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브 브루벡 (Dave Brubeck: 1920.12.06 ~ 2012.12.05)

DB

2012년 12월 5일 피아노 연주자 데이브 브루벡이 세상을 떠났다. 아들과 함께 심장병 전문의를 만나러 가는 중에 심장 마비가 일어났다고 한다. 심장관련 지병이 있었던 듯하지만 그래도 병원에 가는 길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참으로 모순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그의 92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날에 세상을 떠났다 하니 더욱 안타깝다. 확실히 죽음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아무튼 다음 날로 예정되어 있던 생일 파티는 장례식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나는 기이하게도 데이브 브루벡의 사망 소식을 듣자 고인의 가족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안도감을 느꼈다. 저 멀리 미국에 있는, 제대로 본 적 없는 사람의 죽음이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나는 누구보다 오랜 시간 그의 죽음을 걱정해왔다. 내가 그의 죽음을 걱정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피아노 솔로 앨범 <Private Brubeck Remembers>이 발매되면서부터였다. 이 앨범에서 그는 2차 대전 당시 국악대원으로 복무했던 자신의 군생활과 아내와의 사랑을 추억하며 그와 관련된 곡들을 연주했다. 그것도 모자라 그 시절을 주제로 기자 월터 크론카이트와 나누었던 인터뷰를 보너스 CD로 수록했다. 이 앨범을 들으며 나는 80대에 접어든 그가 자신의 삶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역시 피아노 솔로로 녹음한 2007년도 앨범 <Indian Summer>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을을 주제로 한 곡들을 녹음한 이 앨범에서 그는 각 곡들과 관련된 젊은 시절의 추억을 담담하게 드러냈다. 같은 해 발매된 앨범 <Brubeck Meets Bach>에서 자신이 작곡한 클래식 성향의 곡들과 재즈곡들을 정리한 것도 고인이 어느 정도 자신의 마지막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생각하게 했다.

그래서일까? 눈을 감는 순간 데이브 브루벡이 그리 당황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차근차근 정리하고 준비했던 일이 드디어 왔구나 하며 침착하게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을 것 같다. 92번째 생일 파티를 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잠깐 들었을까? 그 보다는 92해의 삶을 꽉 채우고 떠나는 것에 충만감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데이브 브루벡식 우아함

데이브 브루벡이 준비했던 삶의 마지막은 그리 화려하지도 그리 비장하지도 않았다. 마지막일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섞인 감정보다는 지난 시절은 참 아름다웠고 이를 추억할 수 있어 좋다는 듯한 만족과 여유의 감정이 더 강했다. 앨범 <Indian Summer>가 특히 그랬다. 노장이 연주한 가을은 다가올 겨울에 대한 불안 보다는 황금 빛 가을에 대한 도취로 가득했다.

그런데 이러한 여유와 충만의 정서는 사실 피아노 연주자의 말년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었다. 그가 평생에 걸쳐 보여주었던 것이었다. 그의 연주 가운데 눈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슬픈 발라드가 있던가? 적어도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언제나 그의 연주는 부드러웠고 낭만적이었다. 그리고 우아했다. 특히 그의 연주에 서린 우아함은 동시대의 재즈 연주자들과 그를 구분하게 했다.

이러한 우아함은 그의 클래식 소양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1920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전문 클래식 교육을 받았던 어머니에게서 4살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그리고 대학에서도 클래식을 공부했다. 특히 클래식 작곡가 다리우스 미요의 가르침을 많이 수용했다. 이로 인해 그의 재즈에는 클래식적인 요소가 강했고 이것이 그만의 우아함을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겠다.

데이브 브루벡식 우아함이 잘 드러나는 곡으로 나는 ‘Brandenburg Gate’를 꼽고 싶다. 1958년도 앨범 <Jazz Impressions Of Eurasia>에서 처음 녹음된 이후 1963년 <Brandenburg Gate: Revisited>에서 새로이 편곡되고 2007년도 앨범 <Brubeck Meets Bach>에서 클래식적인 맛이 더욱 가미된 스타일로 연주되기도 했던 이 곡은 클래식의 대위법과 재즈의 가벼운 리듬이 만나 우아하면서도 선선한 데이브 브루벡의 음악 그 자체를 가장 명확히 보여준다.

편하지만 실험적인

그런데 우아하다는 표현에서 클래식의 고상함을 연상한 나머지 그의 클래식적 소양이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사용되었다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는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부라 생각하면 곤란하다. 동시대의 다른 연주자들처럼 그 또한 치열하게 자신만의 새로운 재즈를 고민했다. 여기서 클래식적 소양은 그 동력으로 작용했다.

