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ed – Robert Glasper (Blue Note 2015)

Covered – Robert Glasper (Blue Note 2015)

피아노 트리오로 팝, 록의 히트 곡을 연주하다.

재즈는 여전히 대중 음악의 영역에 위치하지만 그 안에서의 인기라는 실질적인 측면에서는 더 이상 대중 음악이 아니다. 시간을 거듭하면서 이제는 소수의 취향을 위한 음악이 되었다. (스타일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장르 전체가 대중 음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쨌건 높지 않다.) 게다가 더 이상 흑인만의 음악이라고 할 수도 없게 되었다. 현재 흑인 음악의 중심은 힙합과 R&B이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는 재즈만을 자양분으로 성장한 연주자들이 주를 이루었던 것과 달리 요즈음은 재즈 외에 클래식, 록, 팝 등 다른 장르의 음악을 즐기며 성장한 연주자들이 다수를 이룬다. 나는 이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연주자들이 재즈를 더욱 다양하게 만들고 나아가 재즈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의 주인인 로버트 글래스퍼(Robert Glasper)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그는 재즈와 블루스를 노래했던 어머니 덕에 일찌감치 재즈의 세례를 받았으며 한편으로는 교회에서 음악 활동을 하면서 흑인 음악의 또 다른 근간인 가스펠 음악을 접했다. 그러면서 재즈와 다른 흑인 대중 음악을 함께 즐겼다. 그래서 공연 및 시각 예술 고교(High School for the Performing and Visual Arts)를 졸업하고 뉴 스쿨(The New School for Jazz and Contemporary Music)에 입학한 후에는 재즈 연주자들 외에 네오 소울 보컬 빌랄(Bilal), 모스 데프(Mos Def), 큐 팁(Q-Tip), 미셸 엔디지오첼로(Meshell Ndegeocello), 에리카 바두(Erykah Badu), 제이 지(Jay-Z), 맥스웰(Maxwell) 등 R&B, 소울, 힙합 등 현재 흑인 음악을 대표하는 인물들과 함께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는 첫 앨범 <Mood>를 재즈의 전통을 따른 포스트 밥 성향의 연주로 채워 자신의 음악적 근간은 재즈임을 명확히 밝혔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즈의 전통만을 따르기에는 그의 음악적 역량, 관심사가 너무 넓었다. 그래서 블루 노트와 계약한 선보인 앨범 <Canvas>(2005), <in My Element>(2007) 등을 통해서 그는 편성에 있어서는 트리오나 쿼텟을 유지하면서도 음악적으로는 다른 흑인 대중 음악에 대한 애착을 보였다. 나아가 2009년에 선보인 <Double-Booked>에서는 어쿠스틱 트리오와 일렉트릭 악기들이 가세한 익스페리먼트(The Robert Glasper Experiment) 밴드, 이렇게 두 편성으로 나누어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음악적 자양분이 재즈만큼이나 힙합, 소울 등에도 있음을 드러내었다. 이것은 에리카 바두, 뮤지크 소울차일드(Musiq Soulchild), 질 스콧(Jill Scott), 페이스 에반스(Faith Evans), 앤서니 해밀튼(Anthony Hamilton) 등 재즈 외의 흑인 음악 스타들과 함께 한 <Black Radio>(2012), <Black Radio 2>(2012)로 이어졌다. 특히 <Black Radio>는 그에게 55회 그래미 최우수 R&B 앨범상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한편 지금까지 그가 발표한 앨범들 모두를 좋아하지만 그래도 재즈 애호가의 입장에서는 <Black Radio>시리즈는 음악적 완성도와 상관 없이 재즈로부터 너무 멀리 나간 듯 해서 아쉬운 느낌을 주기도 했다. 이를 의식했을까? 이번 앨범에서 그는 어쿠스틱 피아노 트리오 연주를 선택했다. 이를 위해 <Canvas>와 <In My Element>에서 함께 한 베이스 연주자 빈센트 아처(Vicente Archer)와 드럼 연주자 대미언 리드(Damion Reid)를 다시 불렀다. 그리고 미국 헐리우드에 위치한 유서 깊은 캐피톨 스튜디오에서 소수의 관객을 초청해 라이브 형식으로 녹음하여 재즈 본연의 즉흥적인 면을 살리고자 했다.

그런데 이 라이브 녹음을 위해 그가 선택한 곡들의 면모가 흥미롭다. 앨범 타이틀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자작곡과 함께 록, 포크, 소울, 힙합 등의 히트 곡을 선택한 것이다. 이를 위해 앨범에서 그는 라디오헤드(Radiohead), 뮤지크 소울차일드, 조니 미첼(Joni Mitchel). 존 레전드(Jo Legend), 빌랄,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등의 히트 곡이 선택되었다. 그래서 원곡과의 비교 감상을 유도한다.

