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dom & Surrender – Lizz Wright (Concord 2015)

lw

폭 넓어진 사운드 깊어진 위로의 노래

노래를 잘 하는 보컬은 어떤 보컬일까? 여기에는 음정, 리듬 등의 기교적인 부분에 있어서 틀림이 없는 보컬, 좋은 음색을 지닌 보컬 등 여러 답이 가능할 것이다. 나는 이 질문에 다소 모호하게 들리겠지만 정서적 울림이 좋은 보컬을 최고의 기준으로 삼을 것이다. 정서적 전달력이 있는 보컬, 노래에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보컬은 장르와 상관 없이 감상자를 사로잡는다.

리즈 라이트의 경우가 그렇다. 그녀는 재즈 보컬로 등장했고 지금도 그렇게 분류되고 있지만 음악적으로는 사실 모호한 위치에 속한다. 흑인 보컬로서의 끈적거리고 육감적인 매력이 있으면서도 백인 보컬들에서 주로 발견되는 담백함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재즈 보다는 블루스와 포크적인 색채가 더 강하다. 지금의 재즈가 양립 불가한 스타일까지 아우르는 넓은 포용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지 지금보다 재즈에 대한 정의가 엄격했던 50,60년대였다면 그녀는 재즈보다는 블루스, 소울 쪽 보컬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여기에는 목회자인 아버지로 인해 일찌감치 교회에서 가스펠을 노래하며 보컬로서의 역량을 발견했고 여기서 출발해 블루스와 재즈로 영역을 넓혀온 그녀의 음악적 삶이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장르적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리즈 라이트는 <Salt>(2003)를 시작으로 <Dreaming Wide Awake>(2005), <The Orchard>(2008), <Fellowship>(2010) 등 4장의 앨범을 발표하면서 성공적인 길을 걸어왔다. 이 모두 그녀의 풍부한 감성과 그것을 노래에 담아내는 능력 때문이었다. 그녀는 힘의 강약, 리듬의 조절로 청각적 쾌감을 만드는 것에서 더 나아가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 듯 담담히 노래한다. 그래서 장르적 호불호를 떠나 그녀의 노래는 음악 그 자체로 감상자의 마음을 건드린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다섯 번째 앨범에서도 가슴으로 다가오는 그녀의 노래는 계속된다. 버브 레이블에서 콩코드 레이블로 자리를 옮겨 처음 녹음한 이 앨범에서도 그녀는 재즈 블루스, 소울, 포크 등이 어우러진 사운드를 배경으로 니나 시몬을 연상시키는 깊은 저음과 건조한 질감이 어우러진 노래를 펼친다. 그리고 그 노래로 삶을 위로하고 평안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녀의 노래를 좋아한 기존 감상자들에게는 이 5년만의 새 앨범이 선물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 이번 앨범은 이전 앨범들보다 사운드에 있어서 다채롭고 역동적이며 그로 인해 가장 대중적인 면을 띄고 있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첫 곡 ‘Freedom’이 좋은 예이다. 마지막에 배치된‘Surrender’와 함께 앨범 타이틀 곡 역할을 하고 있는 이 곡은 펑키한 맛의 기타와 드럼, 오르간이 어우러진 사운드가 기존 리즈 라이트의 음악과는 다른 차원의 신선함을 느끼게 한다. ‘자유’의 의미가 감각적 리듬을 통해 표출되었다고 할까? 애초에 앨범 타이틀 곡으로 생각했었다는 록과 블루스가 어우러진 풍성한 사운드에 호소력 강한 그녀의 노래가 흐르는 ‘The New Game’또한 기존 그녀의 노래와 차별화된 대중성을 엿보게 해준다. 게다가 이 곡은 앞에 나른한 느낌마저 주는 발라드 곡 ‘The Game’에 이어 배치되어 극적인 대비효과를 느끼게 한다. 한편 ‘Lean In’은 속삭이듯 차분한 그녀의 보컬이 평소의 편안함, 차분함을 느끼게 하지만 그 아래에 흐르는 리듬은 감상자를 고요 속에 빠뜨리는 대신 가벼운 달뜸으로 이끈다. 이것은 ‘You’에서도 반복된다.

앨범의 절반은 느린 템포를 중심으로 한 리즈 라이트의 편안한 매력을 느끼게 해주는 곡으로 이루어졌다. 몽환적 느낌마저 드는 ‘Here & Now’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 ‘Somewhere Down theMystic’, ‘Real Life Painting’, ‘Blessed And The Brave’등의 곡들도 정갈한 사운드와 따스하게 공간에 스며드는 보컬로 안도와 위로의 정서를 느끼게 한다. 이것은 앨범의 마지막에 배치된 또 다른 타이틀 곡‘Surrender’에서 절정에 이른다. 3박자 리듬에 블루지한 감각이 어우러진 사운드와 동경을 담은 보컬이 종교적 경건함 마저 느끼게 한다.

