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derly – Stacey Kent (Okeh 2015)

은밀하고 달콤하게 노래한 스탠더드 곡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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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테이시 켄트를 좋아한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후반 그녀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냥 평범하다는 느낌 이상을 받지 못했다. 어쩌면 당시 내가 보컬보다는 연주 음악을 더 많이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2001년도 앨범 <Dreamsville>에 수록된“I’ve Got a Crush on You”, 이듬 해 발매된 앨범 <In Love Again: The Music of Richard Rodgers>에 수록된 “It Might as Well Be Spring” 등 몇몇 곡에서 매력을 느꼈을 때도 나는 그녀에 대해 그 이상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후 발매된 그녀의 앨범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느 날 사랑스러운 보컬 곡을 소개하는 글을 쓸 기회가 있었는데 스테이시 켄트의 노래가 선택하기 곤란할 정도로 주르르 떠오르는 것이다. 그 때서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스테이시 켄트를 좋아하고 있음을.

언급한 것처럼 스테이시 켄트의 노래는 처음에는 그냥 평범하게만 들린다. 노래를 못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냥 강렬함으로 감상자를 사로잡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저 그렇다, 심심하다는 느낌 또한 주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한번 듣게 되고 또 듣게 되는데 그럴수록 좋아진다. 바로 이 점이 나는 스테이시 켄트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어디 첫눈에 반하는 사랑만 사랑이던가? 그리 특별하다는 느낌을 갖지 못했는데 모르는 사이 마음에 들어와 자리 잡는 사랑도 있지 않던가?

스테이시 켄트의 노래가 평범하게 들리는 것은 그만큼 그녀의 노래가 편하고 부드럽기 때문이다.노래 자체로 압도하기보다는 블로섬 디어리에 기원을 둔 귀여운 목소리가 주는 달콤함으로 매혹한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 <Tenderly>에서도 마찬가지다. 앨범 타이틀이 우리 말로“부드럽게”를 의미하는 만큼 감상자를 일체의 근심이 사라진 낭만적이고 행복한 시간으로 이끈다.

그렇다고 잘 알려진 그녀의 매력을 늘 하던 대로 반복했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리 큰 불평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감상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노래를 하면서도 그녀는 조금씩 음악적인 시도를 거듭해왔다. 어쨌건 그녀 또한 늘 새로운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숙명을 지닌 재즈인이 아니던가?

이번 앨범의 새로움은 먼저 레퍼토리에서 발견된다. 2003년도 앨범 <The Boy Next Door> 이후 다시 스탠더드 재즈 곡의 세계로 돌아간 것이다. 물론 그 사이 그녀가 스탠더드 곡을 전혀 노래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한 두 곡씩 스탠더드 곡을 앨범에 따라 노래하곤 했다. 하지만 앨범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그보다는 남편이기도 한 색소폰 연주자 짐 탐린슨과 일본계 영국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함께 만든 곡들과 보사노바의 명곡, 프랑스 샹송의 고전 등이 주를 이루었었다.

게다가 스탠더드 곡이 아닌 레퍼토리의 선택은 그녀의 음악에도 영향을 끼쳤다. 2003년도 앨범 이후 그녀는 <Breakfast on the Morning Tram>(2007), <Raconte-moi…내게 말해줘>(2010),<Dreamer In Concert>(2011), <The Changing Lights>(2013) 이렇게 넉 장의 앨범을 선보였다. 이들 앨범에서 그녀는 보사노바 등 라틴 리듬을 위주로 한 노래를 주로 선보였다. 그리고 그 노래들은 정말 매혹적이었다. 그녀의 노래는 행복 가득한 햇살 좋은 오후의 세계로 감상자를 안내했다. 이에감상자들은 큰 호응을 보냈다. 특히 <Breakfast on the Morning Tram>은 프랑스와 독일에서의 인기에 이어 2009년 그래미상 최우수 보컬 재즈 앨범 부문 후보에 오를 정도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래서 이전 영국의 캔디드 레이블 시절-스탠더드 곡을 주로 노래했던-에서 진일보한 그녀만의 세계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내리게 했다.

