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grimas Negras – Bebo Valdes & Diego “El Cigala” (BMG 2003)

bv대서양 한 가운데 혹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섬이 하나 있지 않을까? 난파한 배의 생존자인 흰색 스페인 선원과 역시 같은 비극을 당한 검은색 피부의 쿠바인 선원이 표류하고 있는 섬. 그래서 처음에는 그 먼 거리만큼이나 달랐던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노래를 부르며 서로의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는 그런 섬 말이다. 쿠바의 노장 피아노 연주자 베보 발데스와 스페인 플라멩코의 대표적인 가수인 디에고 엘 시갈라의 만남을 담고 있는 이 앨범의 음악은 바로 그 섬에 어울리는 음악이다. 심정적인 현실감을 주지만 실제로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지명에 속하는, 말 그대로 가상의 민속 음악이다.

플라멩코와 쿠바 음악이 만나 새로운 음악을 만든다는 것을 생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두 음악은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개성이 강한 음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부색과 세대-베보 발데스는 86세 엘 시갈라는 38세이다-그리고 물리적 거리와 역사적, 음악적 차이와 상관없이 두 사람은 만났다. 그리고 누구도 기대하지 못한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결과가 있기 까지는 라틴 재즈에 관한 좋은 다큐멘터리 영화 Calle 54를 감독했던 페르난도 트루에바의 힘이 가장 컸다.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 기발한 상상력을 지녔을 뿐더러 강력한 추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직접 수록될 곡을 선곡하고 모든 일정을 계획했다. 이렇게 해서 서로에 대해 이해가 없었던 두 인물은 만날 수 있었다.

앨범은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베보 발데스가 엘 시갈라를 초빙했다는 인상을 준다. 그것은 일단 수록 곡 대부분이 쿠바 음악이라는 사실에서 느껴진다. 그런데 이것은 엘 시갈라의 폭넓은 이해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사실 엘 시갈라와 발데스가 처음 만났을 당시 발데스는 플라멩코에 대해 그다지 아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엘 시갈라는 이미 라틴 재즈 트럼펫 연주자 제리 곤잘레스와 함께 녹음을 했던 경험을 지니고 있었다 (이 역시 페르난도 트루에바의 Calle 54가 인연의 끈이었으며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앨범은 베보 발데스와 파키토 드 리베라를 위시한 세션 연주자들이 미리 녹음해 놓은 음악에 엘 시갈라가 분위기를 타면서 합류하는 식으로 녹음되었다.

어쩌면 녹음 방식이 부자연스럽다고 생각될 지 모르겠다. 그러나 앨범에 담긴 음악은 이러한 부자연스러움을 넘어선, 마치 연금술사가 뜻밖의 화학공식을 발견하듯이 어쩌면 제작자와 연주자마저 예상하지 못했을 지도 모르는 감동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것은 쿠바 음악과 플라멩코가 적절히 결합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베보 발데스에 엘 시갈라가 적절히 반응하는 형식으로 음악이 진행되고 있지만 베보 발데스의 재즈가 가미된 다스하고 온화한 피아노는 제 색을 그대로 유지하고 엘 시갈라의 허스키 보이스 창법과 그 정서는 여전히 플라멩코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음악은 이질적인 느낌을 주지 않고 원래 아주 오래 전부터 이러한 스타일의 음악이 있어왔던 것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친숙한 느낌을 준다. 위에 언급했던 대서양 어느 곳에 위치한 낯선 지명의 음악처럼 말이다. 이처럼 부분의 개성이 유지되면서 전체의 아름다움이 새롭게 돋보이는 결과는 음악적 형식을 두고 고민하기 보다 아닌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기반으로 한 정서적 공감이 두 사람 사이에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음악을 추구하면서도 음악의 정서는 궁극적으로 통한다는 진리를 터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니라면 그 누가 쿠바 음악도 아니요 플라멩코도 아닌 이 멋진 음악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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