1956년에 발매되었지만 실은 1949년 다리우스 미요에게 가르침을 함께 받았던 동료들과 녹음한 <Dave Brubeck Octet>앨범이 좋은 예이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Birth Of The Cool>에 견줄만한 신선한 연주는 클래식적인 요소를 재즈에 적용한 결과였다. 그런데 그 연주가 우아하기는 하지만 마냥 받아들이기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시간이 지나 데이브 브루벡이 유명해 진 이후인 1956년에서야 발매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녹음된 <Birth Of The Cool>도 같은 해 발매되었다.)

한편 그는 마일스 데이비스 같은 연주자들로부터 스윙감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듣곤 했다. 아무래도 뜨거운 핫 재즈 연주자들에게는 물처럼 부드럽게 흐르는 데이브 브루벡의 연주 스타일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데이브 브루벡의 음악이 너무 가벼워서 재즈 같지 않다고 불평했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은 클래식 수업을 받은 백인 연주자라는 사실, 그리고 그의 음악이 너무나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에서 비롯된 과대 해석에 가깝다. 빌 에반스도 이와 유사한 경험을 겪지 않았던가?

사실 이러한 비판이 제기되었던 것은 데이브 브루벡의 음악이 그만큼 개성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개성이 클래식 수업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가운데 독특한 그만의 리듬 활용은 스윙과 다른 차원에서 그의 음악을 바라보게 했다. 앨범 <Dave Brubeck Octet>에서부터 그는 5/4, 9/8, 11/4 같은 흔히 사용되지 않는 박자를 즐겨 사용했다. 이것은 데이브 브루벡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Take Five’가 실려 있는 1959년도 앨범 <Time Out>에서 정점에 올랐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Take Five’의 4분의 5박자를 비롯하여 ‘Everybody’s Jumpin’’과 ‘Pick Up Sticks’의 4분의 6박자 등 이채로운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터키의 민속 리듬을 활용했다는 ‘Blue Rondo à la Turk’의 경우 8분의 9박자와 4분의 4박자가 혼용되고 있다. ‘Three To Get Ready’도 4분의 4박자와 4분의 3박자를 오간다. 이처럼 실험적인 리듬의 사용은 그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우회하게 한다.

한편 익숙하지 않은 리듬을 사용한 실험적인 곡들로 채워졌음에도 앨범 <Time Out>은 빌보드 팝 앨범 차트 2위에 오를 정도로 상업적인 측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앨범이 되었다. 특히 애초에 드럼 연주자 조 모렐로의 드럼 솔로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Take Five’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이러한 앨범의 인기는 실험적인 리듬 위로 흐르는 우아하고 깔끔한 멜로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데이브 브루벡과 함께 그룹의 사운드를 책임졌던 색소폰 연주자 폴 데스몬드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데이브 브루벡 쿼텟

옥텟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데이브 브루벡의 진정한 리더 활동은 트리오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1951년 가끔씩 트리오와 함께 하던 폴 데스몬드가 정식으로 가입하면서 쿼텟이 되었다. 이후 베이스와 드럼 연주자가 수 차례 바뀌는 과정에서도 두 사람은 우애를 과시하며 18년을 함께 했다. 실 생활에서 두 사람은 대조적인 부분이 많았다. 데이브 브루벡은 가정적이었던 반면 폴 데스몬드는 한 여자에 정착하지 못했으며 골초에 마약까지 하는 무절제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음악에서만큼은 두 사람은 서로 잘 어울렸다. 부드럽고 우아한 데이브 브루벡의 피아노와 비브라토가 절제된 청량한 폴 데스몬드의 색소폰은 서로의 알터 에고처럼 작동했다.

그룹은 샌프란시스코의 블랙 호크 클럽에서 지명도를 넓힌 후 데이브 브루벡의 학구적인 스타일을 반영한 듯 특이하게도 대학 캠퍼스를 돌며 공연을 펼쳤다. 그리고 그 공연들은 대단한 호응을 얻었다. 이 시기의 활동을 정리한 <Jazz At Oberlin>(1953), <Jazz At The Collage Of The Pacific>(1953), <Jazz Goes To Collage>(1954) 등의 앨범들 또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 결과 타임지의 1954년 11월호 표지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전까지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한 재즈 연주자는 루이 암스트롱 밖에 없었다. 그래서 듀크 엘링턴이 먼저였어야 했다고 생각한 데이브 브루벡은 이를 당황해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루이 암스트롱처럼 쿼텟 또한 공식 재즈 대사가 되어 세계 곳곳을 돌며 공연을 했으니 타임지의 판단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던 듯싶다.

