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tin’ – 현용선 (Mirrorball 2013)

Bootin’ – 현용선 (Mirrorball 2013)

탄탄한 기본을 바탕으로 자신의 매력을 드러낸 연주

나는 재즈에 관한 글을 쓴다는 이유로 늘 새로운 재즈에 시선을 두고 있다. 재즈의 경계를 다시 확장시키는 새로운 재즈를 만날 때마다‘재즈를 듣는 즐거움은 이런 것이지’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런데 매일 같이 다양한 스타일의 재즈를 듣다 보면 갑자기 길을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을 느낄 때가 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가 결국 해지는 저녁 무렵에서야 집으로 가는 길을 잊었음을 깨닫고 울음을 터뜨리는 어린아이처럼 근원 혹은 기본에서 너무 멀어진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시간을 되돌리고 기억을 더듬는 마음으로 오래된 재즈, 특히 1950,60년대의 하드 밥을 듣곤 한다. 블루스가 있으며 경쾌한 흔들림(스윙)과 흑인적인 진득한 맛이 어우러진 사운드를 한 두 시간 듣다 보면 잃었던 방향감각을 다시 찾는 듯한 느낌, 집으로 돌아온 듯한 안도의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면 다시 새로운 재즈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기타 연주자 현용선의 이번 첫 리더 앨범을 들었을 때도 나는 다소 복잡했던 나의 재즈 감상 생활이 정리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앨범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기본에 충실함 때문이었다. 이 기타 연주자는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곡의 구조를 복잡하게 가져가지 않는다. 그리고 무게감을 준다고 긴장을 과하게 곡에 부여하지도 않는다. 또한 무작정 정서적 효과를 위해 앙상블에 치중하여 연주를 희생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는 경계선 위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하면서도 바깥쪽보다는 안쪽에 조금 더 무게 중심을 둔 연주, 명쾌하고 직선적이다 못해 담백한 맛이 나는 연주, 그리고 다른 동료들과 함께 즐기는 연주를 펼친다.

그래서 스타일로만 본다면 그의 연주는 하드 밥 시대에 대한 존중을 바탕에 깔고 있다고 할 수 있다.‘갈아타는 곳’이 마일스 데이비스의 ‘So What’의 코드 진행을, 타이틀 곡으로 내세운‘What Are You Waiting For’가 스탠더드 재즈 곡 ‘What Is This Thing Called Love’의 코드 진행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좋은 예이다. 미디엄 템포를 배경으로 나른한 맛이 느껴지는 블루스 스타일의 곡 ‘Solo Dance’ 또한 그렇다. 이들 곡에서 기타 연주자의 솔로는 하드 밥 시대의 치열한 연주를 연상하게 한다. 화려하게 장식하기보다 핵심을 곧바로 파고드는 연주, 대단한 혁신보다는 주어진 형식 안에서 자신만의 놀이 방식을 찾는 연주랄까? 이러한 올곧은 연주는 연주자로서의 자신감이 없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잘 아는 연주자에게만 해당하는 일이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명확한 인식에 바탕을 둔 자신감은 세세한 텍스트의 변화에도 능숙한 적응을 가능하게 한다. 변박의 펑키 리듬 위를 달리는‘Lemonade’와‘숨바꼭질’같은 곡이 그렇다. 이들 곡에서 현용선의 솔로는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상당히 현대적이다. 모던보다는 컨템포러리에 더 가깝다고 할까? 한편‘Bom Dia’나 ‘Lady’처럼 정서적인 부분이 상대적으로 더 돋보이는 곡에서의 가벼이 노래하는 듯한 연주는 감성적 퓨전 재즈의 느낌마저 준다.

그렇기에 그의 연주는 전통을 존중하지만 정작 하드 밥 시대의 연주보다 참신하지 못한, 그저 그런 보수적 연주자와는 다르다. 과거를 잊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위치한 현재를 그는 잘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내가 이 앨범을 듣고 현대 재즈의 복잡한 지형도에서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을 해소할 수 있었다고 한 것은 단지 전통에 한 발을 두고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익숙함에서 출발해 신선함으로 나아간 사운드 때문이었다. 과거지향이 아니라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역사의 연속을 보았던 것이다.

한편 기타 연주자 현용선의 모습이 앨범에서 가장 돋보이기는 하지만 그 외에 작곡가/편곡가로서의 모습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의 곡들은 기존에 알려진 스탠더드 곡들의 코드 진행을 사용하거나 7박, 3박, 8박, 펑키 등의 다채로운 리듬을 바탕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는 기타 솔로의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중에서도 작곡에 영향을 준 일상에서의 정서적 경험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우리 말로는 ‘안녕하세요’ 혹은 ‘좋은 아침’으로 해석되는 포르투갈어 제목의 ‘Bom Dia’를 보자. 임보라의 피아노 인트로만으로도 이미 싱그러운 아침이 연상되지 않던가? ‘갈아타는 곳’이나 ‘What Are You Waiting For’에서의 직선적으로 질주하는 기타는 그 자체로 곡 제목을 그대로 반영한다. 한편‘Lady’에서 뒤뚱거리는 3박의 리듬, 나른한 설렘과 긴장을 오가는 기타에서는 아련한 첫사랑의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한편 ‘Lemonade’와 ‘숨바꼭질’의 경우 강약의 조절이 돋보이는 펑키 리듬이 레몬의 신 맛, 숨고 찾는 놀이의 재미를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정서적인 측면이 전체 사운드에 잘 녹아 있기에 기본과 전통에 충실한 그의 연주가 진부하거나 과거지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저 음악적 기교에만 충실했다고 하면 이 앨범은 그렇게 좋은 인상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연주에 대한 자신감만큼이나 감상자와 공감하고자 하는 바가 또렷했기에 다른 어느 거창하고 화려한 앨범보다 개성적인 매력을 지닐 수 있었다.

현용선은 포털 사이트 다음(www.daum.net)에 <현용선의 재즈노트>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아직 활성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이 카페에 그가 올린 글 가운데 이런 문장이 있다.

<‘설명’은 음악에서 설득력을 얻고 나서야 그것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생기거나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는 것이다. 너무 설명에만 의존하거나 집착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번 앨범이 작곡과 연주의 측면 모두에서 그의 이 말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음악 자체가 특별한 언어적 설명이 필요 없는 설득력을 지녔다고 말하고 싶다. 나의 이 별볼일 없는 글은 더구나 필요 없는 것이리라. 그러므로 나의 부족한 글은 여기서 마친다. 나머지는 음악 그 자체가 설명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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