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Dance – Keith Jarrett & Charlie Haden (ECM 2014)

kj1967년 키스 자렛은 찰스 로이드 쿼텟의 멤버로 활동하는 중 첫 리더 앨범 <Life Between The Exit Sign>을 녹음했다. 함께 한 연주자는 찰리 헤이든(베이스)과 폴 모티안(드럼). 당시 폴 모티안은 에반스와의 전설적인 트리오 활동에 이어 폴 블레이와 활동하는 등 사이드 맨 활동을 이어가고 있던 중이었다. 찰리 헤이든 역시 오넷 콜맨의 쿼텟 멤버로 프리 재즈의 태동에 기여를 한 이후 아치 쉡, 로스웰 러드, 데니 자이틀린 등의 세션 활동을 하던 중이었다.

아직은 내일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이 더 컸던 세 연주자는 첫 트리오 앨범을 시작으로 <Somewhere Before>(1968), <The Mourning Of A Star>(1971) 등의 트리오 앨범을 거쳐 색소폰 연주자 듀이 레드맨을 합류시킨 쿼텟 편성으로 <El Juicio>(1971), <Death and The Flower>(1974), <The Survivor’s Suite>(1976), <Eyes of The Heart>(1976)등의 앨범을 녹음하는 등 10년여간 주목할만한 결과물을 낳았다. 하지만 키스 자렛이 솔로 콘서트 활동과 얀 가바렉(색소폰), 팔레 다니엘슨(베이스), 욘 크리스텐센(드럼)과 유러피안 쿼텟 활동을 하게 되면서 세 연주자의 활동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래도 키스 자렛과 폴 모티안은 1992년 마일스 데이비스를 추모하는 트리오 앨범 <At The Dear Head Inn>에서 함께 하기도 했다. 하지만 키스 자렛과 찰리 헤이든의 조우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반면 찰리 헤이든과 폴 모티안의 만남은 종종 성사되었다.) 그렇다고 찰리 헤이든과 키스 자렛은 서로를 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서로의 솔로/리더 활동에 집중하다 보니 함께 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었다.

그런 중 2005년 키스 자렛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Keith Jarrett: The Art Of Improvisation>에 찰리 헤이든이 인터뷰이로 출연할 일이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이를 계기로 2년 뒤에 이번에는 찰리 헤이든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Charlie Haden: Rambling Boy>에 키스 자렛이 인터뷰이로 출연해줄 것을 요청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인터뷰에 그치지 않았다. 자신의 집에서 인터뷰를 했기 때문일까? 인터뷰를 마친 키스 자렛이 찰리 헤이든에게 갑자기 연주를 제안한 것이다. 다행히 찰리 헤이든은 베이스를 갖고 있었다. (아내 루스 캐머룬이 켈리포니아의 집을 나설 때 혹시 모르니 베이스를 준비하라 했다고 한다.)

두 연주자는 즉흥적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평소 연주를 방해하는 일체의 작은 요소에도 민감한 키스 자렛이었지만 이날은 신기하게도 카메라와 제작진의 시선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30여년만에 찰리 헤이든과 함께 연주한다는 즐거움만이 그를 사로잡았을 뿐이었다. 찰리 헤이든도 마찬가지였다. 30년이 지났어도 자신과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키스 자렛의 연주에서 그는 편안함을 느꼈다.

찰리 헤이든의 다큐멘터리에 그대로 담긴 이 연주에 만족은 키스 자렛은 찰리 헤이든에게 다시 만나 연주를 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앨범을 녹음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모처럼 연주를 통해 확인한 젊은 시절의 우정을 확인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해 ECM의 제작자 맨프레드 아이허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그래도 녹음에 대한 생각은 있었던 모양이다. <Spirits>(1985), <Melody At Night With You>(1998), <No End>(2013) 등의 솔로 프로젝트 앨범을 녹음했던 홈 스튜디오를 듀오 편성에 적합하게 만들기 위해 만성피로 증후군을 극복하고 복귀한 이후에 제작된 대부분의 라이브 앨범을 녹음한 엔지니어 마틴 피어슨을 불렀다. 그리고 악기의 소리가 있는 그대로 직접적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평소의 ECM의 방식과 달리 잔향을 많이 넣지 않은 상태에서 녹음을 시작했다. (다시 말하지만 녹음 당시 앨범을 발표할 계획이 전혀 없었고 맨프레드 아이허도 없었다.)

 

찰리 헤이든은 팻 메시니, 행크 존스, 케니 베이런, 크리스 앤더슨, 안토니오 포르시오네 등과의 듀오 활동 경험이 풍부했다. 하지만 키스 자렛은 그렇지 않았다. 아예 그는 1983년 게리 피콕, 잭 드조넷과 트리오를 결성한 이후 다른 연주자와의 협연을 한 적이 없었다. (클래식에서의 듀오 연주는 있었다.) 따라서 오랜만에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갖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었지만 그에게 녹음은 새로운 모험에 가까웠다.

