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 김은국 (도정일 역, 문학동네 2010)

순교자 – 김은국 (도정일 역, 문학동네 2010)

이 책은 몇 가지 측면에서 나의 흥미를 끌었다. 먼저 요즈음 노벨 문학상에는 그리 관심을 두지 않지만 그래도 60년대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는 것, 그럼에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다음으로 한국 작가인데 번역자가 따로 있다는 것. 보아하니 작가 김은국은 이 소설을 Richard E, Kim이란 이름으로 미국에서 먼저 발표했다고 한다. 영어 제목은 <The Martyred>. 그런데 나로서는 잘 모르는 작가에 번역자가 따로 있다고 하니 나는 작가가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채 일찍 세상을 떠났거나 실종되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작가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교수활동을 했고 방송 출연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이 소설은 연극과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니 나의 호기심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편 작가는 본인 스스로 이 소설의 한국어판을 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작가가 처음부터 한국어로 다 번역한 것이 아니라 이미 국내에 번역된 것을 보완하는 수준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 책은 70년대 번역을 했었던 도정일씨가 새로이 번역한 것을 사용하고 있다.

소설의 내용은 6.25 당시 평양에서 12명의 목사들이 공산당에게 처형을 당한 작은 사선을 단초로 이후에 펼쳐지는 신, 종교에 관한 깊은 물음을 담고 있다. 진실은 무엇인가? 인간이 받는 고통에 의미가 있는가? 신은 그 고통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등에 관한 의문을 소설은 계속 던진다. 또 그런 중에 이를 정치적, 체게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한국군의 의도와의 갈등도 일어난다. 그런 중에 ‘신목사’의 선택은 상당히 실존주의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어찌 보면 그의 선택과 그 선택에 대한 설명은 배교, 이교적이라 할만하다. 그러니까 그는 인간의 고통에 의미란 없으며 죽음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희망을 기대하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그는 없는 희망을 만들고 설파한다. 그렇다고 사실 그가 비종교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의 선택은 그렇게 절망을 인정할 때 종교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어쩌면 모든 종교의 탄생이 그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는 절망을 인정한 후에 그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 종교, 신을 활용한다. 스스로 모든 절망의 진실을 떠 안고, 신이 줄 수 있는 벌을 혼자 겪으며 살기로 결심하고 가여운 사람들에게 희망의 거짓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기독교의 신화는 유지된다.

어쩌면 독실한 신자들은 이 소설을 읽으며 공감과 반감을 가질 지도 모르겠다. 종교를 긍정하는 것 같기도 하고 부정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을까? 그것은 작가가 종교의 일반적인 의미가 아닌 ‘신목사’를 일종의 예수의 차원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처형당한 목사의 수가 12명이라는 것도 그렇고 그들의 동료였던 신목사가 고통을 안는다는 설정도 그렇다. 이 책의 제목이 ‘순교자’인 것도 그런 뜻이 아닐까?

나는 이 소설이 국내에 첫 출간 당시보다 현재에 더 유효한 의미를 지닌다는 번역자의 말에 동의한다. 이 소설의 종교적인 주제는 소설 속 시간인 1950년은 물론 출간되었던 60년대, 번역되었던 70년대에는 현실감이 덜 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독교가 한국 사회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요즈음, 종교적인 갈등이나 고민이 많은 요즈음 이 소설을 읽어본다면 특별한 사유의 화두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런 이유로 출간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서 이 소설이 관심을 끌었던 것이리라.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게 된 것도 그만큼 서구 사회의 보편적인 화두를 다루었다는 느낌 때문이리라.

한편 번역본이지만 소설의 문체도 상당히 훌륭하다. 단문으로 특별한 과장 없이 일목요연하게 (추리소설의 분위기로) 서사를 이끄는 힘을 느낄 때마다 잘 쓰는 글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러한 결과가 작가의 영어실력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이 소설을 쓸 당시 미국 생활을 하며 얼마나 영작문을 잘 배웠을 지는 모르지만 원어민처럼 기교를 부리는 문체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을 차근차근 단문 형식으로 써내려 가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아무튼 단번에 쭉 읽게 하는 매력이 있는 문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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