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Love Easy – Sophie Milman (Koch 2009)

사랑의 미묘한 단면들을 노래하는 성숙한 소피 밀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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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재즈 보컬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안으로 감추며 자신이 위치한 분위기에 스며드는 보컬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카페의 한쪽 구석에서 좋은 분위기 연출을 위해 노래하는 경우죠. 사람들이 술 한 잔과 함께 편안하게 담소를 나눌 때 고혹적인 여성 보컬의 노래가 있는 듯 없는 듯 실내에 흐르는 상황을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다음으로 자신의 열정을 드러내며 강렬한 카리스마로 감상자를 사로잡는 보컬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무대에서 땀을 흘리며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보컬과 그(녀)의 노래에 관객이 즐거이 반응하는 장면을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이 두 가지 보컬 중 전자는 힘을 빼고 나긋나긋 노래하는 보컬이 연상된다면 후자는 목에 조금은 힘을 주며 흔히 소울이라고 하는 깊은 내면의 정서를 끄집어 내는 보컬이 연상됩니다.

우리가 듣고 있는 이 앨범의 주인공 소피 밀먼은 이 두 가지 이미지 가운데 두 번째, 그러니까 열정으로 감상자의 시선을 빼앗는 보컬에 해당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이미 지난 두 장의 앨범, 그러니까 첫 앨범 <Sophie Milman>(2004)과 두 번째 앨범 <Make Someone Happy>(2007)을 통해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 두 장의 앨범에서 그녀는 재즈 보컬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엘라 핏제랄드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기교와 힘으로 스탠더드 곡들을 멋지게 노래했습니다. 특히 다소 허스키하면서 묵직한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는 그 자체로 감상자를 사로잡는 힘을 발휘했습니다. 그렇기에 첫 앨범부터 그녀는 모국 캐나다-사실은 러시아에서 태어나 이스라엘을 거쳐 16세가 되어서야 정착한 나라이긴 하지만-에서 다이아나 크롤을 이어 국제적 명성을 얻을 만한 유망주라는 평가를 받으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전 두 장의 앨범은 뛰어난 여성 보컬의 등장을 알리기는 했지만 역시 신인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어쩔 수 없는 한계 또한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과거 선배들의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뭐랄까? 자신에게 영향을 준 선배들, 예를 들면 이미 언급한 엘라 핏제랄드 같은 디바의 영향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 그들이 이룩한 보컬의 전형을 너무 존중하려 한다고 할까요? 지난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스타일을 기교적으로만 따르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아마도 신인이지만 상당히 성숙하게 노래한다는 평을 받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물론 그 결과 원하던 대로 정말 처음부터 탄탄한 기본기로 노래한다는 평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 그만큼 힘, 기교로만 감상자를 억지로 붙잡으려 한다는 느낌 또한 지울 수 없었습니다. 즉, 실질적으로 성숙한 보컬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감상자와 연애를 하는 듯한 밀고 당기는 기분 좋은 긴장이 다소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세 번째 앨범은 좀 다른 면을 보입니다. 완전한 질적 도약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분명 이전과는 다른 면들이 많이 발견됩니다. 그래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피 밀먼의 음악적 성숙이 시작되는 앨범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평소보다 힘을 많이 뺀 창법에서부터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두텁고 풍성한 성량과 힘은 (변하지 않는 그녀의 검정색 아이라인처럼) 이번 앨범에서도 그녀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하지만 이것을 경제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새롭습니다. 예를 들어 앨범의 첫 곡 ‘Beautiful Love’의 경우 이전 앨범이었다면 분명 그녀는 가사의 첫 소절‘Beautiful Love~’에 보다 힘을 주었을 것이고 끝을 살짝 끊듯이 노래해 그 에너지를 더 강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앨범에서 그녀는 스모키한 비브라토(목소리의 떨림)으로 힘을 분산시키면서 전보다 부드럽게 노래합니다. 이것은 ‘Day In Day Out’같은 곡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렇기에 템포나 편곡 등에서 이전 앨범들과 그다지 큰 차이가 없는 듯한 곡에서도 보컬과 연주가 어우러진 사운드가 주는 느낌은 한 결 부드럽습니다.

이어서 리듬을 타는 것에 있어서도 주도하여 이끌려 하기 보다 관조하듯 반주가 제공하는 리듬을 타는, 말 그대로 스윙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것은 앨범 타이틀 곡 ‘Take Love Easy’나 ‘Love For Sale’같은 곡을 들어보면 분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여유를 갖고 리듬을 즐기며 노래하다 보니 그녀 특유의 카리스마는 관능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저는 엘라 핏제랄드의 화려함에 줄리 런던의 부드러움이 만난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한편 스타일에서도 한결 자유로워진 것도 그녀의 음악적 성숙을 생각하게 합니다. 일단 이번 앨범에서 그녀는 스탠더드 곡들 중심으로 노래하는 중에 재즈 밖에 위치한 세 곡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노래했습니다. 최근 재즈인들의 조명을 종종 받곤 하는 포크 가수 조니 미첼의 ‘Be Cool’, 80년대 노동자들의 우상이었던 록가수 부르스 스프링스틴의 ‘I’m On Fire’, 그리고 폴 사이먼의‘50 Ways To Leave Your Lover’가 그 곡들인데요. 이 곡들을 그녀는 원곡을 존중하면서도 결코 그 스타일에 휘둘리지 않고 재즈 속으로 끌어들여 능숙하게 노래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재즈의 스탠더드 곡들을 익숙한 스타일로 노래하는 것,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전통의 부담을 덜고 현재의 시점에서 자신만의 노래를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여전히 20대 중반의 삶을 살고 있는 소피 밀먼이 어떻게 두 번째 앨범 이후 2년 만에 이토록 성숙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일까요? 물론 여기에는 냉정하기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부족한 점을 메우려는 노력, 이전 두 앨범의 성공이 가져다 준 경제적 정신적 여유가 크게 작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앨범이 그녀 스스로 후기를 통해 드러내듯이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것에서 저는 그 성숙함의 이유를 찾습니다. 그러니까 행복감, 환희, 즐거움, 슬픔, 아쉬움, 배신감 등 사랑 안에 담긴 여러 감정의 표현을 우선적으로 생각했기에 이런 성숙한 결과가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교나 사운드 등의 음악적 측면은 어쩌면 이를 위해 수반되는 부수적 변화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나 저는 이 앨범을 들으며 그녀가 직접 밝히지는 않았지만 혹시 그 사이 사랑을 했고 또 아픔을 겪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실제 앨범을 듣다 보면 사랑의 여러 가지 측면 가운데 슬픔, 아쉬움 등의 정서를 담은 노래들이 유난히 성숙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 가운데 사랑에 실패한 여인의 허망한 슬픔을 표현한‘I Can’t Make You Love Me’는 그녀의 성숙함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낸 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사람들이 바삐 집으로 향하는 저녁 9시경의 거리에서 이 곡을 들으면서 실연을 당한 듯한 느낌에 우울에 빠지기까지 했습니다.

앨범 내지에 감사의 인사와 함께 수록된 짧은 후기에서 소피 밀먼은 이전 앨범이 음악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는가에 대한 성찰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에 대한 암시를 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 방향이란 어떻게 하면 노래를 잘할까를 생각하는 것보다 이번 앨범에서 사랑을 노래했듯이 사람을 생각하고 삶을 생각하며 노래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노래를 선보이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목소리 자체에 사람들을 사로잡는 카리스마가 있으니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바로 그 성숙한 출발점에 그녀가 섰음을 이 앨범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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