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ter Romance – Beegie Adair (Spring Hill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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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2월이면 우리는 한 해가 저문다는 생각에 허전함, 상실감에 빠지곤 한다. 덧없이 한 해를 또 보냈구나 하는 생각. 그렇다고 12월은 우울하거나 슬픈 달이지는 않다. 크리스마스 때문이다.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이 절정에 달했을 무렵에 자리잡은 크리스마스는 얼어붙은 우리의 마음을 녹이고 나아가 새로운 한 해를 꿈꾸게 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일까? 크리스마스 즈음이면 우리는 이상적인 크리스마스를 꿈꾸게 된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크리스마스는 어떤 것일까? 생각해보자. 일단 세상을 따스하게 감싸는 솜이불 같은 하얀 눈이 내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따스함을 더욱 잘 느끼게 해줄 차가운 바람이 불어야 할 것이다. 그런 풍경 속에서 아이와 아빠는 눈사람을 만든다. 그리고 돌아온 집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장식으로 꾸여진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고 엄마가, 아내가 만든 맛있는 음식과 케이크가 있다. 이를 앞에 두고 가족은 사랑한다 말하며 서로 준비한 소박한 선물을 주고 받는다. 여기에 따스하고 낭만적인 크리스마스 캐롤이 잔잔하게 흐른다.

이런 나의 이야기에 아마도 당신은 그런 크리스마스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라 말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 사실 (나만 그랬던 것인지는 몰라도) 우리가 겪은 크리스마스의 대부분은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눈이 내리지 않는 따스한 크리스마스인 경우도 많았고 보통의 휴일처럼 특별한 사건 없이 지낸 크리스마스도 많았다. 그렇기에 겨울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낭만적인 겨울 사랑을 담은 영화를 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크리스마스라 하지만 그다지 특별하지 않을 것 같을 때, 오히려 더욱 더 외롭고 허전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것 같을 때 잘 만들어진 캐롤 앨범을 들어보자. 매년 겨울이면 다양한 종류의 크리스마스 캐롤 앨범이 발매된다. 그 가운데 한 장을 고르는 것이다. 그 중에 나는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비기 어데어의 <Winter Romance>를 추천하고 싶다.

1937년생, 그러니까 2012년 현재 75세인 이 노장 피아노 연주자는 모든 것을 낭만적으로 만드는 힘을 가졌다. 나아가 감상자를 그녀가 만들어 낸 낭만의 세계에 사로잡는 힘도 지녔다. 그래서 그녀의 연주를 듣다 보면 일체의 근심과 걱정이 사라진 오로지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한 낭만적인 세상을 그리게 된다. 여기에는 노장 피아노 연주자의 삶이 음악에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컨트리의 고장 내쉬빌에서 재즈 연주자로 소리 없이 활동하면서 아주 천천히 자신의 음악을 구축해 나갔다. 그래서 55세의 나이가 되어서야 자신의 이름으로 첫 앨범을 녹음할 수 있었다. 수 많은 세션 활동 속에서 자신의 꿈을 잃지 않은 결과였다. 언젠간 기회가 오리라는 긍정의 힘! 그래서 그녀는 첫 앨범부터 완성된 연주력을 바탕으로 모든 것은 결국 낭만으로 귀결된다는 전언(傳言)을 음악에 담았다. 그래서일까? 늦은 나이에 발표한 첫 앨범을 시작으로 그녀는 수십여장의 앨범을 녹음할 수 있었고 그 모두는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가 듣고 있는 크리스마스 캐롤 앨범 <Winter Romance>도 그렇다. 이 앨범에서 비기 어데어는 영화에서나 만날 수 있을 법한 낭만적인 크리스마스 풍경을 제시한다. 이 것은 앨범의 첫 곡 ‘I’ll Be Home For Christmas’부터 느낄 수 있다. 우리네 추석처럼 온 가족이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를 그리는 이 곡은 차가운 겨울 바람처럼 흐르는 스트링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를 배경으로 비기 어데어의 따스하고 평화로운 연주가 흐른다. 그래서 우리는 실제 창 밖 풍경과 상관 없이 차갑지만 마음은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느끼게 된다. 이러한 평화로운 풍경은 앨범의 타이틀 곡 ‘Winter Romance’를 비롯하여 ‘Merry Christmas Darlin’,‘Snowfall’,‘It’s the Most Wonderful Time Of The Year’등의 곡을 통해 이어진다.

한편‘Winter Wonderland’, ‘Sleigh Ride’, ‘Santa Baby’같은 곡은 재즈 연주자로서의 비기 어데어의 모습을 보다 잘 느끼게 한다. 사실 그녀는 과하게 기교를 과시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저 물 흐르듯이 자연스레 음들을 이어가는데 더 많은 공을 들이는 편이다. 주어진 테마의 결을 그대로 따라 편안하게 나아가는 연주라고 할까? 그래도 이들 미디엄 템포의 곡에서는 흐트러지지 않는 스윙감을 바탕으로 비록 속도에서는 차이를 보이지만 자신이 오스카 피터슨의 경쾌함을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화목한 웃음이 오가는 훈훈한 크리스마스를 생각하게 한다.

가족이 함께하는 크리스마스를 최고의 낭만으로 부각시키면서 노장 피아노 연주자는 크리스마스와 년 말의 경건함을 담아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When A Child Is Born’과 ‘Auld Lang Syne’이 그렇다. 하지만 경건함을 위해 분위기를 무겁게 가져가지는 않았다. 현재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내일을 꿈꾸듯이 담담하면서도 희망적인 분위기로 연주한다.

영화처럼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크리스마스 풍경을 그리는 데에는 비기 어데어의 피아노 외에 함께 한 연주자들의 힘이 컸다. 그녀와 오랜 시간 함께 한 베이스 연주자 로저 스펜서, 드럼 연주자 크리스 브라운은 물론 이 앨범의 제작을 담당하기도 한 기타 연주자 잭 제즈로, 키보드 연주자 제프 스타인버그 같은 연주자들이 그녀를 후원해 주었다. 하지만 더 제프 스타인버그 오케스트라-지휘는 제프 스타인버그가 아니라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데이비드 데이비슨이 했다-야 말로 이 앨범의 매력을 높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오케스트라의 겨울바람 같은 연주가 있었기에 비기 어데어의 피아노가 지닌 따스함이 더욱 돋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앨범을 들으며 따스한 실내에서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중에 창 밖으로 흰 눈이 바람에 날리는 크리스마스를 그리게 된다면 그것은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아름다운 대비(對比)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지금 이 글을 11월 중순에 쓰고 있다. 몇 해 전부터 가을이면 크리스마스 캐롤 앨범을 듣고 글을 써왔음에도 아직도 어딘가 어색하다. 하지만 늦은 밤 이 앨범을 듣자마자 괜스레 창을 열고 어두운 하늘을 처다 보았다. 혹시나 눈이 내리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막연하지만 창 밖 어딘가 영화처럼 낭만적인 사건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그렇게 11월에 나는 멋진 크리스마스를 경험한다.

혹시 12월이, 크리스마스가 그저 춥기만 하고 기분 좋은 일이 아무 것도 없는가? 무덤덤하게 단조롭게 한 해가 저문다고 생각되는가? 그렇다면 이 앨범을 잘 선택했다. 눈을 감고 비기 어데어의 캐롤 연주를 들어보자. 외롭지 않고 따스하고 낭만적인 크리스마스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고 그 한 가운데 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 혼자가 아니라고? 그렇다면 더 좋다. 이 앨범이 당신의 크리스마스를 영화처럼 낭만적으로 만들어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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