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ik – Figli Delle Ste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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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였다. 그것도 유명한 가수였던 것 같다. 단독 공연인지 아니면 대형 TV 쇼 프로그램인지는 몰라도 수 많은 관객, 그것도 외국인들이 주를 이루는 관객들 앞에서 노래할 준비 중이었으니까.

음악이 시작되었다. 기타가 리듬을 연주하고 브라스 섹션이 겨울 햇살처럼 은은히 들어왔다가 나가는 팝 스타일의 인트로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 노래였다. 아니 익숙한 듯 한데 가사가 생각나지 않았다. 다행히 곡의 인트로는 길었다. 공연을 위해 편곡을 달리 했던 모양이다. 16마디 정도의 연주가 흐르는 동안 나는 가사를 생각하려 애썼다. 가사가 생각나도 이 애매모호한 노래를 부를 수 있었을 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가사부터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결국 노래를 시작하지 못했다. 두 마디가 더 지나서야 큰 소리로 연주자들에게 음악을 멈추라 했다. 그리고 관객에게 이야기 했다. 잠시 가사를 까먹었다고. 다시 노래를 시작하겠다고.

다시 기타, 브라스 섹션이 어우러진 16마디 인트로가 시작되었다. 가사는 여전히 떠오르지 않았다. 어쨌건 뭔가 해야 했다. 다시 연주를 멈출 수는 없었다. 잘 모르지만 멈추면 공연은 그대로 끝날 것이고 나는 큰 곤경에 빠질 것이다.

기타가 16번째 마디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레”를 비브라토를 섞어 연주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레”로 시작하는 스캣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불러야 할 멜로디도 아닌 것 같았다. 관객들은 물론 연주자들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으니까. 나 또한 당황했다. 그냥 인트로의 코드 진행에서 영감을 받은 멜로디를 흥얼거리면서 이게 뭐야? 도대체! 했다.

의지와 상관 없이 춤을 추게 만드는 덴마크의 빨간 구두처럼 스캣은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 흐름이 참 절묘했다.

노래를 끝까지 불렀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아닐 것이다. 한참 고조될 무렵 꿈에서 깼으니까.

아직 새벽이었다. 도대체 무슨 꿈이었을까?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가사만큼이나 스스로를 납득시킬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노래를 부르지 못한 상태로 꿈에서 깨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스캣이라도 했으니, 아니 어려움을 즉흥적인 흥얼거림으로 극복했으니 좋은 꿈이라 생각했다.

아침에 정신을 차린 후 내가 노래하려 했던 곡이 무엇이었나 찾아보았다. 자작곡은 아니었다. 최근 내가 들었던 곡들을 중심으로 이틀간 찾은 끝에 파픽의 “Figli delle stele 별의 아이들”의 어설픈 변주일 확률이 높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탈리아어 가사였으니 당연히 노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필리 델레 스뗄레~”하면서 첫 마디는 노래할 수 있었을 텐데……모르겠다.

PS: “Figli delle stele”는 원래 이탈리아의 싱어송라이터 알란 소렌티의 1977년도 앨범의 타이틀 곡이다. 디스코 스타일의 곡으로 당시 인기를 얻었던 모양인데 나는 이탈리아의 건반 연주자이자 작 편곡자 네리오 포지의 프로젝트 그룹 파픽이 보컬 대니 로지토와 함께 한 리메이크 버전으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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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를 들으며 산다. 듣기만 하는 것이 아쉬워서 2000년부터 관련 글을 써왔다. 글만 쓰는 것도 뭔가 부족해서 Radio Kiss에서 방송도 한다. 최소한의 악기로 최소한의 음(音)을 사용한 음악을 사랑한다. 그리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 믿는다. 여기에 재즈는 가장 이상적인 음악이다. 현재 재즈의 장르적 한계와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그에 맞는 감상의 길을 찾고 있다. , 라는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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