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A New Groove – 남경윤(John Nam) (EMI 2008)

트리오로 표현한 남경윤의 정제(淨濟)된 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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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의 매력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사람마다 정서적 혹은 음악적 측면에서 다양한 답변이 있을 수 있다. 그 가운데 나는 늘 새로움을 지향한다는 점이 재즈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재즈는 늘 과거의 자신과 다른 새로운 자신을 찾아 탐구에 탐구를 거듭한다. 이것은 재즈의 전통을 존중하는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연주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어떤 연주자가 되었건 그는 늘 순간의 진실을 즐긴다. 그리고 그 순간의 감흥을 위해 평소 부단한 연습을 한다. 그러하기에 하루가 다르게 무수히 많은 재즈 앨범들이 발매될 수 있는 것이고 또 같은 이유로 이 앨범들이 각자의 개성으로 빛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거와의 연속성 자체를 부정한다면 변화는 있을지언정 발전을 이룰 수는 없다. 따라서 연주자는 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눈을 지녀야 한다. 즉, 과거를 긍정하며 현재를 바라보고 나아가 미래를 꿈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현재의 음악에 새로운 탐구적 성과를 덧붙이는 형식, 그러니까 자신의 음악적 외연을 확장하는 식으로 음악을 변화, 발전시키곤 한다. 하지만 남경윤은 이번 세 번째 앨범을 통해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그것은 새로운 무엇을 추가하기 보다 기존의 것을 덜어내는 방식, 나아가 기존 자신의 사운드를 정제(精製)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무엇보다 편성의 변화에서 발견된다. 이번 앨범에서 그는 보컬이 참여한 곡을 포함해 모든 곡을 트리오 편성으로만 녹음했다. 첫 앨범 <Energy And Angular Momentum>(2005)에서 두 개의 밴드로 각각 트리오와 퀄텟 연주를 하고 두 번째 앨범 <No Regret>(2007)에서는 한 개의 밴드를 중심으로 트리오와 퀄텟 연주를 했던 것이 이번 앨범에서 드디어 하나의 트리오로 고정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편성의 변화는 음악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야기시켰다. 먼저 다양한 연주자들과 퀄텟 혹은 트리오로 연주할 때-특히 첫 앨범 시절에는 거대한 규모의 사운드를 지향했다. 그래서 건축적이고 역동적이며 극적인 흐름이 강조되었다. 그 결과 남경윤의 피아노 또한 전체의 일부로 위치하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그러나 두 번째 앨범에서부터 규모를 줄이고 개인적인 면을 강조하기 시작하더니 이번 세 번째 앨범에서는 드디어 보다 자기 중심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이처럼 밴드의 규모를 줄이고 그와 함께 외연적 사운드를 내면적인 방향으로 선회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남경윤이 음악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새로움 자체의 탐구보다는 자신의 음악적 내면을 탐구하면서 거추장스러운 것을 덜어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사운드가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정제의 과정에서 그동안 감추어져 있었던 남경윤의 민감하고 섬세한 부분들이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앨범은 투명하다 싶을 정도로 깨끗하고 섬세한 남경윤의 서정성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남경윤의 서정이 흔히 생각하는 발라드가 아닌 다채로운 리듬의 향연 속에서 드러난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 가운데 트럼펫 연주자 프레디 허바드의 70년대 명곡을 연주한 “Sky Dive”, 그리고 남경윤 본인이 쓴 “City Funk”와 앨범 타이틀 곡인 “Into A New Groove”등 펑키한 리듬의 곡들이 제일 먼저 귀에 들어온다. 이러한 펑키 리듬에 대한 남경윤의 관심은 그가 재즈의 과거에 대한 폭 넓은 시선을 지녔다는 것, 그리고 현재 재즈 밖에서 진행되고 있는 음악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준다. 하지만 펑키 리듬 특유의 울퉁불퉁한 진행 가운데서도 그의 피아노만큼은 너무나 평정하다. 그렇다고 그가 펑키 리듬에 적응을 하지 못하다거나 어긋나는 연주를 펼친다는 것은 아니다. 펑키 리듬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 보다 자신의 정서적 틀에 걸러낸 결과다. 그렇기에 남경윤의 펑키 사운드는 몸을 흔들게 하는 흥겨움보다는 그 뜨거움을 이성으로 정화한 듯한 지적인 맛이 강하다.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모든 것을 관조하는 듯한 분위기의 연주다.

