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ery Thought Of You – Nicole Henry (Banister 2008)

향기 그윽한 커피와도 같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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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있어 대중성과 예술성은 양립하기 어려운 모순의 관계를 맺고 있는 듯합니다. 즉, 대중적이면 예술적이지 못하고 예술적이면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것이죠. 실제 보다 많은 감상자들을 대상으로 작품을 만들다 보면 작품 자체의 개성이라든가 아니면 창작자의 개성이 희미해지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합니다. 반대로 작품이 매우 독특하면 그만큼 보편적인 공감을 얻기가 매우 어려워지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음악도 예술의 하나인 만큼 이러한 대중성과 예술성의 모순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음악적으로 매우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지만 그다지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사라진 앨범들, 반대로 수천만 장이 판매되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앨범을 구입하여 듣는 감상자조차도 ‘이 앨범은 소비용일 뿐 음악적으로는 별로’라 생각하는 앨범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존재합니다. 꼭 명반은 아니더라도 오래오래 기억되는 앨범들의 상당수는 음악에 대한 평단의 호평과 대중적인 호응을 동시에 획득한 것들입니다. 사실 앨범을 녹음하고 그것을 대량 복제해 시장에 내놓는 행위에는 음악적 고민만큼이나 대중적 성공에 대한 기대가 전제되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음악성과 대중성이 조화를 이루는 앨범이야말로 뛰어난 앨범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니콜 헨리의 앨범 <The Very Thought Of You>도 대중성과 음악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괜찮은 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한다고 해야 할까요? 부드럽게 흐르는 사운드와 여성적인 매력을 물씬 풍기는 니콜 헨리의 노래가 편하게 다가오면서도 그것이 마냥 가볍게만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녀의 노래는 일상을 어루만지는 배경 음악 정도로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 그녀의 달콤한 노래들은 편하게 듣는 것도 좋지만 조금 더 자신에게 주목하면 더 좋은 느낌을 얻을 수 있으리라 말합니다.

그런데 니콜 헨리의 대중적인 측면은 의도적인 것이라기 보다 그녀의 음악적 경험을 통해 자연스레 형성된 것입니다. 그녀는 재즈를 노래하기 전에 팝 음악, 그것도 댄스 뮤직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노엘 생거라는 DJ겸 제작자를 만나 댄스곡을 나이트 클럽을 돌며 노래하면서 전문 음악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그 가운데 1998년에 발표했던 한 곡은 빌보드 댄스 뮤직 차트에 8주간 랭크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외에 그녀는 각종 광고음악을 노래하는 등 대중적인 음악활동을 오래했습니다. 게다가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것을 살려 몇몇 광고는 물론 독립 영화 등에서 직접 연기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팝 가수로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지는 못했어도 나름 그녀의 고향인 필라델피아 마이애미에서는 입지를 탄탄히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한 재즈 트리오가 그녀의 노래를 듣고 초청하면서 재즈를 노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력을 지니고 있으니 그녀의 노래가 대중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음은 극히 자연스러운 결과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그녀의 노래를 팝 가수가 재즈를 노래했다, 그렇기에 가볍다는 식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그녀는 지난 2007년 프랑스 남부의 주앙 르 팽 재즈 페스티벌의 일환인 ‘Jazz à Juan’ 콩쿠르에서 보컬부분 대상을 받았을 정도로 재즈에서도 뛰어난 노래 솜씨를 인정 받고 있습니다. (참고로 지난 2005년에는 나윤선씨가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실제 이번 앨범에서 그녀가 재즈를 노래하는 방식은 진지합니다. 재즈의 전통을 존중하고 그 흐름 안에 자신을 위치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앨범의 첫 곡 ‘That’s All’만 들어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 곡에서 그녀는 부드러우면서도 재즈가 요구하는 강약의 역동적인 조절이 재즈 보컬의 참 맛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어지는 ‘Almost Like Being In Love’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쾌하게 스윙하는 트리오 연주를 배경으로 리듬을 타는 그녀의 노래는 살짝 땀이 흐를 정도의 기분 좋은 열기를 만들어 냅니다. 그 외에 ‘Waters Of March’같은 곡은 원래 상큼 발랄한 보사노바 곡이지만 그녀는 보사노바 특유의 나른한 긴장보다는 과거 엘라 핏제랄드가 노래했던 것처럼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는 식으로 노래합니다.

반대로 그녀가 자신의 과거를 무시하고 오로지 재즈 보컬의 정통성을 인정 받으려는 듯 보수적인 태도로 노래한다고도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재즈적인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 팝 가수로서의 이력을 적절히 활용하여 노래합니다. 선율 자체를 과도하지 않으며 힘을 내세우기보다 백인 보컬처럼 힘을 빼고 매끄럽게 흐르는 듯 노래하는 것이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에‘What’ll I Do’나 ‘At Last’같은 곡은 분명 재즈의 흐름 안에 놓이면서도 엘라 핏제랄드나 사라 본 같은 재즈의 디바보다는 아레사 프랭클린 같은 소울이나 R&B 쪽의 보컬의 영향을 떠올리게 합니다. 심지어 어번 포크 계열의 노래를 즐기는 싱어송라이터 K.J 덴허트의 곡인‘I Found You’같은 곡이나 이어지는 니콜 헨리 본인이 작곡한 ‘All That I Can See’같은 곡은 휘트니 휴스턴 같은 보컬의 느낌마저 줍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All The Way’나 마지막 곡‘Make It Last’처럼 피아노 바에서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담아낸 곡은 흑인 보컬을 넘어 린다 론스타드 같은 성인 취향의 백인 여성 보컬을 연상시킵니다. 한편 그녀가 장르를 가로지르고 흑백을 아우르며 노래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제작의 영향도 컸습니다. 이번 앨범에는 니콜 헨리 외에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레지나 벨 등의 유명 팝 가수들의 앨범을 제작한 할 바트와 레이 찰스의 앨범 <Genius Loves Company>를 제작한 돈 미젤이 제작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요. 분명 이 두 제작자가 있었기에 재즈 특유의 블루스적인 맛을 잃지 않으면서도 R&B나 소울 등의 요소가 자연스레 스며든 사운드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국 이번 앨범에서 느껴지는 재즈의 깊은 맛과 대중적인 측면의 적절한 조화는 어떤 수적인 비율로 환원할 수 없는, 자신만의 노래를 하려는 과정에서 생긴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만의 노래는 기교적인 측면보다 그 노래가 연상시킬 수 있는 이야기를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녀 스스로 감상자가 되어 노래한다고 할까요? 그렇기에 이번 앨범은 강렬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싫증이 쉽게 나지도 않는, 잊을 만 하면 다시 듣고 싶어지는 앨범으로 기억되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치 설탕이 과해 끈적거리지도 않고 반대로 설탕이 부족해 너무 쓰지도 않은 향기 그윽한 커피처럼 말입니다.

한편 니콜 헨리는 지난 2005년 에디 히긴즈 퀄텟의 내한 공연 당시 함께 한국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너스 레이블에서 에디 히긴즈와 함께 녹음한 두 번째 앨범 <Teach Me Tonight>도 국내에 공개된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니콜 헨리의 존재감은 국내에서 그리 크지 않은 듯합니다. 감히 말한다면 거의 무명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세 번째 앨범을 통해 많은 감상자들이 니콜 헨리에 주목하게 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재즈와 다소 거리가 있는 포크 성향의 (재즈) 앨범이 주를 이루는 지금의 재즈 보컬 현실에서 오래 두고 감상할 수 있는 보물 하나를 건졌다는 기쁨과 함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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