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 at Ronnie Scott’s – Norah Jones (Gullible Jones 2018)

지난 2016년에 발매된 노라 존스의 앨범 <Day Breaks>는 첫 앨범 <Come Away With Me>에 버금가는, 아니 이를 뛰어 넘는 역작이었다. 특히 그녀의 모든 앨범 가운데 가장 재즈적인 색채가 강했다는 점에서 재즈 애호가들과 평단의 호응을 얻었다.

그녀가 이전 앨범들에 비해 보다 재즈적인 앨범을 만들게 된 것은 2014년 워싱턴 케네디 센터에서 있었던 블루 노트 75주년 기념 공연에 참가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 공연에는 그녀를 비롯해 닥터 로니 스미스, 웨인 쇼터, 브라이언 블레이드, 제이슨 모란, 맥코이 타이너, 로버트 글래스퍼 등 블루 노트 레이블의 대표 연주자들이 참여했다. 이들과 한 무대에 서면서 그녀는 자신이 블루 노트의 명반들을 좋아했고 재즈를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그로부터 멀리 벗어난 음악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또한 노래 외에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 주는 즐거움을 인식했다.

그런 중 아이가 생겼고 그로 인해 휴식기를 가지면서 작곡에 대한 열정이 솟아 올랐다. 그래서 피아노 앞에서 작곡을 시작했다. 그렇게 곡이 쌓여 한 장의 앨범을 녹음할 정도가 되자 그녀는 이들 곡들의 편곡, 밴드 구성을 고민했다. 앨범의 방향을 고민했던 것. 이 때 그녀는 블루 노트 75주년 기념 공연에서 느꼈던 감흥을 떠올려 피아노가 중심이 된 앨범을 만들기로 했다. 이것은 이전 그녀의 앨범들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했음을 의미했다. 이전까지 그녀는 기타를 중심에 둔 편곡, 밴드 구성을 선호했다. 그녀의 음악이 컨트리와 팝에 경도될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 강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앨범은 그녀의 노래만큼이나 피아노 연주가 돋보이는 것이었다. 듀크 엘링턴의 곡을 연주한 “Fleurette Africaine (African Flower)”이 대표적이었다. 이 곡에서 그녀는 허밍으로 자신의 보컬을 최소화하고 피아노 연주에 집중했다. 많은 음을 사용하지 않은 여백 많은 연주가 피아노 연주자로서 그녀를 새삼 생각하게 해주었다.

물론 그녀의 보컬이 주는 매력 또한 여전했다. “Carry On”, “And Then There Was You”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 곡은 <Come Away With Me> 시절의 쓸쓸하면서도 타인을 위로하는 듯한 편안함을 느끼게 했다.

앨범을 발매하고 그녀는 언제나처럼 세계 곳곳을 돌며 공연을 이어나갔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영상은 지난 2017년 영국 런던에 위치한 로니 스콧 클럽에서의 공연이다. 로니 스콧 클럽은 색소폰 연주자 로니 스콧에 의해 1959년에 만들어진 재즈의 명소이다. (로니 스콧은 1996년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뉴욕의 블루 노트나 빌리지 뱅가드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재즈사를 빛낸 수많은 유명 연주자와 보컬들이 이 클럽에서 공연했으며 벤 웹스터, 웨스 몽고메리, 스탄 겟츠, 니나 시몬, 버디 리치, 조지 러셀, 메이너드 퍼거슨, 아르투로 산도발 등의 연주자와 보컬들이 클럽에서의 공연을 담은 라이브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러한 클럽의 역사성이 노라 존스에게 새로운 감흥을 주었음에 틀림 없다. 블루 노트 레이블 75주년 기념 공연에서처럼 말이다. 실제 이번 타이틀에 함께 담긴 인터뷰 영상에서 노라 존스는 로니 스콧 클럽의 공간과 그 소리에 감탄했으며 유서 깊은 이 클럽에서 연주하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라 밝혔다.

이 공연에서 그녀는 베이스 연주자 크리스(토퍼) 토마스, 드럼 연주자 브라이언 블레이드와 트리오를 이루었다. 이 두 연주자가 앨범 <Day Breaks>에도 참여했던 만큼 이들과의 트리오를 이룬 것은 연주의 안정성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트리오만으로 공연했다는 것은 분명 새로운 의미가 있다. 앨범 <Day Breaks>에서도 그녀의 피아노가 중심에 서긴 했지만 트리오 편성이 중심이지는 않았다. 색소폰, 기타, 오르간, 코러스 등 여러 악기들이 곡마다 함께 했다. 트리오만으로 연주한 곡은 “It’s a Wonderful Time for Love”가 유일했다. 지난 해 디럭스 에디션으로 재발매 되면서 보너스 앨범으로 추가된 2016년 10월 뉴욕 신센터(Sheen Center)에 있는 로레토 극장에서의 앨범 발매 기념 공연에서도 그녀 곁에는 브라이언 블레이드, 크리스 토마스 외에 오르간 연주자 피트 렘과 코러스가 함께 했었다. 따라서 이번 로니 스콧 공연 타이틀은 재즈의 근원으로 돌아간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그녀를 보다 직접적으로 확인하게 해준다.

220석 규모로 클럽으로서는 대형에 해당하는 공간이지만 노라 존스 트리오와 관객의 거리는 눈동자의 움직임도 보일 정도로 가깝다. 이 환경이 트리오의 공연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 같다. 세계적인 스타가 아니라 이웃 친구가 노래하고 연주하는 듯한 친근감을 주기 때문이다. 소박하고 정겨운 하우스 콘서트 같다고 할까?

