덱스터 고든 (Dexter Gordon :1923.2.27 ~ 1990.4.25)

dg

추방자적 삶을 음악으로 승화시켰던 연주자

프랑스의 영화 감독 베르트랑 타베르니에가 1986년에 제작한 영화 <Round Midnight>은 테일 터너라는 가상의 색소폰 연주자의 불우한 말년을 이야기한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영화 속 주인공은 색소폰 연주자 레스터 영과 피아노 연주자 버드 파웰의 슬픈 삶을 적절히 섞어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어디까지가 레스터 영의 삶이고 어디까지가 버드 파웰의 삶인지 요리조리 따지곤 한다. 그러면서 레스터 영과 버드 파웰의 삶과 음악에 다시 한번 관심을 갖고 그 매력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더 주목할 것이 있다면 주인공 테일 터너역을 색소폰 연주자 덱스터 고든이 맡았다는 것이다. 사실 영화가 비록 재즈 색소폰 연주자의 삶을 다루고 있고 그만큼 음악적인 기본이 배우에게 요구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덱스터 고든이 영화의 주연을 맡았다는 것은 의외였다. 왜냐하면 이전까지 그는 영화와 전혀 인연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베르트랑 타베르니에는 과감하게 그를 주연으로 선택했다. 어떻게 이런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당시 색소폰 연주자가 테일 터너를 연기하기에 적합한 60대였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 전에 덱스터 고든이 색소폰 연주에 있어 레스터 영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또한 버드 파웰처럼 미국을 떠나 파리에서 살았던 적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감독은 분명 덱스터 고든이 버드 파웰의 실향적 마음을 잘 이해하고 이를 연기로 표현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을 것이다. 실제 덱스터 고든은 감독의 예상대로 알코올과 마약에 찌들어 서서히 시들어가는 테일 터너의 말년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또한 레스터 영이나 버드 파웰의 그늘을 벗어내면 생각 외로 테일 터너의 모습이 덱스터 고든과 많이 닮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10대 후반부터 전문 연주자의 삶을 시작한 덱스터 고든은 1940년대부터 호방한 톤과 여유로운 연주로 인기를 얻었다. 그 가운데 와델 그레이와 L.A에서 펼쳤던 치열한 색소폰 배틀은 그의 젊은 날을 대표하는 재즈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많은 연주자들이 그를 따랐는데 존 콜트레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노래하듯 단아한 멜로디를 이어나가는 존 콜트레인의 발라드 연주는 덱스터 고든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정상의 연주자로 열심히 연주 활동에만 집중했다면 덱스터 고든은 지금보다 더 중요한 재즈사의 인물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많은 재능 있는 연주자들이 그러했듯이 그 또한 마약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래서 1952년부터 1960년까지 마약에 빠져 감옥에 수감되기도 하는 등 정상적인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는 이 8년의 공백이 그를 재즈의 중심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1960년 블루 노트 레이블과 계약하면서 그는 <Doing Alright>(1961), <Dexter Calling…>(1961), <Go>(1962)등의 앨범을 잇달아 선보이면서 아직 실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그 사이 그에 필적할만한 많은 연주자들이 등장했고 재즈 또한 비밥을 세련되게 변형하거나 발전시킨 쿨 재즈와 하드 밥을 거쳐 프리 재즈의 시대를 맞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복귀를 많은 사람들이 반겼고 음악적 결과 또한 좋았음에도 그는 어딘가 시대에 뒤쳐진 듯한 상실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 결과 역설적이게도 그의 음악 인생에 있어 가장 뛰어난 앨범이었다 평가 받는 앨범 <Go>를 녹음하자마자 미국을 떠나 파리로 가게 된 것은 아닌가 싶다.