보통 데이브 브루벡과 그의 쿼텟을 대표하는 앨범으로 1959년도 앨범 <Time Out>을 꼽는다. 그런데 워낙 이 앨범이 큰 인기를 얻었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시간 구분 없이 쿼텟의 성공 신화가 이 앨범에서 시작되었다고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언급했던 것처럼 쿼텟은 이 앨범 이전에 이미 인기의 정상에 올랐다. <Time Out>은 그 정점이었을 뿐이다. 이후 쿼텟은 꾸준히 클래식적인 요소를 적절히 가미한 우아한 재즈로 인기를 이어갔다.

쿼텟은 팝 스타 이상의 높은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데이브 브루벡은 이러한 인기를 평소 부담스러워 했던 것 같다. 또한 수 많은 공연도 마찬가지. 그래서 그는 공연보다는 작곡에 더욱 치중하기로 결정하고 과감하게 쿼텟을 해체시켰다. 이후 그가 치중한 작곡은 재즈를 차용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클래식의 어법을 강조한 것이었다. 이런 그의 활동을 보면 그는 분명 재즈 연주자였지만 그는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경계 없이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그의 음악에 담긴 우아함도 결국은 이러한 자신의 음악적 기본과 만족에 충실한 활동에 기인한 것이리라.

추천 앨범 5

Jazz At Oberlin (Fantasy 1853)

Jazz Impressions of Eurasia (Columbia 1958)

Time Out (Columbia 1959)

Time Further Out (Columbia 1961)

At Carnegie Hall (Columbia 1963)

댓글

KOREAN JAZZ

Meeting Point – 임인건 (Kang & Music 2011)

그동안 임인건의 어쿠스틱 사운드를 좋아한 감상자에게 이번 앨범은 뜻밖의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왜냐하면 이전 앨범과 달리 일렉트로니카/라운지 음악 스타일의 전자적 사운드가 사운드의 중심에 자리잡고...

Unbalanced Beauty – C2K Trio (풍류 2006)

갈수록 개성 넘치는 한국산 재즈 앨범이 선을 보이고 있다. 그 가운데 C2K 트리오의 첫 앨범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독특함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먼저 누구 하나가...

CHOI'S CHOICE

Charlie – Gonzalo Rubalcaba (5Passion 2015)

쿠바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 곤잘로 루발카바가 현재 세계적인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기 까지에는 그가 뛰어난 실력자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베이스 연주자 찰리 헤이든의 도움 때문이었음을 무시할...

최신글

Solo Piano – Lewis Porter (Next To Silence 2018)

루이스 포터는 피아노 연주자이지만 대학에서 재즈사를 강의하고 재즈사 전반은 물론 레스터 영, 존 콜트레인에 관한 뛰어난 책을...

When Will The Blues Leaves – Paul Bley, Gary Peacock, Paul Motian (ECM 2019)

맨프레드 아이허가 다시 ECM의 창고를 뒤져 묵혔던 명연을 꺼냈다. 바로 피아노 연주자 볼 블레이, 베이스 연주자 게리 피콕, 드럼 연주자 폴...

Infinity – Tom Harrell (High Note 2019)

트럼펫과 플뤼겔혼을 연주하는 톰 하렐은 앨범마다 뛰어난 연주력은 물론 정교한 작곡, 편곡 능력을 드러내며 머리와 가슴 모두에서...

J.A.M – 남경윤 (Jnam Music 2019)

반갑다. 피아노 연주자 남경윤으로부터 새로운 앨범을 준비했다는 뜻 밖의 전화를 받았을 때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Anthem – Madeleine Peyroux (Blue Note 2019)

재즈 뮤지션은 늘 새로움을 지향한다. 그것은 타인과 나의 비교가 아닌 나의 과거와 현재의 비교를 통해 이루어지곤 한다. 이것은 나만의 스타일이라 할 수 있는 익숙함과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하는 신선함이 공존할 수 있게 해준다. 게다가 과거와 현재의 시간차가 클수록 그 비교는 깊어지고 익숙함과 신선함의 공존은 더욱 매력적이 되곤 한다.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다. 이번 앨범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아련하고 포근한 목소리로 재즈와 포크 그리고 프랑스 샹송을 가로지르며 노래했다. 그리고 이러한 익숙함 위에 새로운 요소를 가미했다. 그 새로움의 핵심은 자신의 내면에서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는 것에 있다. 그녀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었던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의 혼란을 보고 이번 앨범을 기획했다. 알려졌다시피 당시 미국 대통령 선거는 다른 어느 때보다 후보간의 대립이 심했으며 스캔들에 가까운 다양한 뉴스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미국인들은 물론 이를 지켜보는 세계인들을 혼란에 빠트렸다. 그녀 또한 일련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자신의 관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렇다고 정치인처럼 남에게 설교하듯 이야기할 수는 없는 법. 대신 그녀를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음악을 사용하기로 했고 그것이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이 된다. 한편 사회적인 주제였기 때문일까? 보다 설득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