사실 로버트 글래스퍼 이전에 많은 재즈 연주자들이 팝을 연주했다. 아니 재즈의 근간을 이루는 스탠더드 곡 자체가 1920년대부터 40년대 사이에 인기를 얻었던 뮤지컬이나 영화의 음악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즉, 재즈는 늘 팝을 연주했다. 그럼에도 그의 이번 연주는 보통의 팝을 연주한 재즈 연주와는 조금은 다른 면모를 보인다. 어쿠스틱 트리오로 연주하면서도 평소 그가 보여주었던 다른 장르의 음악을 재즈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통 재즈 연주자들은 팝을 연주할 때 재즈의 싱그러운 리듬에 잘 알려진 팝의 테마를 얹는 방법을 사용하곤 한다. 그래서 원곡의 존재감이 희석되곤 한다. 연주자에 따라서 다양하게 표현되는 스탠더드 곡의 연주 방식과 같다고 하겠다.

하지만 로버트 글래스퍼는 다른 연주자들에 비해 원곡의 기억을 지우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쿠스틱 트리오의 부드러운 질감으로 연주했지만 ‘Reckoner’에서는 곡의 주인인 라디오헤드의 비감(悲感)과 우주적인 맛 등이 그대로 느껴진다. 또한 ‘The Worst’의 경우 피아노가 제인 아이코(Jhené Aiko)를 대신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Got Over’에서 해리 벨라폰테(Harry Belafonte)가 자신의 삶을 담담히 독백한 것을 삽입하고 켄드릭 라마의 ‘I’m Dying Of Thirst’에서는 (원곡의 할머니 대신) 6세인 그의 아들 릴리 글래스퍼(Riley Glasper)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미국의 흑인 희생자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넣어 정치적이고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것 또한 팝적인 맛을 느끼게 한다.

곡마다 원곡의 맛을 느낄 수 있었던 것에는 로버트 글래스퍼의 피아노 연주만큼이나 대미언 리드의 드럼 연주가 매우 큰 역할을 한다. 그는 재즈의 전통적인 스윙 리듬이 아닌 (원곡을 반영한) 기타 팝, 록 음악의 리듬을 마치 프로그래밍 된 것처럼 연주한다. 만약 단순히 스윙만 했다면 이번 앨범의 개성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원곡의 그림자를 드리웠다고 해서 팝 아티스트의 리메이크 앨범처럼 단지 히트 곡을 피아노 트리오 편성으로 바꿔서 녹음하는 것에 그쳤다는 것은 아니다. 재즈 연주자로서의 그의 역량 또한 유감 없이 드러낸다. 스탠더드 곡을 연주한 ‘Stellar By Starlight’, 앨범에서 가장 긴 연주를 펼친 자작곡 ‘In Case You Forgot’ 등이 좋은 예이다. 이들 곡에서 그는 화려한 손놀림과 과감한 상상력으로 연주의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 특히 ‘In Case You Forgot’에서는 연주 중간에 신디 로퍼(Cyndi Lauper)의 ‘Time After Time’과 보니 래잇(Bonnie Raitt)의 ‘I Can’t Make You Love Me’를 차용해 라이브 연주의 재미를 배가했다.

한편 이번 앨범에서 연주한 곡들이 그가 평소 즐겨 듣고 좋아한 곡들임을 말하려는 듯 그는 원곡의 매력을 트리오로 옮기는 것만큼이나 이들 곡에 대한 개인적 느낌을 표현하는 것에도 상당한 비중을 할애했다. 조니 미첼의 ‘Barangrill’을 연주하면서 질감은 다르지만 포크적 정서를 이어받은 솔로 연주를 펼친다거나 뮤지크 소울차일드의 ‘So Beautiful’, 빌랄의 ‘Levels’에서 원곡의 분위기를 확장해 보다 더 서정적인 솔로를 펼친 것 것이 좋은 예이다.

나아가 단출한 어쿠스틱 트리오 편성으로 연주하면서 원곡에 감추어진 곡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Black Radio 2>의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되었던 곡으로 매이시 그래이(Macy Gray), 진 그래(Jean Grae)와 함께 했던 ‘I Don’t Even Care’ 같은 곡이 그렇다. 랩과 보컬을 빼고 연주한 결과 그 아래 가려졌던 멜로디의 아름다움이 자연스레 부각될 수 있었다. ‘Reckoner’도 그렇다. 편곡상 뒤로 물러섰던 화성적 측면이 앞으로 나오면서 곡의 비감이 더욱 극대화되었다.

그가 팝, 록의 히트 곡을 연주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자신이 재즈보다는 R&B 등의 다른 흑인 음악 쪽 애호가들의 사랑을 더 많이 받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랜 만에 피아노를 연주하고 싶어서 트리오 멤버를 소집했지만 그렇다고 스탠더드 곡들을 연주한다면 자신의 팬들이 그리 좋아할 것 같지 않으리라 생각되었다. 게다가 남들이 하지 않았던 연주를 하고 싶기도 했다. 이 때 팝, 록의 히트 곡을 트리오로 연주한다면 재즈와 팝 쪽의 팬들 모두를 만족시킬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그의 선택은 적절한 것이었다. 다시 한번 그는 재즈와 R&B, 힙합 등을 아우르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재즈의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지금의 팝 적인 감수성을 잘 반영한 개성강한 연주는 그의 기대대로 팝과 재즈 애호가 모두를 만족시키리라 생각된다. <Black Radio>가 두 번째 앨범까지 제작되었듯이 <Covered 2>를 기대할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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