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ve Me That Slow Knowing Smile – Lisa Ekdahl (RCA Victor 2009)

포크 사운드에 담아낸 삶의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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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엑달의 두 가지 모습

  스웨덴 출신의 리사 엑달은 대부분의 음악 애호가들에겐 재즈 보컬로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When Did You Leave Heaven>(1997), <Heaven & Earth>(1998) 그리고 <Sings Salvador Poe>(2000) 등의 앨범을 통해 그녀는 비스킷처럼 바삭거리는 소녀 같은 목소리로 재즈를 날아갈 듯 가볍고 산뜻하게 노래하여 많은 재즈 애호가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특히 보사노바 곡들로 가득했던 2000년도 앨범은 그녀가 지닌 매력이 100% 발현된 사랑스러운 앨범이라는 호평 속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아마 국내에서도 이 앨범으로 인해 리사 엑달이 알려지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월드 뮤직을 좋아한다면 리사 엑달은 전혀 다른 존재일 수 있다. 오랜 시간 포크를 노래해온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할 것이다. 그렇다. 사실 리사 엑달은 지금까지 두 가지 음악적 삶을 살아왔다. 하나는 스웨덴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포크를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삶이고 다른 하나는 오래된 스탠더드 곡을 귀엽게 노래하는 재즈 보컬로서의 삶이다. 요즈음에는 그 경계가 다소 무디어졌다고는 하지만 재즈와 포크를 함께 노래한다는 것은 사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두 개의 자아를 지녔다면 가능할까? 하지만 리사 엑달은 지금까지 이 두 가지 음악을 전혀 어지럽지 않게 잘 소화해왔다. 여기에는 적절한 활동영역 분배가 한 몫 했던 듯싶다. 그러니까 포크는 스웨덴어로만 노래하고 재즈를 영어로만 노래하면서 명확하게 국내와 국외로 활동 영역을 구분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를 재즈 보컬로 아는 감상자와 포크 가수로 아는 감상자들간에 이해의 충돌이 없었다. 물론 스웨덴에서는 그녀의 모든 활동이 알려졌을 테니 혼란스러웠을 법도 하다. 하지만 북유럽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자국의 전통 음악과 세계 유행 음악이 조화로이 수용되고 있음을 생각하면 그리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포크로 세계 감상자들에게 새로이 다가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활동 가운데서도 리사 엑달은 포크 계열의 음악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적어도 최근 그녀의 활동을 보면 그렇다. 2000년도 <Sings Salvador Poe>이후 그녀는 베스트 앨범을 제외하고 두 장의 앨범을 녹음했는데 모두 포크 계열의 노래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이번 앨범도 재즈와는 거리가 있는 포크 계열의 음악을 들려준다. 특히나 이번 앨범은 그녀의 포크 앨범 가운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앨범의 전곡을 영어로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그녀의 포크 노래들은 스웨덴어권 감상자들을 중심으로 사랑을 받아왔다. 오로지 재즈만이 세계의 모든 감상자들의 사랑을 받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 앨범을 통해 그녀의 재즈에 익숙해진 감상자들에게 포크 음악을 사랑해달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리사 엑달에게 재즈와 포크라는 장르 구분은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적인 성공 이후 스웨덴어로 노래한 포크 앨범만 두 장을 녹음하고 9년 만에 녹음한 영어 앨범에서도 재즈가 아닌 포크를 노래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장르 구분보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의 삶, 그리고 그 삶이 가져다 주는 음악적 영감이 아닐까 싶다. 특히 그녀에게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은 특히나 중요한 삶의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 친구부터 업무를 통해 연결된 직장 동료, 심지어는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나 고양이로부터도 영향을 받는다. 그들과 이렇게 저렇게 만나고 웃고 싸우고 이야기를 나누고 행동을 같이 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삶의 길로 나아가곤 한다. 이것은 리사 엑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실제 그녀가 재즈를 노래하게 된 것은 스웨덴의 유명 재즈 피아노 연주자 피터 노르달과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보사노바를 노래하게 된 것 역시 지금 평생을 약속하고 그녀와 함께 살고 있는 브라질 작곡가 살바도르 포와의 만남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이후의 포크 앨범 두 장도 라스 빈너뵉이라는 스웨덴의 유명 싱어송라이터와의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다. 최근 떠오르고 있는 스웨덴의 싱어송라이터 마티아스 브롬달과의 만남을 통해 이번 앨범의 방향이 결정될 수 있었다.

성숙한 삶의 성찰이 담긴 긍정의 노래들

한편 그녀가 포크를 노래하게 된 것은 포크가 그녀의 내면, 삶의 감정을 표현하기 적합한 양식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언급했다시피 그녀는 포크를 노래하며 전문 가수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곡들을 직접 써왔다. 그래서 그녀의 노래에는 그녀가 살면서 느꼈을 일상의 작은 느낌들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재즈의 경우는 좀 달랐다. 다른 사람이 만든 곡들을 노래했으며 내면적 깊이보다 소녀 같은 귀여움, 20대의 생기발랄함을 앞에 더 내세웠다. 그렇기에 30대에 접어든 이후 재즈를 노래하지 않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과론적일지 모르지만 포크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그녀의 최근 앨범 활동이 이를 입증한다.

30대 후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가 이번에 선보이는 앨범에 담긴 음악도 포크 계열의 노래들이다. 그리고 역시 전곡의 가사와 음악을 그녀가 직접 썼다. 그리고 그 곡들 안에 담긴 정서는 단순한 귀여움을 넘어선다. 30분이 약간 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녀는 충만한 자아로 깊이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바람, 세상의 시선 변화와 상관 없이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자신만의 길을 가고자 하는 낙관적 의지 등 30대 후반을 살아가는 성숙한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표현한다. 그리고 이러한 내면적 정서는 그다지 많은 악기를 사용하지 않은 단출한 편성, 어쿠스틱과 일렉트릭이 적절히 안배된 귀를 자극하지 않는 편안한 연주, 소녀 같은 청순함은 여전하지만 한결 차분해진 그녀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포크 성향의 사운드를 통해 훨씬 더 직접적으로 감상자의 가슴을 파고든다. 몽환적이고 향수를 자극하는 소박한 사운드는 가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감상자를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게 하고, 현재의 긴장을 잊게 하며, 그를 통해 삶에 대한 새로운 긍정을 꿈꾸게 한다.

물론 재즈 스탠더드 곡들을 노래하는 그녀의 귀여운 모습, 살랑거리는 보사노바를 노래하는 청순한 모습에 빠져 있던 감상자들에게 이번 앨범은 다소 낯선 음악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막상 앨범에 담긴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또 다른 만족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만족은 음악적인 차원을 넘어 지루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극적인 사건 없이 소소하게 흘러가는 우리의 일상이야 말로 가장 행복한 것이라는 깨달음에 가까운 것이리라. 특히 삶의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이라면 속삭이는 듯 잔잔하게 다가오는 그녀의 노래들은 모든 것은 다 지나가리라는 작은 위로, 희망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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