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One & Only Thrill – Melody Gardot (Verve 2009)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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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도 팝도 아닌 다소 애매모호한 주변의 음악으로 대접 받으면서도 재즈가 지금까지 현재의 음악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생산 능력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것은 앨범 제작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물론 클래식이나 일반 팝 분야보다도 더 많은 양의 재즈 앨범들이 매일같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설에만 의존하지 않고 꾸준히 새로운 스타, 감상자의 마음을 위로하고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동경하게 하는 스타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컬 분야만을 두고 이야기할 때 현재 단연코 빛나는 스타는 다이아나 크롤입니다. 실제 그녀는 90년대 초반 등장하여 지금까지 변함 없는 인기를 얻고 있지요. 물론 음악도 훌륭합니다. 하지만 영원히 청초할 것 같았던 그녀도 어느덧 마흔을 넘었습니다. 이제는 재즈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존재가 아니라 현재를 지속시키고 미래로 전할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아도 올 해 발매된 앨범 <Quiet Nights>을 보면 그녀가 정상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일, 음악을 파악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렇다면 다이아나 크롤 이후의 재즈 보컬을 대표할만한 인물로 누구를 생각할 수 있을까요? 아마 많은 보컬들의 이름이 여러분의 머리 속을 스쳐지나 갈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하지만 멜로디 가르도의 이번 두 번째 앨범 <My One & Only Thrill>을 듣는 순간 그 고민이 일시에 해결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름 오랜 시간 재즈를 들어 온 제 경험과 그에 따른 직관에 비추어 본다면 이 20대 초반의 필라델피아 출신의 여성이야 말로 다이아나 크롤의 뒤를 이을 신인, 그것도 평범하지 않은 대형 신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블루스의 느낌이 강하게 드러나는 그녀의 스모키한 보컬이 지닌 풍부한 정서 때문입니다. 그녀의 노래는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을 담고 있으면서도 상당히 대중적인 면을 지녔습니다. 감상자로 하여금 듣는 순간 바로 그녀의 정서에 공감하게 만든다고 할까요? 또한 그녀는 정서적으로는 개인적이지만 형식적으로는 재즈 보컬의 오래된 전통, 그것도 흑인과 백인 보컬의 전통 모두를 존중하고 있습니다. 결국 정서적 표현력과 그 정서를 담는 형식 모두가 개인적인 동시에 대중적이라는 것인데요. 그러니 그녀의 노래가 특별하면서도 접근과 이해가 쉬운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난 해 발매된 그녀의 첫 앨범 <Worrisome Heart>를 들었을 때 저는 형식과 장르를 떠난 깊이 있는 정서, 특히 우울과 괴로움을 위로하는 성숙한 정서에는 공감했지만 그녀가 대중적으로 보다 인정 받는 방향으로 성장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강한 자기 개성이 돋보이는 싱어송라이터로 남으리라 생각했을 뿐입니다. 여기에는 그녀가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에서 노래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의 영향도 컸습니다. 그녀는 교통사고를 당해 골반, 척추 등의 심각한 부상과 함께 신경계통마저 손상되어 기억 등 인식 능력까지 저하되는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손상된 인식 능력을 개선하고자 음악 치료 방법을 사용하면서 곡을 쓰게 되었고 이것이 발전하여 첫 앨범 <Worrisome Heart>에 이르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러니 첫 앨범이 무엇보다 멜로디 가르도 자신을 위한 개인적인 느낌이 강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습니다.

이번 앨범을 통해 제가 감히 그녀를 재즈의 미래를 이끌 주인공으로 보게 된 것에 대한 설명은 먼저 멜로디에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앨범에서 그녀는 마지막 곡‘Over The Rainbow’를 제외한 전 곡을 작곡했는데요. (두 곡에서는 노라 존스와의 작업으로도 유명한 제스 해리스가 함께 했습니다.) 앨범의 첫 곡 ‘Baby I’m A Fool’부터 ‘Deep Within The Corners Of My Mind’까지 모두 그녀의 이름만큼이나 멜로디가 아름답습니다. 혹시 교통 사고가 그녀의 작곡 능력에 어떤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단순 담백한 것이 가슴에 직접 와 닿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런 마음을 건드리는 멜로디는 그녀의 첫 앨범에서도 이미 확인할 수 있었던 부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앨범의 대중적 매력을 래리 클라인의 제작에서 찾습니다. 래리 클라인은 허비 행콕에게 그래미 상을 안겨준 앨범 <River: The Joni Letter>(2007)의 제작자로 유명하죠. 또한 마들렌느 페루를 빌리 할리데이의 아우라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보컬로 키워낸 것으로도 그 능력을 인정 받고 있습니다. 이런 그가 이번 앨범의 제작을 담당하면서 멜로디 가르도를 정서적 흡입력이 있는 보컬로 성장시켰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녀의 창법, 특히 이번 앨범에서 정서적 포인트로 작용하는 비브라토의 활용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네요. 물론 여기에는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명 제작자의 방향 설정을 믿고 잘 따른 멜로디 가르도의 결단이 선행되었겠지요.

한편 앨범 전체를 감싸는 스트링 오케스트라 섹션을 편곡하고 직접 지휘를 담당한 빈스 멘도사의 참여도 앨범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일조했습니다. 여러 앨범들을 통해 실력이 널리 알려진 그의 오케스트레이션은 단순미를 추구하는 멜로디 가르도의 곡을 해치지 않으면서 사운드에 볼륨감을 불어넣는데 성공했습니다. 게다가 감상자가 자연스럽게 멜로디 가르도의 정서에 동화되도록 이끌어주기도 합니다.

