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oy Named Charlie Brown – Vince Guaraldi Trio (Fantasy 1969)

어린이의 밝고 긍정적인 세계를 반영한 청량한 연주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러하듯 어린 시절의 나는 만화를 매우 좋아했다. 그 가운데 <톰과 제리>, <미키 마우스> 등 유쾌한 요소가 강한 애니메이션을 즐겼다. 그런데 이들 애니메이션들은 종종 재즈를 사운드트랙으로 사용하곤 했다. 미키 마우스가 어렵게 마차를 운전하거나 제리를 추격하는 톰이 이런 저런 장애물에 부딪히는 장면 등에서 재즈는 주인공의 움직임, 사건에 절묘하게 어울렸다. 그래서 아직 재즈는 물론 음악 자체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던 어린 내 귀를 사로잡았다. 훗날 내가 재즈를 사랑하게 된 것에는 분명 이 시절의 경험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최근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주제곡 ‘Let It Go’에 빠진 전 세계의 어린이들은 분명 팝 음악을 더욱 쉽게 받아들일 것이다.)

언급한 애니메이션과 함께 전세계의 어린이들에게 재즈의 맛을 느끼게 해준 애니메이션이 또 있다. 바로 <피너츠>이다. 국내에는  ‘피너츠’보다 등장 캐릭터의 하나인 ‘스누피’로 친숙한 이 만화는 찰리 브라운을 중심으로 한 어린이들의 세계를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어린이들만 웃고 즐기는 것이 아닌 어른들에게도 삶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렇기에 아이와 어른을 가리지 않고 큰 인기를 얻었다. 애초 이 만화는 신문 연재용으로 제작되었다. (1950년 10월 2일에 시작되어 작가 찰스 먼로 슐츠가 세상을 떠난 다음 날인 2000년 2월 13일에 연재를 종료했다.) 그러다가 만화의 인기에 힘 입어 1965년에 공개된 <A Charlie Brown Christmas>을 시작으로 60여편의 TV용 특집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었다. 지금도 내년인 2015년 방영을 목표로 <Peanuts>란 제목의 애니메이션이 제작 중에 있다고 한다.

이들 애니메이션의 음악은 빈스 과랄디가 담당했다.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이 피아노 연주자는 비브라폰 연주자 칼 제이더의 그룹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재즈 연주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1955년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앨범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한 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런 중 1962년도 앨범 <Jazz Impressions of Black Orpheus>가 음악적 전환점을 가져다 주었다. 이 앨범은 보사노바 음악을 세상에 알린 영화 <흑인 오르페>의 사운드트랙을 재즈로 연주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운드트랙 곡들만으로는 부족한 면이 있어 자작곡 몇 곡을 추가로 연주했다. 그런데 그 중 한 곡인 ‘Cast Your Fate To The Wind’가 기대하지 않았던 인기를 얻었다.

이 곡은 TV 프로듀서 리 멘델손의 귀를 사로잡았다. 그는 찰스 먼로 슐츠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의 음악을 담당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 때 금문교 위를 운전하다가 이 B 사이드 싱글곡을 듣게 된 것이다. 당시 리 멘델손은 데이브 브루벡이나 칼 제이더를 머리 속에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데이브 브루벡처럼 산뜻하고 밝게 연주하며 칼 제이더와 함께 활동했던 낯선 피아노 연주자에게 음악을 의뢰하기로 결심했다.

리 멘델손의 기대에 맞게 빈스 과랄디는 다큐멘터리에 어울리는 음악을 단번에 만들어 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다큐멘터리는 방송을 타지 못했다. 그럼에도 제작자와 작곡가 겸 피아노 연주자의 관계는 끝나지 않았다. 리 멘델손은 1964년 <피너츠>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크리스마스 특집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게 되었다. 당연히 음악은 빈스 과랄디가 담당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크리스마스 특집 애니메이션 <A Charlie Brown Christmas>는 큰 인기를 거두었다. 음악도 별도의 인기를 얻었다. 사실 재즈가 대중 음악의 변방으로 밀려나고 갈수록 팝 장르의 음악이 그 중심에 서던 상황에서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에 재즈를 배경에 사용하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와 상관 없이 사운드트랙 앨범은 크리스마스 캐롤 앨범의 고전이 되어 매년 겨울마다 꾸준한 관심을 받게 되었다. 아마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중 상당수 또한 이 앨범에 앞서 몇 해 전에 라이선스로 발매된 이 앨범을 듣고 만족했으리라 생각한다.

