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짐에 대하여 – 쟝 보드리야르 (하태환 역, 민음사 2012)

사라짐에 대하여 – 쟝 보드리야르 (하태환 역, 민음사 2012)

포스트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 받고 있는 쟝 보드리야르의 유작이다. 글쎄. 책의 분량이 보통 책의 1장 정도로 짧은 에세이에 가까운 것을 보면 그가 생전에 이 내용을 출판할 계획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프랑스 원서의 책 제목도 살짝 이해가 가지 않고. 한국 책 제목처럼 사라짐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원서 제목은 ‘왜 모든 것은 아직 사라지지 않는가?’이다. 존재론적으로 한국판과 프랑스판 제목이 서로 상충하지 않는가?

아무튼 이 책은 사라짐에 관해 이야기 한다. 먼저 현실 혹은 실재의 사라짐을 이야기 한다. 인간이 기술을 통해 세상을 지배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현실/실재는 사라진다는 것이다. 특히 인간이 사물을 명명화하고 개념화 하는 순간 그것의 사라짐은 시작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0과 1로 표현되는 디지털의 세계이다. 디지털의 등장은 세상을 0과 1의 조합으로 분해한다.

이것은 인간/주체의 사라짐까지 이어진다. 인간이 없는 세상을 보고자 하는 욕망, 아르키메데스의 점으로 대표되는 객관화의 과정이 진행되면서 인간은 인공 지능 등으로 대체되며 사라진다는 것이다. (로봇이 인간을 대신하고 결국엔 인간을 지배할 지도 모른다는 미래학자들의 어두운 예상을 생각해 보자.) 그렇다고 사라짐이 인간이라는 종의 종말,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라짐은 편재와도 같다. 즉, 해체, 분해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라짐의 원인은 역시 디지털 문명의 등장인 것 같다. 디지털 문명은 가상계를 상정한다. 근거가 없는 시뮬라크르의 세계 말이다. 이 디지털화는 세상을 그리고 인간을 사라지게 한다. (매트릭스의 세상으로 결국 귀결되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 쟝 보드리야르는 현실/실재와 인간/주체의 사라짐을 성명하기 위해 사진을 예로 든다. 과거 아날로그 사진의 경우 피사체와 시선이 조우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다. 즉, 실재와 재현이 있었다. 하지만 디지털 사진-여기서는 포토샵 등을 이용한 가상의 이미지 생산을 말한다-은 피사체를 사라지게 한다. 그리고 어떠한 근거도 없는 이미지를 생산하며 현실과의 관계를 끊는다.

대충 이러한 내용의 이야기는 결국 쟝 보드리야르의 존재론, 사진론, 미학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의 <시뮬라시옹>으로 수렴한다. 어찌 보면 그 전개에서 어려움을 느낄 수는 있지만 이해 자체가 어렵지는 않다. 아무튼 이런 내용이니 사라짐에 관한 이야기지 ‘모든 것이 사라지지 않는 것에 대한 의문’의 이야기는 아니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쟝 보드리야르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굳건한, 사라지지 않는 주체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하필 원서의 제목은 ‘왜 모든 것은 아직 사라지지 않는가?’ 일까? ‘모든 것은 사라지리라’가 맞는 것 같은데 말이다.

나는 철학자의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특히 인간 아니 축소해서 내가 없는 세상을 엿보고 싶은 욕망이 결국 나를 사라지게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은 그런 사라짐을 모르지 않을까? 이미 디지털 세상에 빠져 있고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더라도 잘 살고 있다면 큰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닐까? 매트릭스의 가상계를 살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이상할 것은 없지 않은가? 그냥 그대로 맘 편히 살다가 정말 소멸된다면 말이다. 오히려 그 너머의 진실을 알고 싶어할 경우 인간은 주체의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러한 나의 생각은 시뮬라크르의 세계에 익숙한 소시민의 생각일 수 있다. 철학자는 그 너머의 진실을 향해 용사처럼 끝 없이 현재에 의문을 가져야 하리라. 이를 알면서도 내가 그러한 생각을 하는 것은 결국 철학을 행동지침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지적 유희 정도로 받아들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냥 사유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현실이 즐거운 노예. 그것이 나인지도 모른다. 쟝 보드리야르가 말한 사라질 인간.

PS: 책의 짧은 분량과 사유적 여백을 표현하기 위한 듯한 책의 편집과 디자인은 무척 인상적이다. 왼편에는 디지털계를 상징하듯 숫자와 알파벳의 조합을 채우고 오른 쪽에만 본문을 싣는 구성이 신선하다. 뭐, 나 같은 사람은 왼편에 원서의 본문을 넣어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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