이런 두 명인의 참여 속에 만들어진 이번 앨범은 크게 담담한 정서의 곡들과 슬픈 정서의 곡들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담담한 정서의 곡들은 마치 재니스 이안을 연상시키는 차분한 분위기의 첫 곡 ‘Baby I’m A Fool’을 비롯해 두 가지 버전으로 실린 미소를 짓게 하는‘If The Stars Were Mine’, 블루스가 강하게 배어있는‘Who Will Comfort Me’등 앨범의 전반부를 장식하는 곡들입니다. 이 곡들은 슬프고 힘든 운명을 받아들인 뒤의 담담함이나 애써 슬픔을 극복 하려는 의지를 생각하게 해주는데요. 최근 편하고 가벼운 곡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추세에 비추어 볼 때 이들 곡 가운데 인기 곡이 나오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특히‘If The Stars Were Mine’가 가장 큰 사랑을 받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그러나 사실 이 앨범의 진정한 매력은 ‘Our Love Is Easy, ‘Rain’ 등의 슬픔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곡들에 있습니다. 주로 앨범의 후반부를 장식하고 있는 이 곡들은 최근 몇 년간 우리에게 다가온 발라드 곡들 가운데 가장 슬프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정도로 비감(悲感)으로 가득합니다. 특히 ‘The Rain’, ‘My One And Only Thrill’, ‘Deep Within The Corners Of My Mind’로 이어지는 후반 삼부작은 아무리 감정이 메마른 감상자라도 극도의 우울로 빠트릴 수 있는 마력을 지녔습니다. 정말 빌리 할리데이나 애비 링컨의 슬픈 노래에 필적할만합니다. 실제 저는 감정선을 건드리는 스트링 오케스트라와 눈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느낌의 보컬의 조화에서 그 유명한 빌리 할리데이의 앨범 <Lady In Satin>(1958)을 연상했습니다. 그런데 앨범 <Lady In Satin>같은 경우 빌리 할리데이의 슬픔이 너무나도 깊고 무거워 마음의 준비가 없다면 듣기에 부담스러운 면이 있는데 멜로디 가르도의 이번 앨범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것은 앨범의 마지막 곡으로 실린 ‘Over The Rainbow’때문입니다. 담백한 기타 반주와 브라질리안 리듬으로 이루어진 이 곡은 앞의 가슴 아픈 세 곡으로 인해 깊게 가라앉았던 마음을 희망의 세계로 이끌어줍니다. 정말 ‘Deep Within The Corners Of My Mind’에 이어 ‘Over The Rainbow’를 듣는다면 먹먹한 가슴에 한줄기 화사한 무지개빛 햇살이 비추는 듯한 느낌을 받으실 것입니다. 참으로 멋진 마무리 아닙니까? 만약 이런 해결이 아니었다면 이 앨범의 대중적 매력은 반감되었을 것입니다.

한편 지금 여러분이 감상하고 계신 앨범은 디럭스 에디션으로 보너스로 라이브로 노래한 다섯 곡이 담긴 CD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2009년 9월 10일, 멜로디 가르도의 이번 앨범에 열광했던 프랑스의 라디오 프랑스 스튜디오에서 있었던 공연인데요. 프랑스의 인기 음악 라디오 채널인 FIP 라디오를 위해 가졌던 공연으로 실제 라디오를 통해 한 시간 반 정도의 공연 전체가 방송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틀렉 앨범이 발매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습니다. 이번 보너스 CD는 그 공연 내용을 다 담지는 못하고 핵심적인 다섯 곡만을 들려줍니다. 그러나 이 다섯 곡만으로 그녀가 공연에서 얼마나 관객을 사로잡는지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앨범과 달리 이 공연은 색소폰, 트럼펫, 비브라폰 등이 등장하는 쿼텟 혹은 퀸텟의 단출한 편성으로 진행되어 그녀의 보컬이 지닌 매력을 더욱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특히 이번 앨범의 가장 큰 매력이라 말씀 드렸던 깊은 슬픔의 정서를 만끽 하실 수 있습니다. 실제 앨범에서는 포근하게 노래되었던‘Baby I’m A Fool’마저 슬프디 슬픈 실연의 노래로 바뀌어져 있습니다. 빌 위더스의 노래로 알려진 ‘Ain’t No Sunshine’도 마찬가지 입니다. 특유의 흐느끼는 듯한 비브라토로 연인이 떠난 후의 어둠을 느끼게 해줍니다. 한편 첫 앨범 <Worrisome Heart>에 수록된 ‘Love Me Like A River Does’를 마지막 곡으로 노래하면서 그녀는‘Wild Is The Wind’의 한 소절을 먼저 부르고 노래를 시작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슬픈 창법이 니나 사이먼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냅니다.

저는 이 다섯 곡의 라이브 곡들을 들으면서 이내 선글라스를 끼고 지팡이 혹은 마이크 스탠드에 의지한 채 힘겹게 서서 노래하는 그녀-이 모두 교통 사고의 후유증 때문입니다-를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충분히 위태로우면서도 강한 그녀의 존재감을 쉽게 느끼시리라 생각합니다.

2009년 4월 이 앨범이 발매되었을 때 저는 이 앨범이 올 해의 인상적인 보컬 앨범으로 기억되리라는 예상을 했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디럭스 에디션이 발매되면서 글을 추가하고 있는 11월 현재까지 이 앨범은 세계 각국의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큰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이 대로라면 2009년을 빛 낸 앨범 중 하나로 꼽힐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디럭스 에디션이 발매될 수 있었던 것이겠죠? 자 그럼 이제 본 앨범으로는 체념-극도의 슬픔-희망으로 이어지는 서사적이다 못해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빠른 감정의 기복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보너스 CD를 통해서는 무대에서 관객을 부드럽게 사로잡는 멜로디 가르도의 매력을 경험해 보시죠. 제 추천사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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