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느끼게 하는 재즈 앨범들

지독한 추위를 견디게 하는 힘은 내일이면 따듯해지리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을 우리는 희망의 계절이라 부른다. 봄에는 정말 눈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 많다. 볼 것이 많아 “봄”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될 정도다. 정겨운 햇살이 비추고 모노톤의 세상이 갑자기 총천연색 컬러로 뒤덥히는 시기. 꽃들이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밀고 나비가 자유로이 날기 시작하는 시기. 봄은 분명 이러한 자연의 변화를 경험하는데 투자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시기다. 인간의 음악도 어쩌면 자연의 교향곡 앞에서는 힘을 잃고 만다. 봄 그 자체가 찬란하고 황홀한데 음악이 무슨 필요가 있으랴. 그러나 하루가 단조롭고 또 화려하지 못한 건물들 속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봄은 상상 속의 희망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상상의 세계로 안내하게 만드는 음악이 다시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3월을 맞아 비록 주관적이지만 봄에 어울리는, 봄을 상상하게 만드는 듣기 편한 재즈 앨범 10장을 선정 소개해 본다.

April In Paris – Count Basie (Verve 1957)

  재즈에서 파리와 관련된 봄 노래들은 의외로 많다. 그 중에서 “4월의 파리”를 표현한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가장 대표할만한 것이다. 사실 4월의 파리는 겨울에 가깝다. 스산하고 춥고 흐리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봄의 기운은 약동하고 있으니 카운트 베이시는 바로 이러한 파리의 4월을 제대로 이해했다. 그래서 칙칙한 겨울을 벗어나는 듯한 강렬한 서주로 시작해서 긴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활력을 얻기 시작한 봄의 정경, 회색 건물만큼이나 푸른 잎사귀의 나무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는 파리의 모습을 짧지만 인상적으로 그려 나간다. 이 앨범이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의 가장 대표적인 앨범으로 인정 받는 것도 흥겨운 연주에 내재된 회화적 특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오래된 사운드가 주는 안개 빛 느낌은 파리의 봄의 이미지를 더 강화시킨다.

Sing A Song Of Basie – Lambert, Hendricks & Ross (Verve 1958)

  데이브 램버트, 존 핸드릭스, 애니 로스로 구성된 이 트리오가 없었다면 어쩌면 지금의 맨하튼 트랜스퍼는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 세 사람은 재즈 최초의 혼성 중창단이었다. 이들의 재즈 노래들은 혼성의 구성을 적극 살려 대화를 하는 듯한 연극적 느낌을 자연스럽게 구사하곤 했는데 이 독특함은 많은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이들의 첫 앨범 <Sing A Song Of Basie>는 그 제목이 말하듯 스윙 빅밴드의 대명사 카운트 베이시의 곡에 직접 가사를 붙여 노래한 것이었다. 앨범에서 램버트, 헨드릭스, 로스는 가벼운 스윙 리듬을 배경으로 솔로와 합창을 오가며 기분 좋은 울림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안에 내재된 시원함과 차가움이라는 상대적 정서는 겨울과 봄이 교차하는 3월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Billy Taylor With Four Flutes – Billy Taylor (Riverside 1959)

  가볍고 자유로운 느낌을 표현하는 데는 역시 플루트가 제격이 아닐까 생각된다. 현재는 재즈 교육자로 더 잘 알려진 피아노 연주자 빌리 테일러는 1959년 당시로서는 특이하게 허비 맨, 제롬 리차드슨 등 4명의 플루트 연주자를 불러 앨범 한 장을 녹음했다. 플루트 특유의 부드러움과 나른한 안도감을 잘 살린 이 앨범의 시원함은 마치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솟아 오르는 5월의 분수를 연상시킨다. 저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경쾌한 리듬과 플루트로부터 공기를 가르며 흘러 나오는 아기자기한 멜로디들의 연결이 감상하는 내내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짓게 만드는 앨범이다. 정말 재즈서 쿨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면 이 앨범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New Vibe Man In Town – Gary Burton (RCA 1961)

  봄은 시작의 계절이기도 하다. 그리고 연주자에게 있어서 봄은 첫 앨범으로 시작된다. 그 첫 앨범에는 그 연주자의 미래가 맹아(萌芽)의 형태로 담겨 있다. 그 중 비브라폰 연주자 게리 버튼의 첫 앨범만큼 신선하고 충격적인 연주를 담고 있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현재는 중후하고 다양한 질감을 표현하는 연주로 사랑을 받고 있지만 10대의 나이로 녹음했던 이 첫 앨범에는 젊음의 약동하는 힘과 기존의 비브라폰 연주자들에게서 과감히 벗어난 생경한 즐거움이 주가 되고 있다. 익숙한 스탠더드 곡들이지만 그의 비브라폰은 이 곡들에 건드리기만 해도 튀어 오를 것 같은 싱싱한 탄력을 부여했다. 이러한 탄력은 35년이 지난 오늘 다시 들어도 몽롱한 정신을 번쩍 들게 할 정도로 상큼하다.

Sweet Honey Bee – Duke Pearson (Blue Note 1966)

그렇게 국내 재즈 애호가들에게 알려진 편은 아니지만 피아노 연주자 듀크 피어슨은 밝고 경쾌한 피아노 연주만큼 귀에 속 들어오는 멜로디를 만들고 이를 멋지게 편곡하는 작,편곡자로서도 재즈사에 큰 흔적을 남겼다. 그 가운데 <Sweet Honey Bee>는 듀크 피어슨의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음악 세계가 가장 잘 드러나 있는 대표작이다. 특히 앨범의 타이틀 곡은 말 그대로 꽃잎들을 오가는 꿀벌의 부지런한 움직임처럼 화사하고 건강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사실 필자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벌보다는 팔랑거리며 바람의 흐름을 이용하며 자유 유영하는 나비의 모습이 더 많이 연상된다. 특히 제임스 스폴딩의 플루트가 이끄는 테마의 멜로디가 그렇다. 그리고 표지를 장식한 여인네의 옷차림이 이 이미지를 강화 시킨다.

