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les Stories – Gerard Pansanel, Antonello Salis (52″ Rue Est 1991)

Beatles Stories – Gerard Pansanel, Antonello Salis (52″ Rue Est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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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앞을 다투어 낯선 유럽의 재즈 음반들을 수입하다 보니 이런 음반을 만나는 경우도 생겼다. 이 앨범을 발매한 52 rue est사의 지명도는 프랑스 내에서도 극히 미약하다. 그것은 이 라벨의 거점이 프랑스 남쪽 도시 몽펠리에라는 지리적 취약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활동자체가 극히 미약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앨범을 국내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한 탕 주의로 저 구석에까지 묻혀 있던 앨범들을 수입해 이익을 보려는 심사의 결과가 아닐지… 이런 한탕주의보다 꾸준한 소개가 더 아쉬워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라벨의 음악들이 수준이하라는 것은 아니다. 이태리와 근접한 지리적 여건을 이용하여 프랑스와 이태리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라벨의 앨범들은 나름대로 상당한 완성도를 보이고 있기는 하다. 그리고 파리가 아닌 서울에서 이 앨범을 만나게 되니 의미의 새로운 장이 형성되면서 그 평가의 기준이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앨범의 화두는 비틀즈의 음악이다. 사실 비틀즈의 음악을 재즈화한다거나 클래식화 하는 식으로 연주하려는 시도는 결과에 상관없이 무척이나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비틀즈의 음악을 어떻게 했다는 이야기만 나오면 신선하다는 느낌보다는 지겹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그것은 많은 시도들의 저변에 대중적 친화력이라는 미명하에 비틀즈를 얄팍한 상업적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일단 이 앨범은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이러한 의혹에서 벗어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데서 점수를 얻는다. 그리고 그 내용도 신선하다.

재즈에서 스탠다드란 곡들이 있다는 것은 결국 재즈는 즉흥 연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해석으로서의 측면도 내재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앨범의 경우 바로 이러한 해석의 차원이 강하게 부각된 예라 할 수 있다. 즉, 이 앨범에서 비틀즈의 곡을 연주한다는 것이 단순히 비틀즈의 곡을 테마로 그 코드 진행에 맞추어 재즈식의 즉흥 연주를 펼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의 난제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비틀즈의 곡의 경우 어떻게 그 곡의 중요 부분을 처리하는 가이다.

제라르 판사넬과 앙토넬로 살리스는 비틀즈의 유명한 곡들의 멜로디를 그대로 들어서 자신들이 구축한 구조 안에 놓는 방식을 취한다. 이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편곡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들은 비틀즈 곡이 지닌 구조를 와해시키고 새로이 구축하는 차원에서 확장의 어법을 사용한다. 즉, 단순히 테마를 지탱하는 새로운 하모니제이션 외에 테마를 이끌거나 이어받아 발전 시키는 새로운 테마들을 집어 넣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틀즈가 아닌 완전한 자신들의 새로운 곡으로 탈바꿈 시킨다. 그러한 새로운 곡의 느낌에는 이들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적인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프랑스 남부와 이태리의 분위기가 드러나는데 특히 필자의 경험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앨범이 녹음된 햇살이 찬란한 지중해를 낀 프랑스 도시 몽펠리에의 여름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아에 말랑말랑한 분위기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적당한 긴장과 이완을 연출하고 잇는데 자신들의 만들어낸 긴장을 비틀즈로 풀어가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이러한 분위기는 비틀즈의 음악에 자신들이 직접 작곡한 곡들을 전후를 고려하여 삽입하는 것으로 앨범 전체의 기조에도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비틀즈의 음악은 그 자체로 대상이었다기 보다 이들의 음악에 영감을 제공하는 일종의 단초가 아니었을까?

제라르 판사넬이 연주하는 기타는 일반적인 재즈 전통에 입각한다기 보다는 지미 헨드릭스 계열의 사운드를 지니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롹적인 분위기의 스트레이트함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우주적인 음색을 기본으로 침묵을 적절히 활용한 연주를 들려주는데 지금까지 필자가 들었던 그의 앨범 중 가장 연주자로서의 역량이 잘 드러나는 연주라 생각된다. 앙토넬로 살리스 역시 피아노와 아코디언을 오가며 오른손보다는 왼손을 통한 단절과 연속을 적절히 혼합하는 연주를 들려주는데 사이드맨이 아닌 리더로서 그의 진가가 확인된다. 게다가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모르지만 허밍을 적극 활용하는데 이 또한 재미있다.

누구는 이 앨범을 듣고 이게 비틀즈야?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그 질문에 나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비틀즈냐 아니냐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는 것이라 이들의 음악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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