파리로 떠나자마자 그는 먼저 파리에 체류 중이었던 버드 파웰(!)과 케니 클락 등과 함께 <Our Man In Paris>(1963)를 녹음했다. 이 앨범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많은 유럽의 재즈 애호가들이 큰 호응을 보냈다. 이에 힘입어 그는 파리와 코펜하겐을 중심으로 1976년까지 유럽에서 약 15년을 머물렀다. 그런데 자발적으로 유럽에 머문 것이었지만 종종 그는 자신을 추방자로 설명하곤 했다. 이렇게 그가 추방된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 데에는 미국이 아닌 유럽에서 활동한다는 공간적인 이유 외에 재즈의 (발전적) 흐름과 무관한 연주를 펼친다는 시간적인 이유도 크게 작용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이미 언급했듯이 기나긴 공백 끝에 다시 복귀 했던 1960년대 초반부터 그를 사로잡았던 감정이었다. 그러나 유럽에서 활동하면서 그는 추방자의 느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활용했던 것 같다. 기꺼이 탈시간적, 탈공간적 인물이 되어갔다고나 할까? 실제 15년간 그가 유럽에서 녹음한 앨범들은 그가 프리 재즈나 퓨전 재즈가 중심이었던 60년대와 70년대 재즈의 풍경과 상관 없이 오로지 비밥을 고수했음을 말해 준다. 그렇다고 그가 젊은 시절의 자신을 추억하기만 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의 연주는 젊은 날의 회상이 아니라 젊음의 지속에 더 가깝다. 이를 위해서는 와델 그레이와 색소폰 배틀을 기록한 1947년도 앨범 <The Hunt>와 1975년에 녹음된 <Swiss Nights vol.1>처럼 70년대에 스티플체이스 레이블에서 발매된 아무 앨범과 비교하면 쉽게 이해된다. 아마도 거의 모든 것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일까? 앨범 <Go>로 덱스터 고든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그의 나이를 제대로 짐작하지 못했다. 막연하게 50대 이상의 노장 연주자로 그를 상상했을 뿐이다. 70년대에 녹음된 앨범을 들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50대 이상의 노장 연주자로 그를 상상했다. 그러면서 복잡한 속세를 벗어난 선비처럼 재즈의 중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사는 연주자를 생각했다.

하지만 1976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면서 그는 다시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았다. 모처럼의 귀환이었기에 재즈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반겼지만 그는 유럽에서만큼 지속적으로 활동하지 못했다. 건강 또한 갈수록 나빠져갔다. 그렇게 서서히 과거의 거장이 되어가던 중에 영화 <Round Midnight>의 주연을 맡게 된 것이다. 따라서 소외감과 말년의 쇠약으로 시들어가는 주인공 테일 터너의 모습은 덱스터 고든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다. 테일 터너를 연기하면서 그는 어쩌면 자신의 말년을 상상했을 지도 모르겠다.

영화 <Round Midnight>에서의 열연으로 그는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1990년에는 영화 <The Awakening>에 출연하기도 했다. 영화에 출연 후 1990년 4월 25일 신부전증으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대표 앨범

Bopland: The Legendary Elks Club Concert L.A. 1947 (Savoy 2004)

dg1947년 덱스터 고든은 L.A에 위치한 엘크스 클럽에서 재즈 역사에 남을 명연을 펼쳤다. 그 가운데에는 와델 그레이와의 색소폰 배틀도 있었다. 그런데 젊음의 열기로 가득 찼던 이 무렵의 연주는 여러 편집 앨범으로 뿔뿔이 흩어져 발매되었다. 그 가운데에는 CD로 구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2004년에 발매된 이 앨범은 이 무렵의 녹음을 석 장의 CD에 말끔히 정리하고 있다. 덱스터 고든은 물론 비밥 시대의 열정을 확인하고자 한다면 이 앨범을 꼭 들어보라.

GO (Blue Note 1962)

덱스터 고든은 50년대의 공백을 깨고 블루 노트와 계약한 후 3장의 앨범을 연달아 녹음한다. 그 가운데 이 앨범은 그의 음악 인생을 이야기할 때 가장 빛나는 앨범으로 평가 받는다. 특유의 속 깊은 아저씨 같은 풍성하고 호방한 톤과 시간에 쫓기지 않는 여유로운 분위기, 그리고 탁월한 멜로디 감각이 어우러진 연주는 30대의 끝자락에 있는 연주자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숙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것은 20대 시절에 이미 완성된 것이기도 했다.