이에 걸맞게 카메라의 움직임 또한 어지럽지 않다. 피아노와 베이스, 드럼을 고르게 오가는 이동이 관객이 공연을 보면서 시선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만약 카메라가 노라 존스에게만 집중되었다면 음악 감상 또한 노라 존스의 노래와 피아노 연주에만 집중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세 연주자를 고르게 조망하고 있어 절로 각각의 악기는 물론 트리오 연주에 집중하게 한다.

공연은 앨범 <Day Breaks>의 수록곡들 9곡과 이전 앨범에 담긴 곡들 7곡의 연주와 노래로 이루어졌다. 여기에 아마도 앙코르 곡이 아니었나 싶은데 앨범 <Day Breaks>의 “Burn”이 보너스 영상으로 수록되었다.

그 가운데 앨범 <Day Breaks>에 담긴 곡들은 다시 한번 도시적 삶의 고독을 위로하고 나아가 낭만적이게 만드는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An Till There Was You”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부드럽게 혼잣말을 하는 듯한 그녀의 노래가 앨범에 이어 다시 한번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이것은  “Carry On”등의 곡에서도 이어진다.

그렇다고 노라 존스가 앨범의 사운드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 집중했다는 것은 아니다. 편성이 피아노 트리오로 축소된 만큼 앨범과 다른 면 또한 분명히 드러냈다. “Day Breaks”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앨범에서 이 곡은 색소폰과 오르간 등이 가세해 보다 역동적인 면을 띄었었다. 그런데 로니 스콧 클럽 공연에서의 연주와 노래는 분위기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면서도 한층 차분한 느낌을 준다. 편성이 축소되면서 생긴 다른 악기의 부재를 억지로 메우려 하지 않고 없는 그대로 연주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는 공연답게 연주적인 부분에서도 앨범과는 다른 감상의 재미를 선사했다. 노래 외에 자신의 피아노 연주에 보다 많은 부분을 할애한 것. 예를 들면 “Fleurette Africaine (African Flower)”는 여러 모로 앨범과 흡사한 면을 보이면서도 피아노 연주자로서 그녀의 매력을 더욱 강렬하게 느끼게 한다. 사실 그녀의 피아노 연주는 보통의 재즈 피아노 연주자들처럼 화려한 움직임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녀가 설정한 분위기를 표현하는데 더 집중한다. 그 결과 공간적 여백이 새로운 음악적 매력으로 드러난다. 현란한 손놀림이 없었음에도 클럽에 모인 관객들이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분 것은 그 침묵의 힘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한편 이전 앨범에 수록되었던 7곡의 연주와 노래는 피아노 트리오로의 편성 변화가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어 내는지 확인하게 한다. 이번 공연에서 노라 존스는 첫 앨범 <Come Away With Me>에 수록되었던 “Don’t Know Why”와 “I’ve Got To See You Again”, “Nightingale”, 세 번째 앨범 <Not Too Late>에 수록된 “Sinkin’ Soon”, 다섯 번째 앨범 <Little Broken Heart>에 수록된 “After The Fall”, “Out On The Road”, “Little Broken Heart” 등을 연주하고 노래했다. 그런데 그녀의 이전 앨범들은 재즈만큼이나 팝, 포크, 컨트리 등의 색채가 강했다. 특히 <Little Broken Heart>는 일렉트릭 사운드로 충만한 팝, 록적인 사운드로 재즈 애호가들에게는 충격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로니 스콧 클럽 공연에서는 그러한 장르적인 이질성이 사라졌다. 피아노 트리오를 중심으로 중심으로 모인 곡들은 원래 앨범에서와는 다른, 때로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감흥을 준다. “After The Fall”이 대표적이다. 완벽한 팝 곡이었던 이 곡을 그녀는 템포를 더 느리게 하고 이펙터를 제거한 호소력 강한 노래로 마치 <Day Breaks>에 수록된 곡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Out On The Road”도 마찬가지다. 한층 완화된 템포와 간결한 사운드가 원곡과는 다른 여행자적인 노곤함이 담긴 곡으로 바꿨다. 나아가 “Sinkin’ Soon”은 한층 블루지한 피아노 연주와 육감적이기까지 한 그녀의 노래가 어울려 전체 공연에서 돋보이는 순간을 연출했다. 한편 2002년 이후 수 없이 불렀을 “Don’t Know Why”같은 곡은 그간의 시간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한층 깊어졌음을, 인터뷰 부가 영상에 담긴 그녀의 표현대로 가죽 자켓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더 멋스럽게 변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처럼 기존 앨범에 담긴 원곡과 다른 사운드는 그녀의 음악 여정을 함께 한 애호가들에게는 분명 신선한 충격을 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래도 원래 앨범에 담긴 곡들이 더 좋다는 식의 생각은 하지 못하리라 생각된다. 그보다는 이렇게 해도 괜찮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그녀의 작곡은 편곡을 통해 덧씌워진 스타일과 상관 없이 정서적으로 통하는 면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노래는 노래대로 잘 하면서 피아노 연주를 통해 노래로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을 표현해 만든 음악이 그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영상을 끝까지 보고 난 후 나는 내가 보았던 노라 존스의 공연을 상기했다. 세 차례 있었던 노라 존스 내한 공연 중 나는 2003년의 첫 공연을 보았다. 코엑스 컨벤션 홀에서의 공연이었다. 공연에 특화되지 않은 공간에서의 공연이었기에 그녀와 호흡한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었다. 그냥 유명인의 노래를 눈 앞에서, 그것도 멀리서 본다는 것 외에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한 공연이었다.

그래서 어디가 좋을 지는 모르지만 연주자와 관객이 부드러운 시선을 나눌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한국 공연장에서 그녀의 공연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기왕이면 그 공연이 로니 스콧 클럽 공연에서처럼 피아노 트리오만으로 이루어진 공연이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내 누구보다 앞서 공연장으로 달려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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