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 Blue: Oslo Concert – Paul Bley (ECM 2014)

pb피아노 연주자 폴 블레이의 이번 앨범은 그의 솔로 연주를 담고 있다. 지난 2008년 노르웨이 오슬로 재즈 페스티벌에서의 공연을 담은 것으로 19세기 후반에 건축된 것으로 공연을 위한 공간을 갖춘 야콥 문화교회에서 녹음되었다.

피아노 솔로 연주라고 해서 그를 아는 감상자들은 자연스레 2007년에 발표된-녹음은 2001년에 된- 앨범 <Solo In Mondsee>나 ECM에서의 첫 녹음이었던 <Open To Love>같은 솔로 앨범을 떠올릴 것이다. 더 깊게 생각한 감상자들은 스티플체이스나 임프로바이징 아티스트, 저스틴 타임 등의 레이블에서 녹음된 솔로 앨범들을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번 솔로 앨범을 듣기 전에 그 연주를 예상했을 것이다.

시간을 단절시킬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의 역사 또한 연속성을 띨 수 밖에 없으니 이런 예상과 기대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실제 앨범에 담긴 연주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들어온 이전 연주와 아주 다르지는 않다. 프리 재즈에서 자신의 영역을 개척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음악을 조야해온 그답게 무척이나 자유분방한 연주를 들려준다.

하지만 그를 잘 아는 감상자일수록 이번 앨범에 담긴 그의 연주에 놀라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바로 첫 곡 ‘Far North’의 초반부에 담긴 우수의 정서 때문이다. 특정한 선율을 제시하기 보다는 연주의 출발점으로 삼은 II-V 패턴의 코드 진행이 기본적으로 지닌 아련함, 우울 등을 적극 활용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이러한 상투성을 바탕으로 한 음악을 종종 사용하는 프랑스 영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의 음악에서 우수를 느끼는 것은 무척이나 낯선 경험이다. 언제 그가 이러한 촉촉함을 표현한 적이 있던가? 느림과 여백을 중심으로 서정적인 연주를 펼쳤던 <Open To Love>에서의 연주도 이렇지는 않았다. 1974년에 녹음했던 <Alone Again>에서도 발라드 성향의 연주를 펼쳤어도 우수를 드러내지는 없었다. 추상적인 아름다움, 침묵 속에 내재된 긴장을 사건화시키면서 발생하는 아름다움이 우선했다. 그래서 서정적이었지만 이번 ‘Far North’에서처럼 아련한 동경이나 슬픔의 연약한 정서를 담고 있지 않았다. 그런 그가 70대 중반이 되어 우수를 드러냈으니 어디 놀라지 않을 수 없을까? 곡 제목처럼 북쪽 도시에서 연주하는 자신의 상황에서 순간 우울해진 것은 아닐까?

물론 17분이 넘도록 이어지는 이 자유로운 곡은 중간에 이 우수의 분위기를 떨치고 새로운 긴장과 정서 상태로 이행하며 폴 블레이의 음악적 특성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Way Down South Suite’, ‘Flame’,  ‘Longer’ 등 이어지는 곡들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음악적 소양을 자유로이 활용하여 때로는 작은 동기를 거대하게 부풀리고 과감하게 다른 단계로 도약하는 연주가 이어진다. 하지만 이전의 솔로 연주가 그림이나 시처럼 정지된 풍경, 상태의 탐구에 가까웠다면 이번에는 영화나 소설 같은 서사성이 강하다는 것이 색다름을 느끼게 한다. 이전 솔로 연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게 연주된 것도 이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분위기의 변환이나 긴장 가득한 도약도 감상을 어렵거나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하나의 곡에서 다채로운 변화를 거듭하고 이를 통해 서사적인 느낌을 주는 연주에서 상당 수의 감상자는 키스 자렛을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확실이 노장의 이번 연주는 키스 자렛의 연주와 유사하다.  그것도 한창 넘치는 에너지로 연주의 극한을 향해 거침 없이 나아갔던 70년대의 솔로 연주를 많이 연상시킨다. 그래서 이번 앨범이 그 연주의 난이도와 상관 없이 더욱 익숙하고 편하게 다가올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녹음 당시 70대 중반이었던 노장이 뒤늦게 키스 자렛을 따라 했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이미 오래 전부터 폴 블레이 또한 이러한 연주를 해왔음을 상기하자. 그럼에도 비교가 잘 되지 않다가-실은 이를 언급한 다큐멘터리도 있었다- 이번 앨범에서 교차점이 보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서적인 측면에서다. 즉, 노장이 갑작스레 우수에 빠진 그 순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느낀 그 순간 자신을 바라보는 관중의 시선 속에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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