 화사한 봄이 왔지만 사랑의 기억만 남아 있음을 노래하는 “Med Ögon Känsliga För Grönt”등의 곡에서도 이어진다. 그런데 외로움, 후회, 그리움 등으로 가득한 노래라고 해서 그녀는 감상자에게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슬픔을 안으로 누르듯 노래한다. (그래서 더 슬프다.)

나아가 그녀는 앨범 타이틀 곡 “Feels Like Home”같은 곡을 통해 그 슬픔을 치유해준다. 사랑이 찾아와 세상이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진다는 이 곡을 그녀는 새로 얻은 삶의 의미를 과하게 드러내는 대신 매우 담담하게 노래했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 세상이 달리 보일 거에요. 내가 경험해봤는데 그렇더라고요.라고 감상자-특히 삶에 지친-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Long As I Can See The Light”은 어떤가? C.C.R의 히트 곡으로 존 포거티의 강렬한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던 이 곡을 그녀는 색소폰 솔로를 중간에 넣는 듯 기본적으로는 원곡과 같이 가져가면서도 긴 방황 끝에 집을 향해 나아가는 피곤한 여행자의 희망을 표현했다. 빛이 있는 한 앞으로 나아가면 집에 도착할 것이라고 그녀는 불안한 여행자에게 작지만 신뢰를 담아 이야기한다. 이 외에도 이별 직후의 덤덤한 마음을 담은 아바의 원곡을 쓸쓸한 듯하면서도 이를 받아들이는 듯 노래한 “When All Is Said And Done”을 비롯해“If This Was”, “Try To Find Me”등의 곡에서도 그녀는 힘든 삶을 위로하는 작은 희망을 꿈꾸게 한다.

한편 크게 상실과 위로로 분류되는 곡들은 앨범 내에서 서로 교차되며 슬픔과 치유를 오가는 서사를 만들고 정서적 리듬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차분하고 정적인 곡들의 흐름이 지루하다거나 단조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이 앨범의 음악적 매력이 아닐까 싶다. 평범한 듯 편안하면서도 뻔한 것으로 바라보지 않게 하는 힘!

또한 이번 앨범에는 그녀의 한국 밴드의 멤버인 베이스 연주자 김성수를 비롯해 라스무스 솔렘(건반, 멜로디카, 오르간), 얄레 베스페스타(드럼), 페르 윌리 오서루드(트럼펫), 벤딕 호프셋(색소폰). 할그림 브랏베르그(기타) 키엘 오그 스토브란(비올라) 그리고 크리스티안산 스트링 쿼텟이 곡에 따라 다양한 편성을 이루어 그녀와 함께 했다.

이들 연주자는 전반적으로는 잉거 마리의 담백한 노래를 지원하는 역할에 충실했지만 잉거 마리가 제시한 정서를 먼저 제시하고 확장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Sittin’On) The Dock Of The Bay”에서 긴장 가득한 인트로와 애절한 솔로 연주를 펼친 기타, “Given Time”, “Try To Find Me”에서의 베이스 솔로 인트로, “If This Was”에서의 애잔한 비올라, “Med Ögon Känsliga För Grönt”에서의 슬픔 가득한 멜로디카 연주가 그렇다. 이처럼 은근히 드러나는 각 연주자들의 존재감은 잉거 마리의 노래와는 또 다른 감상의 소소한 재미를 제공한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수록 느끼는 것은 삶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어려운 순간에 찾아오는 작은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잉거 마리의 노래는 이러한 삶의 요철을 새삼 생각하게 한다. 그것도 엄숙한 경구(警句)가 아닌 서정시처럼 말이다.

사족으로 한 마디 더하면 꼭 노을이 붉게 물드는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앨범을 들어보기 바란다. 하루가 무사히 지났다는 안도감과 또 그렇게 의미 없이 시간을 보냈다는 허전함이 교차할 때듣는 잉거 마리의 노래는 당신에게 지친 하루에 공감하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는 연인 혹은 친구와도 같을 것이다. 나아가 잉거 마리의 노래가 삶의 작은 행복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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