펑키한 리듬 외에도 남경윤은 전통적인 스윙을 비롯하여 왈츠(All My Soul), 5/4박 같은 변박(I Should Care) 등의 리듬을 다채롭게 사용했다. 하지만 이들 곡 역시 리듬 자체가 드러나기 보다는 이들 리듬을 강력히 통제하며 자신만의 연주를 펼치는 남경윤의 피아노가 우선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 피아노 연주는 기교 중심이 아니라 그 너머의 정서적 표현을 추구한다. 실제 과감하지만 안정적으로 구축되어 있는 화성과 달변(達辯)이다 싶을 정도로 촘촘하게, 하지만 과장 없이 흐르는 멜로디로 이루어진 남경윤의 피아노는 리듬의 변화를 안으로 흡수하고 밖으로 조율하며 여유로운 흥겨움, 낭만적 사랑, 삶에 대한 긍정적 힘, 과거에 대한 따뜻한 애수의 정서를 표현한다. 따라서 리듬을 비롯한 여러 음악적 시도들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남경윤의 내면을 투명하게 실현시키는 도구일 뿐이다. 그렇기에 미디엄 템포 이상의 연주에서도 남경윤의 피아노는 서정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다채로운 리듬 속에서도 남경윤이 자신의 내면을 편하게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그와 함께 한 맷 브류어(베이스), 아리 호닉(드럼)의 충실한 조력 때문이다. 각각 그렉 오스비, 곤잘로 루발카바, 크리스 포터, 쟝 미셀 필크, 케니 워너 등 유명 연주자들과 함께 하며 자신의 명성을 구축하고 있는 이 두 연주자는 지난 앨범에서부터 남경윤과 함께 했던 만큼 정규 트리오라 해도 좋을 정도로 탄탄한 호흡을 들려주는데 주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피아노에 자극을 주고 또 그 연주의 흐름에 정서적 무게를 부여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아리 호닉의 드럼은 경우에 따라 피아노와 대조(對照)와 조화(調和)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전체 사운드를 입체적으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해주었다.

한편 지난 앨범에 이어 이번 앨범에서도 남경윤은 게스트 보컬과 함께 “For All We Know”, “Like Someone In Love”, “I Should Care”등의 곡을 녹음했다. 아마도 앨범의 대중적인 성격과 전체 흐름을 지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가 아닐까 생각되는데 이번 앨범의 경우 특히 평소 그와 클럽 연주를 종종 함께 해온 김윤선이 노래하고 있어 흥미를 자극한다. 김윤선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뉴 포트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 섰으며 현재 첫 번째 솔로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는 보컬이다. 하지만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 보컬의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이 앨범에서는 남경윤이 선택한 사랑의 스탠더드 곡들을 청아한 분위기로 노래하고 있어 색다른 느낌을 주지 않을까 싶다.

남경윤은 원래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다가 음악, 그것도 재즈로 전공을 바꾼 특이한 이력을 지녔다. 이런 독특한 이력에 대한 선입견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늘 남경윤의 음악에서 완벽한 건축미를 지향하는 이성적 측면과 촉촉하고 부드러운 추상적 정서를 지향하는 감성의 측면이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왔다. 그런데 지난 두 앨범에서 이 두 상이한 성향이 다소 위태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드디어 이상적 조화, 나아가 완벽하게 하나가 되는 통합의 지점을 찾지 않았나 생각된다. 형식적 차가움에 매몰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감상에 치우치지도 않는 지성적 균형이 이 앨범에서 느껴진다. 그래서 이번 앨범을 나는 남경윤의 음악적 매력-음악적 정서적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난 앨범이라 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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