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정성 – 데이비드 린들리 (박 배식역, 시스테마 2009)

불확정성 – 데이비드 린들리 (박 배식역, 시스테마 2009)

그 동안 양자역학,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관한 여러 책들을 읽었다. 1900년대 전반의 과학사를 장식한 이 이야기들은 읽을수록 재미있다. 그 가운데 이 책은 가장 뛰어난 서술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양자역학, ‘불확정성의 논리’가 고전 역학과 어떻게 단절하고 새로운 역학으로 발전할 수 있었으며 또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여러 반대론자들과 어떤 치열한 싸움을 벌였는지를 시간을 따라 명쾌히 이야기한다. 그래서 로버트 브라운이 발견한 입자들의 흔들림 현상, ‘브라운 운동’부터 조금씩 양자 역학에 이르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이리 말하니 목적론적인 면이 있다.) 그리고 그 서술은 단순히 새로운 발견, 정리, 해석의 나열이 아니라 시대적인 환경 과학자 사이의 이합집산 등을 포함하여 당시 과학계의 전반적인 풍경을 조망할 수 있도록 한다. 그것은 마치 1950년대 재즈계의 풍경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다채로우면서도 몇 주력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아무튼 이런 서술이기에 이 책은 단순히 불확정성의 원리란 무엇이며, 양자역학이란 무엇인지 만을 설명하는 것에서 나아가 엔트로피, 콤프톤 효과, 방사성 원소의 발견, 슈뢰딩거의 파동 방정식 등 여러 주요한 발견 등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해준다. 그러면서 여러 발견, 이론을 종합하게 한다. 글세, 그 동안 여러 과학책을 읽었기에 이 책이 쉽고 편하게 다가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현대 과학의 흥미 진진한 모습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겐 이 책이 최고라 생각한다. 이 책 이후에 하이젠베르그의 <부분과 전체>를 읽으면 좋을 것 같다.

한편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하이젠베르그 외에 닐스 보어에 큰 관심이 갔다. 그의 직관적인 사고, 철학적인 사고-실질적으로 철학적 영향력을 끼치지는 못했지만-에 감탄했다. 그가 없었다면 양자역학은 더 늦게 빛을 보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그의 반대점에 있었던 아인슈타인을 중심으로 양자역학을 불완전한 것으로 보고 더 확실한 무엇을 찾으려 했을 지도 모른다. (확실히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수록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원리’로 현대 과학의 새로운 장을 열긴 했지만 그의 말년의 종교적 신념으로 인한 관점이 그를 보수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한편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불확정성의 원리’가 현대 사회에서 조금은 선정적, 피상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경계하는 태도를 보인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철학자들이 현대 과학을 해석하거나 철학적으로 적용하려는 것에 대한 서술에 대해서는 살짝 저자가 초점을 잘못 맞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자는 논리실증주의, 칼 포퍼 등의 철학과 연결하고 있는데 직접적인 관련성 때문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불확정성의 원리’는 후기구조주의의 주체문제나 순간적 우발성, 생성과 관련 지어 생각하면 어떨까 생각된다. 예로 아무런 인과, 목적 없이 전자들의 뜀(운동)으로 인해 자연이 생성되는 것과 들뢰즈의 생성철학을 연관시키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실제 들뢰즈는 양자역학에서 철학적 아이디어를 얻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부분을 저자가 조금 더 관심을 가졌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러나 과학과 철학의 관련을 다룬 부분이 적은 만큼 큰 문제는 아니다. 저자가 플라톤과 칸트를 회피하는 과학계의 풍토를 아쉬워하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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