한편 콩코드 레이블은 그녀에게 기존에 잘 알려진 팝의 명곡들을 새로이 노래하는 앨범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동안 새로운 곡 외에도 팝, 포크 곡들을 매우 아름답게 소화했던 그녀의 능력을 극대화하자는 의도였던 모양이다. 예로 <The Orchard> 앨범에서 그녀는 레드 제플린, 아이크 터너, 팻시 클라인 등의 곡을 노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레이블의 제의를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그녀는 아직은 때가 아니라 판단했다. 그래서 새로운 곡 중심의 앨범을 기획했는데 그러면서도 레이블의 제안을 고려한 듯 닉 드레이크의 ‘River Man’, 비지스의 ‘To Love Somebody’을 새로 노래했다. 이들 곡은 앨범에 의외성을 주면서도 다른 곡들과 자연스레 어울려 리즈 라이트의 매력을 강화한다. 특히 소울로 충만한‘To Love Somebody’는 비지스의 그림자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곡으로 새로이 태어났다.

이번 앨범에 기존 리즈 라이트의 장점을 지속시키면서도 이전과는 다른 신선도를 지니게 된 것에는 제작자 래리 클라인의 힘이 컸다. 래리 클라인은 조니 미첼, 마들렌느 페이루, 멜로디 가르도 등의 앨범 제작을 통해 보컬의 음악적 역량을 극대화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이번 리즈 라이트와의 작업에서도 명 제작자는 다시 한번 그의 마술적 능력을 발휘했다.그는 음악적 동료 데이빗 바토를 동반하고 리즈 라이트와 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일상을 함께 하면서 작곡 단계에서부터 그녀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그녀와의 이야기를 통해 결정한 이상적인 사운드를 구현하기 위해 비니 콜라이우타(드럼), 제스 해리스, 딘 파크(기타), 댄 루츠(베이스), 피트 코펠라(타악기), 케니 뱅크스, 피트 쿠즈마, 빌리 차일드(건반) 등의 연주자를 불렀다.

한편 기존 리즈 라이트의 매력을 지속시키기 위해 그녀의 두 번째 앨범 <Dreaming Wide Awake>부터 함께 해온 토시 리건에게 두 곡의 타이틀 곡 작업을 함께 하게 했다. 그리고 노라 존스의 성공을 견인했고 멜로디 가르도, 니키 야노프스키 등 현재 재즈 보컬을 이끌고 있는 젊은 여성 보컬과 함께 했던 제스 해리스(‘The Game’, ‘Lean In’)를 비롯해 마이아 샤프(Real Life Painting) 그리고 J.D 사우더(Right Where You Are) 등 그녀와 결이 맞는 실력파 싱어송라이터들을 곡작업에 참여시켰다. 그 가운데 ‘Right Where You Are’에서는 현재 소울과 재즈를 오가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남성 보컬 그레고리 포터를 불러 듀오로 노래하게 했다. 이 곡은 대중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앨범을 다채롭게 하고 음악적 정서적으로 깊은 맛을 지니게 했다. 그리고 앨범의 주인공을 빛나게 했다. 물론 언제나처럼 이 모든 것은 제작자 혼자의 생각이 아니었다.

상반된 의미의 ‘자유’와 ‘복종’이 앨범 타이틀로 함께 하고 있다는 것에 많은 감상자들이 그 이유를 궁금해할 것 같다. 나 또한 그랬다.‘복종과 자유’였다면 그나마 굴레를 벗어나 자유로 이르는 과정으로 앨범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자유와 복종’이기에 다소 모순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삶에 진다는 것일까? 삶에 비극적인 태도를 말하는 것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이를 위해‘Somewhere Down the Mystic’를 예로 들어야겠다. 소박한 전원에서의 영원한 사랑, 그 따뜻한 느낌을 이야기하는 이 곡은 얼음이 뒤 덮인 산길을 운전하다가 미끄러져수십 미터 벼랑 아래로 떨어질 뻔한, 죽음의 순간을 느꼈던 위험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끝이다 싶을 때 다행히 나무에 걸려 차가 멈췄고 20여분뒤 구조를 받았을 때의 안도감을 담아노래한다고 한다.

결국 리즈 라이트는 우리의 삶 앞에 놓여진 모든 어려움을 받아들이면 자유가 온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Freedom In Surrender’라 할까? 우리 말로 한다면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적어도 이 앨범이 삶의 고난에 지친 사람들에게 장르를 초월한 위로와 휴식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