이 모험을 성공하기 위해 그는 찰리 헤이든의 베이스에 맞춰 페달을 덜 사용하고 톤 또한 부드럽게 완화시켜 연주하기로 했다. 베이스 연주자 또한 평소의 깊이 있는 음색은 유지하면서도 결코 무겁지 않은 톤으로 피아노에 맞추었다. 이러한 배려는 연주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괜스레 드럼의 부재를 메우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았다. 드럼의 부재가 만들어 낸 여백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차분히 연주를 펼쳤다. 어찌 보면 그것은 대화가 아니었다. 말 없이 수 시간을 앉아 있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 친구처럼 두 연주자는 같은 공간에서 자신만의 연주에 몰두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두 연주는 자연스레 어울려 하나의 달콤한 사운드를 만들어 내었다. 즉흥적으로 선택한 곡들 중에 찰리 헤이든이 연주해본 적이 전혀 없는, 그래서 부랴부랴 코드 진행만 익힌 상황에서 연주해야 했던 곡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여기에는 두 연주자의 정서적 교감의 힘이 컸다. 치열한 연주 중에도 선연히 빛을 내곤 했던 키스 자렛의 아름다운 멜로디 감각, 다양한 편성과 다양한 연주자 혹은 보컬을 통해 드러내곤 했던 찰리 헤이든의 낭만적 성향이 서로 통했기 때문이었다.

녹음된 듀오 연주는 두 사람의 기대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다. 그러자 이를 앨범으로 발매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실제 앨범 발매까지는 3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ECM과 키스 자렛의 앨범 발매 계획 상의 문제 외에 연주된 곡들 가운데 수 백 번을 들으며 한 장의 앨범에 수록될 곡들을 고르고 다시 이를 배열하는 것도 생각보다 긴 시간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즉흥적 결정에 의한 녹음과 사려 깊은 후반 작업이 어우러져 2010년에 발매된 앨범 <Jasmin>은 (두 연주자에게는 늘 있는 일이었겠지만) 평단과 감상자의 큰 환영을 받았다. 감상자들은 앨범에서 두 연주자의 푸근한 우정은 물론 연주 당시에 흘렀을 편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30여년만에 이루어진 만남이 조금은 더 지속되기를 바랬다.

그렇기에 이번 두 연주자의 새로운 앨범 <Last Dance>의 발매는 <Jasmin>의 좋은 추억을 지닌 감상자들에게는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리라 생각된다. 앨범은 <Jasmin>과 같은 때에 녹음된 것으로 전체의 유기적 흐름을 고려하는 과정에서 선택되지 못했던 곡들을 담고 있다. 그렇다고 미공개 B급 트랙을 모아 놓은 앨범이라 생각할 필요는 없다. <Jasmin>에 수록되기도 했던 ‘Where Can I Go Without You’와 ‘Goodbye’의 얼터너티브 테이크가 수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각 곡들의 연주 짜임새나 곡들의 연계는 <Jasmin> 이상으로 뛰어나다.

한편 ‘마지막 춤’이라는 다소 슬픈 느낌의 앨범 타이틀은 찰리 헤이든의 건강 상태를 고려한 것인 듯 하다. 올해 우리 나이로 78세인 찰리 헤이든은 현재 10대 시절 앓았던 소아마비의 재발로 연주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본인은 여전히 재활의 의지로 병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앨범에 담긴 연주는 ‘마지막’이 주는 슬픔과 상관 없다. 매우 오랜만에 함께 연주한다는 반가움, 이를 바탕으로 순간에 집중하는 두 연주자의 충만감만이 있을 뿐이다. 특히 서로에 무심한 듯 자신의 개성이 담긴 연주를 펼치면서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자연스러운 어울림은 무척이나 매혹적이다. 왜 처음부터 두 장의 앨범으로 발매하지 않았을까 의아할 정도다. 새로운 연주를 그리워하게 되는 때가 올 것임을 알았기 때문일까?

4 COMMENTS

  1. 그저께 우연히 재스민과 라스트댄스 두 음반을 발견하고 너무 기뻐하고 있던차에
    이렇게 자세한 사연을 소개해주신 글을 읽으니 반갑고 감사합니다.
    더불어 이렇게 좋은 사이트를 알게 되어 기쁩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2. 요 몇일은 제 귀가 호사를 누리고 있습니다.^^

    비 오고 난 후 서늘한 바람 때문인가요..
    곡들이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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