Spring Song – Eugen Cicero Trio (Timeless 1992)

  이제는 고인이 된 피아노 연주자 유진 시세로는 자끄 루시에만큼이나 클래식을 재즈로 연주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그러나 자끄 루시에가 클래식의 엄격함을 나름대로 존중했다면 유진 시세로는 멜로디의 낭만적 표현에 보다 큰 관심을 가졌다. 이것이 그의 음악에 대한 평가를 하락시키기도 했지만 그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낭만적 연주에 전력했다. 그 중 앨범 <Spring Song>은 멘델스존의 “봄의 노래”를 앞세운 앨범이다. 물론 앨범엔 바하, 쇼팽, 파가니니, 스메타나의 곡들이 시세로의 낭만주의로 새롭게 연주되고 있다. 그러나 상쾌한 느낌만큼은 멘델스존의 “봄의 노래”가 가장 뛰어나다. 파랑새를 찾아 나섰던 치루치루와 미치루를 연상시키는 파스텔 톤의 표지 그림처럼 온화하고 부드러운 봄의 기운이 그대로 드러나는 연주다.

Both Worlds – Michel Petrucciani (Dreyfus 1998)

봄이 되면 누구나 산뜻하고 화사한 것을 찾게 된다. 만약 이것을 재즈에서 찾는다면 미셀 페트루치아니의 음악이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투명하고 상큼하면서 동시에 따스함을 담고 있는 그의 피아니즘은 봄에 어울리는 것이다. 그 중 미국과 유럽의 연주자들을 불러 녹음한 <Both Worlds>는 산뜻한 페트루치아니의 음악적 정서가 가장 잘 표출된 앨범이다. 특히 앨범에 담긴 곡들은 모두 잊기 어려운 감각적인 멜로디를 지녔는데 트롬본 연주자 밥 부룩마이어가 이끄는 관악 섹션과 페트루치아니의 피아노는 이 인상적인 멜로디들을 마치 가벼운 옷차림으로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오후의 거리를 산책하듯 부드럽고 경쾌하게 표현한다. 저절로 겨울의 우울을 잊게 해주는 앨범이다. 

In Love Again – Stacey Kent (Candid 2002)

  보통 재즈 보컬 하면 흑인 여성 보컬을 떠올리게 되지만 현대 재즈는 의외로 백인 여성 보컬의 힘이 더 강하다. 그 가운데 스테이시 켄트의 활약도 눈여겨 볼만한데 이 여 가수는 밝고 귀여운 목소리로 저절로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한다. 그 가운데 유명 스탠더드 작곡가 리차드 로저스의 곡들을 그녀만의 방식으로 노래했던 2002년도 앨범 <In Love Again>에는 정말 살랑거리는 봄바람 같은 노래가 있다. 바로 “It Might As Well Be Spring”으로 가볍게 통통거리는 기타 반주를 배경으로 스테이시 켄트는 그녀 특유의 귀여움으로 귀를 간질인다. 저절로 겨울의 무거움을 벗어버리고 봄을 노래하게 만드는 곡이다. 사실 스테이시 켄트의 모든 앨범은 봄에 어울리는 정서를 담고 있지만 이 곡만큼 봄을 느끼게 해주는 경우는 없다는 생각이다.

Moonlight Becomes You – Eddie Higgins (Venus 2003)

 에디 히긴즈의 매끈하고 정갈한 피아노 연주가 주는 상쾌함은 나뭇잎에 맑게 고인 이슬 방울의 감촉이상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노장의 나이에 걸맞지 않는 젊음의 생기가 늘 느껴진다. 최근 비너스 레이블을 통해 새로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그의 <Moonlight Becomes You>는 그간의 피아노 트리오 중심에서 스트링 오케스트라와 비브라폰 등을 참여시켜 녹음한 이색적인 앨범이다. 그러나 기존 에디 히긴즈의 여유와 낙관의 정서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트링 섹션의 연주는 부드러운 바람을 연상시키고 조 록크의 비브라폰은 하루가 다르게 짙어가는 꽃들을 연상시킨다. 물론 여기에 에디 히긴즈의 피아노는 촉촉한 수분이다. 실제 앨범에는 “When April Comes”라는 에디 히긴즈의 자작곡이 담겨 있다.

Norrland – Jonas Knutsson & Johan Norberg (ACT 2004)

jk  스웨덴의 색소폰 연주자 요나스 크누손은 재즈에 자국의 목가적인 민속 음악을 결합한 음악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언제나 북유럽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상상하게 만든다. 기타와 칸텔레라고 하는 역시 기타 류의 민속 악기를 연주하는 요한 노르베르그와 함께 듀오로 녹음한 이번 최신 앨범도 기존의 크누센이 보여주었던 전원적 공간을 떠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차가운 겨울 대륙에 막 찾아온 봄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가슴 뭉클한 동경을 머금은 크누손의 색소폰은 아련하게 피어 오르는 봄날 아지랑이처럼 공기 속을 부유하는 것만 같다. 특히 3번 트랙“Ansia”는 꽃이 만개하는 장면을 고속 카메라로 촬영해 보여주는 것 같은 시각적 환상을 제공한다.

4 COMMENTS

  1. 아오…선율들이 봄바람처럼 산들산들~^^
    무엇에 대한 설렘인지 모르겠지만, 간만에 설레임도 느껴보고..좋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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