<A Charlie Brown Christmas>의 성공에 힘 입어 이후 찰리 브라운을 중심으로 한 <피너츠>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 지속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 <A Boy Named Charlie Brown> 또한 1969년에 제작된 애니메이션을 위한 사운드트랙을 담고 있는 앨범이다.

10곡의 기존 앨범 수록 곡에 한 곡의 얼터너티브 테이크를 보너스로 수록하고 있는 이 앨범은 <A Charlie Brown Christmas>의 연장선상에 있는, 말하자면 빈스 과랄디표(標) 음악을 들려준다. 그리 조급하지도 늘어지지도 않는 리듬을 배경으로 테마 멜로디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이를 다시 간결하고 산뜻하게 확장하는 즉흥 솔로 연주로 이루어진 청량감 강한 연주가 전체를 지배한다. ‘Linus and Lucy’가 대표적이다. 애초에 찰스 먼로 슐츠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위해 만들어진 이 곡은 빈스 과랄디와 ‘피너츠’ 시리즈 애니메이션에 담긴 세계관을 함축적으로 대변한다.

이러한 청량감은 빈스 과랄디가 산뜻하고 경쾌한 사운드를 추구하는 웨스트 코스트 재즈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앨범이 언급했던 것처럼 어린이들의 세계를 그린 애니메이션을 위해 만들어진 것임을 무시할 수 없다. 어린이의 세계는 (설령 애니메이션이 어른들의 세계를 아이들을 통해 그렸다고 해도) 늘 천진난만하다. 슬픔마저 쉽게 즐거운 감정으로 바뀔 수 있다. 기본적으로 착하고 행복한 세계가 어린이의 세계이다. 실제 수록곡 가운데 ‘Linus and Lucy’를 비롯해 ‘Schroeder’, ‘Charlie Brown Theme’, ‘Freda’, 등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를 위해 만들어진 곡들만 해도 밝고 경쾌하며 가볍다.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았어도 각각의 캐릭터들이 어린이답게 순진무구하며 개구쟁이 기질이 다분하리라 상상하게 한다. 그래서 산뜻한 리듬과 끈적거림 없는 뽀송뽀송한 연주에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다른 곡들도 마찬가지다. ‘Oh Good Grief’나 ‘Blue Charlie Brown’처럼 근심과 슬픔을 주제로 한 곡에서도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는 그대로 유지된다. 오히려‘Happiness Is’가 느린 템포와 차분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지만 행복을 주제로 한 곡답게 결코 슬픔이나 우울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 밖에 보사노바 리듬 위를 경쾌하게 달리는 ‘Pebble Beach’나‘Baseball Theme’, 앨범에서 유일하게 빈스 과랄디의 곡이 아닌 ‘Fly Me To The Moon’ 또한 귀엽고 유쾌한‘피너츠’의 세계를 그리게 한다.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위해 만들어진 만큼 그리 복잡하지 않은 즉흥 연주와 귀에 착 감기는 테마를 지닌 수록 곡들은 분명 1969년 당시 여러 어린이들에게 재즈에 대한 관심, 혹은 훗날 이유 없이 재즈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 나처럼 재즈를 좋아해 꾸준히 듣고 있는 애호가들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도 유효하리라 본다. 재즈에 대해서만큼은 어린이에 가까운 어른 입문자들에게 재즈의 매력은 물론 재즈의 구조를 편하게 이해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런데 이 앨범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단순히 ‘복잡하지 않은 즉흥 연주와 귀에 착 감기는 테마’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런 앨범들은 참 많다. 그보다는 역시 이 앨범에 담긴 동심어린 밝은 정서 때문이 이 앨범을 시간이 흘러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걱정과 근심이 많은 어른들에게 유년시절을 추억하고 행복한 세상을 그리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번 삶이 좀 힘들고 우울하다 싶을 때 앨범을 들어보라. 위로와 위안의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요즈음처럼 시절이 어수선할 때에는……

2 COMMENTS

  1. 타이틀부터 귀염귀염했는데…아이구~~…’뽀송뽀송’ 표현이 너무 귀엽습니다!

    음악이 요녀석들을 상상하게 합니다. 귀엽고 천진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은 인생살이에 나름의 고뇌에 찬 그들…^^

    • 스마트 게임 앱 중에 스누피, 찰리 브라운 등의 친구들이 마을을 만드는 것이 있죠. 한동안 저도 했는데 동네가 귀여웠습니다. 그 앱에도 빈스 과랄디의 음악이 나오더군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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