편성에도 변화가 있다. 지금까지 스테이시 켄트는 색소폰-기타-피아노-베이스-드럼으로 이루어진 퀸텟 편성을 중심으로 노래해왔다. 이에 비해 이번 앨범의 편성은 단출하다. 여전히 짐 탐린슨이“The Very Thought Of You”, “No Moon At All”, “In The Wee Small Hours Of The Morning”등의 곡에서 색소폰과 플루트를 연주하며 함께 하고 있지만 주된 연주는 로베르토 메네스칼의 기타와 제레미 브라운의 베이스가 담당하고 있다. 피아노와 기타가 빠진 것이다. 그래서 이전 앨범들에 비해 한층 여백과 여유가 음악적으로 드러난다.

편성이 바뀌니 분위기도 달라졌다. 사실 나는 보사노바의 탄생 이후 브라질 음악의 대표 인물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는 로베르토 메네스칼이 참여했다고 해서 또 다른 보사노바 계열의 노래를 기대했었다. 스탠더드 곡들을 보사노바 리듬 위에 살포시 올려 놓은 노래들이 귀를 간지럽게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첫 곡 “Only Trust Your Heart”에서 살짝 보사노바 리듬을 드러낼 뿐 매우 전통적인 방식의 재즈 기타 연주를 펼친다. 그리고 그 연주는 “Tangerine”에서처럼 선명한 솔로를 펼치기도 하지만 주로 리듬을 절제하거나 안으로 감추어 스테이시 켄트의 비스킷처럼 바삭거리는 목소리가 지닌 달콤함을 돋보이도록 한다. 앨범에서 유일하게 스탠더드 곡이 아닌 기타 연주자 작곡의“Agarradinhos”에서도 그의 기타는 보컬 뒤에서 담담하게 흐른다.

그 결과 앨범은 최근 10여년간 그녀의 음악이 그려온 바람이 부드럽고 햇살이 온화한 오후의 세계가 아닌 내면적이면서도 우울하지 않은 시공간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그 전 캔디드 레이블에서 스탠더드 곡을 노래할 때와도 다른 느낌이다.

나는 (이미 스테이시 켄트의 음악에 눈이 멀어서인지 몰라도) 이번 앨범의 차분하고 은밀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이전 그녀의 노래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느낌이 강했다면 이번 앨범은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그녀가 마치 혼자 있지만 좋지 않나요? 만약 외롭다면 내가 위로해 줄게요. 내 노래를 들어봐요.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그래서 “There Will Never Be Another You”, “Tenderly”처럼 사랑의 달콤함을 담은 노래 뿐만 아니라 이른 새벽 눈을 떴을 때 찾아오는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하는 “In The Wee Small Hours Of The Morning”는 달콤한 고독의 노래로 다가오고 “That’s All”, “If I’m Lucky”.“If I Had You”처럼 사랑의 고백을 주제로 한 곡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성공 100%의 긍정적인 노래로 다가온다. 게다가 들뜨지 않고 차분하고 담담하게 노래했기에 더욱 더 설득력이 느껴진다.

글쎄. 이전처럼 가벼운 보사노바 계열의 노래를 더 했더라면 하는 감상자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앨범을 한번 더 들어보기 바란다. 그러면 여백이 많고 조용한 분위기임에도 슬픔, 우울함, 외로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노래와 음악이 전하는 행복과 긍정의 정서가 실은 이전 그녀의 앨범들의 연장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가벼이 살랑거리는 대신 부드럽게 감싸는 것이 다를 뿐 결국 그녀의 노래가 주는 정서적 만족은 같다. 다만 그것이 신선할 뿐이다.

성공한 음악가는 늘 새로움을 추구하면서도 그 안에서 자신의 매력을 유지한다. 익숙함과 새로움의 비율을 잘 조절한다는 것이다. 스테이시 켄트는 이번 앨범이 그렇다. 그녀는 자신의 매력이 꼭 보사노바나 가벼운 리듬 위에서만 빛을 발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다른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고 감상자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음을 증명한다. 그래서 나는 이번 앨범 또한 많은 사랑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나아가 그녀의 음악 인생에 있어 새로운 음악적 전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2 COMMENTS

  1. Agarradinhos.. 좋으네요..

    배경음악으로 틀어놓고 작업중입니다.
    아고…감성돋는 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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