Our Man In Paris (Blue Note 1963)

dg<Go!>가 덱스터 고든 스타일의 완성된 모습을 담고 있다면 이 앨범은 이후 추방자로 살아가게 될 색소폰 연주자의 운명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프랑스 파리에서 먼저 자리잡은 미국 출신의 연주자 버드 파웰(피아노), 케니 클락(드럼) 그리고 프랑스 연주자 피에르 미슐로(베이스)와 쿼텟을 이루어 녹음한 이 앨범에서 그는 바뀐 환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특유의 중후함, 노련미를 드러낸다. 한편 당시 건강이 위태로웠던 버드 파웰이 최상의 연주를 들려준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댓글

KOREAN JAZZ

New Beginning – 서영도 일렉트릭 앙상블 (YDS Music 2013)

만약 서영도를 이야기해야 한다면 나는 그를 자신만의 확고한 선을 지닌 스타일리스트라 하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스타일리스트란 늘 같은 음악을 하는 연주자를 가리키지 않는다. 거시적으로...

Mixed Feeling – 신주현 재즈 트리오 (Mirrorball 2015)

기타 연주자 신주현의 첫 앨범이다. 앨범 소개 글에 따르면 기타 연주자는 캐나다에서 11년간 수학했고 그 긴 시간 동안 느꼈던 감정을 곡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그런데...

CHOI'S CHOICE

The Girl In The Other Room – Diana Krall (Verve 2004)

  사실 필자는 8년 전 그녀의 <All For You> (Verve 1996) 앨범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을 때 시큰둥한 시선을 보냈었다. 그것은 당시 필자가 아방가르드라는 무한의...

최신글

Infinity – Tom Harrell (High Note 2019)

트럼펫과 플뤼겔혼을 연주하는 톰 하렐은 앨범마다 뛰어난 연주력은 물론 정교한 작곡, 편곡 능력을 드러내며 머리와 가슴 모두에서...

J.A.M – 남경윤 (Jnam Music 2019)

반갑다. 피아노 연주자 남경윤으로부터 새로운 앨범을 준비했다는 뜻 밖의 전화를 받았을 때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Anthem – Madeleine Peyroux (Blue Note 2019)

재즈 뮤지션은 늘 새로움을 지향한다. 그것은 타인과 나의 비교가 아닌 나의 과거와 현재의 비교를 통해 이루어지곤 한다. 이것은 나만의 스타일이라 할 수 있는 익숙함과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하는 신선함이 공존할 수 있게 해준다. 게다가 과거와 현재의 시간차가 클수록 그 비교는 깊어지고 익숙함과 신선함의 공존은 더욱 매력적이 되곤 한다.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다. 이번 앨범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아련하고 포근한 목소리로 재즈와 포크 그리고 프랑스 샹송을 가로지르며 노래했다. 그리고 이러한 익숙함 위에 새로운 요소를 가미했다. 그 새로움의 핵심은 자신의 내면에서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는 것에 있다. 그녀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었던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의 혼란을 보고 이번 앨범을 기획했다. 알려졌다시피 당시 미국 대통령 선거는 다른 어느 때보다 후보간의 대립이 심했으며 스캔들에 가까운 다양한 뉴스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미국인들은 물론 이를 지켜보는 세계인들을 혼란에 빠트렸다. 그녀 또한 일련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자신의 관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렇다고 정치인처럼 남에게 설교하듯 이야기할 수는 없는 법. 대신 그녀를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음악을 사용하기로 했고 그것이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이 된다. 한편 사회적인 주제였기 때문일까? 보다 설득력...

Combo 66 – John Scofield (Verve 2018)

늘 그 자리에 영원히 있을 것만 같은 연주자가 있다. 시간의 흐름을 벗어나 있다고 할까? 음악이 늘 같아서가...

Begin Again – Norah Jones (Blue Note 2019)

노라 존스는 기본적으로 재즈 뮤지션이다. 그러나 그녀의 음악적 관심은 재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가 때로는 재즈를 듣고 때로는 클래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