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gnettes – Marilyn Crispell (ECM 2008)

마릴린 크리스펠의 음악은 프리 재즈에 해당된다. 실제 그녀의 연주는 순간적으로 그녀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감흥에 기반하는 경우가 만다. 그리고 그 감흥은 고도의 에너지의 역동적인 변화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ECM에서 녹음할 때만큼은 다소 다른 면을 보인다. 지금까지 그녀가 녹음한 인상적인 트리오 앨범들을 보면 분명 자유로운 즉흥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에너지보다는 침묵과 그 안에 감추어진 멜로디가 자유의 바탕이자 산물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것은 이번 솔로 앨범에서 더욱 더 강조된다. 이 앨범에서 마릴린 크리스펠은 Vignette라 명명된 일련의 자유 즉흥 연주와 미리 만들어진 몇 곡을 연주하고 있는데 모두 침묵과 내재된 서정이 특징으로 드러나고 있다. 물론 고도의 긴장으로 상승한 뒤 폭포처럼 급강하하며 감상자를 뜨거움에 빠지게 하는 순간도 있지만 이 경우에도 그녀는 음들 하나하나를 풀어헤쳐 숨쉴 여유를 잃지 않는다. 또 그렇다고 쉽게 드러낼 수 있는 빼어난 멜로디를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멜로디 자체에 대한 몰입을 살짝 주저하게 하는 대신 음들 사이의 공간적 침묵, 그리고 그 음들의 흐름에 주목하게 하여 그녀의 마음에서 형성된 시적인 정서를 종합적으로 느끼게 한다. 말하자면 감각을 넘어 진정에 호소하는 연주라 할 수 있겠는데 그렇기에 나는 이 앨범이 들을수록 다양한 감흥을 이끌어내는 질리지 않는 앨범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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