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견문록 – 스튜어트 리 앨런 (이창신 역, 이마고 2005)

커피 견문록 – 스튜어트 리 앨런 (이창신 역, 이마고 2005)

나는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 대학1년 때까지는 마셨는데-그래야 몇 개월?-커피를 마시면 힘이 스르르 사라지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경험 한 뒤로는 마시지 않고 있다. 누군가는 잘 정제된 순도 높은 커피를 마시면 괜찮을 거라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다면 나는 매번 보통 이상으로 비싼 커피를 마셔야 할 것이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재즈를 좋아하는 내가 클래식을 들으면서도 아주 빠지지 않으려 조심하는 것과 같다. 나의 경제력이 이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이 책의 저자 스튜어트 리 앨런은 커피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내팽개친 사람이다. 물론 그것이 한시적이었을 거라 생각되지만. 그는 커피-카페인에 매료되어 커피의 역사를 따라 여행을 한다. 그렇다고 아주 학구적인 여행을 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학식이 있어 여행지마다 이런저런 커피 관련 이야기를 습득하고 또 이미 알고 있는 바를 기억하지만 기본적으로 그의 커피 여행은 그 지역의 역사적인 커피 한 잔을 맛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전쟁 중이거나 강도 등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아프리카나 아랍의 위험한 도시를 기꺼이 여행한다. 그리고 며칠간의 기차 여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그는 에티오피아, 예멘, 인도, 터키,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브라질 그리고 미국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했다. 그러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한 잔의 커피를 맛보고 커피의 역사적 유적지를 찾아보면서 커피 뒤에 있는 문화, 문명의 역사를 만났다.

그렇기에 이 책을 단순히 모카 커피, 아라비카 커피의 은근한 향을 아름답게 서술한 여행기로 보면 실망할 수 있다. 이 책에 담긴 커피는 그보다는 훨씬 진하며 또 그만큼 쓰다. 에디오피아에서는 커피 콩으로 커피를 만들기 전에 커피 잎으로 만든 카트를 애용했었다는 것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러면서 저자가 그리는 커피는 맛보다는 카페인의 효과에 집중되어 소개된다. 그래서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교도들은 커피를 돌려 마시며 커피가 주는 정신적인 환각효과에 빠져 신과의 소통을 시도했다는 것, 반면 가톨릭이나 수피교도 외의 이슬람교에서는 커피를 엄격히 금지했다는 것, 유럽에서는 커피가 종교가 아닌 카페라는 현실 공간을 중심으로 문화를 형성하면서 정치,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여정을 따라 하나씩 보여준다. 특히 커피가 서양 정치사에서 일정부분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그러니까 커피를 아랍이 독점할 때 아랍 문명은 절정기에 이르렀으며,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커피를 알게 되면서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고, 유럽도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서양이 암흑시대 야만의 시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도 카페에서 시작되었단다. 이러한 관점은 역사를 종합적으로 보아야 판단 가능한 것이지만 일견 설득력이 있다. 그러니까 절대적은 아니더라도 일부분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저자는 미국인임에도 미국 커피를 싫어한다. 미국인들은 막대한 커피 소비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제대로 만들고 음미하는 법을 모른다고 한다. 유럽의 모방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 외에 각 지역에 커피를 (몰래) 들여온 인물들에 대한 소개부터 랭보가 에디오피아의 하레르에 위험을 무릅쓰고 커피를 구하러 갔었다는 것, 카푸치노가 카푸친 수도회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 영국이 커피 플랜테이션을 확보하지 못해 차를 더 많이 마시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중국의 아편전쟁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 미국이 남북전쟁 당시 군인에게 용기를 북돋기 위해 커피를 사용했다는 것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독서를 이어가게 한다.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저자는 커피의 맛도 맛이지만 카페인 자체에 더 관심이 많은 듯하다. 카페인의 각성효과가 종교적인 환상을 불러 일으킨 수피교 이야기부터 아편 같은 중독성을 지닌 카트 이야기 등이 커피보다는 카페인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특히 마지막 미국을 가로지르는 여행은 커피보다는 카페인 중독에 빠지는 과정이 더 잘 묘사되고 있다. 커피의 핵심은 카페인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 책을 읽다 보면 유럽의 잘 정돈된 커피보다는 계피도 넣고 꿀도 넣고 기타 다른 첨가물을 넣었던 고대 커피를 찾아 아프리카나 아랍, 터키를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저자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있어야 한다. 카페인에 중독되면 생길지 모르겠지만 그래야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