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e at Keaton’s Bar and Grill – Roy Nathanson (Six Degrees 2000)

로이 나탄손은 현재 뉴욕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진보적인-때로는 급진적이기도 한-재즈의 흐름을 이끄는 인물이다. Jazz Passengers의 리더, Lounge Lizards의 멤버, 앤소니 콜맨과의 오랜 공동작업 등이 그의 등 뒤에 따라 붙는다. 그러나 한가지 그의 이력에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Camp Stories같은 영화음악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기존의 일반적인 음악이 작곡자, 연주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감상자에게 상상의 자유를 허용했다면 영화 음악은 그 이미지로 감상자의 상상이 향하기를 요구한다. 이런 경우 음악은 영화에 종속되며 음악 자체의 독립성은 그다지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이 앨범은 영화 음악은 아니다. 그러나 음악이 하나의 서사적 내러티브에 종속된다는 것에는 영화 음악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차이가 있다면 서사성이 구체적인 이미지와 관련을 맺는 것이 아니라 Keaton’s Bar & Grill이라는 공간에 내포된다는 것이다. 그 공간은 감상자의 상상에 의해서 생명력을 얻게 되는 공간이다. 아무튼 앨범전체가 한 공간을 향하고 있기에 연주자 개개인의 연주는 부수적인 것이 된다. 이런 이유로 아마도 나탄손, 마크 리보, 네드 로젠버그 등의 이름을 앨범에서 발견하고 이러이러한 음악일 것이라고 상상했던 (필자를 포함한) 사람들에게는 의외일 수가 있겠다. 왜냐하면 각 연주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보다는 나탄손의 작곡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앨범에 담긴 음악은 의외로 부드럽고 달콤하다. 쉽게 싫증이 날 정도의 가벼운 것도 아니다. 게다가 다분히 미국적인 색채를 띄고 있다.

어찌보면 아이디어에 있어서 과거 칼라 블레이가 시도했던 재즈 오페라 Escalator over the Hill (ECM 1971)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칼라 블레이의 작품에 비한다면 고정된 등장인물이 있음에도 그 구성이나 전개가 평면적이다. 그것은 음악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를 표현하려고 하는 음악극 치고는 제시하는 드라마가 비교적 단순하다는 것에 있다. 엘비스 코스텔로의 보컬에 의해서 전개되는 이야기의 줄거리는 키톤스 바의 묘사와 이 바에 일어난 불이다. 결국 이 연극적인 음악을 지탱하는 사건은 바의 분위기와 불뿐이다. 이런 드라마의 부족을 나탄손은 바의 분위기의 세밀한 묘사로 채운다. 하나의 공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랄까? 각 음악들은 서사를 위한 시간적인 순서를 따른다기 보다는 동시에 펼쳐지는 바 내의 사람들의 모습을 따르고 있다. (이런 묘사나 분위기는 폴 오스터의 소설이나 빔 벤더스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바를 그리기 위해 나탄손은 전통적인 재즈만을 바라보지 않고 소울, 펑크, 배리 매닐로우의 Paradise Cafe같은 분위기의 발라드 등, 미국 대중음악의 많은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로 인해 나탄손이 묘사하는 바의 모습은 나아가 미국의 일반적인 바의 전형이자 한 시대의 전형으로까지 발전시켜 생각하게 한다. 즉 한 시대에 대한 추억이 앨범의 화두인 것이다. 이 앨범의 이야기에서 바는 불에 타 사라지지만 그 분위기와 음악들은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에 의해서 기억되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탄손은 이야기하고 싶어했는지 모른다.

한편 이 앨범 감상의 또 다른 재미는 엘비스 코스텔로와 데보라 해리의 보컬이다. 두 사람 모두 롹에서 출발하여 재즈에의 편입을 시도했었지만 그다지 큰 감흥을 주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이 앨범에서 두 사람의 보컬은 음악과 멋지게 어울리며 미국적 바의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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