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 (Meets) Bossa – Juliana Aquino (Peacelounge 2008)

개인적인 여유의 음악으로 다시 태어난 디스코 시대의 명곡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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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삶의 행복을 가늠하는 가장 큰 미덕은 무엇일까? 돈과 명예가 따르는 직업, 고가의 초고층 아파트……이런 것들이 먼저 떠 오르지 않을까? 실제 이런 것들이 갖추어진다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남을 부러워하지 않은 삶일 수는 있지만 행복한 삶이라 정의하기엔 어딘지 모자라는 부분이 있다. 실제 나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우면서도 삶에 권태를 느끼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내가 생각하기에 행복 그것도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행복한 삶을 이루는 가장 큰 요소는 여가, 한가함이 아닐까 싶다. (흔히 말하는 구직자의 할 일 없음으로 착각하지 말자.) 비현실적일 수도 있는 텅 빈 대화 혹은 농담, 흘러가는 시간을 천천히 관조할 수 있는 삶이야 말로 행복한 삶이라 나는 생각한다. 물론 경제적으로 풍족하다면 이런 행복을 누리기 더 쉬울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삶이 경제적 풍요 뒤에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런 ‘느린 삶’은 속도, 빠른 일 처리, 고효율이 최고의 미덕인 현대 사회가 꿈꾸는 이상인 동시에 저항이기도 하다.

나는 보사노바야 말로 여유가 있어 행복한 삶을 꿈꾸게 하고 잠시나마 그런 삶을 사는 듯한 행복한 착각을 하게 만드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기승전결의 구조, 치열한 연주 등으로 집중을 요구하는 다른 음악들과 달리 보사노바는 자신에게서 관심을 거둘 것을 요구한다. 그렇기에 뭔가 얻기를 바라고 이해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심심하고 무미 건조한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다. 하지만 마음(삶)의 여유가 있고 그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에게 보사노바는 시간을 관조하고 그 비어 있음에서 충만을 느끼게 해주는 음악이 된다. 흔히 말하는 고급스러운 삶(Luxury Life)을 그린다는 라운지 음악에 보사노바가 종종 사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듣고 있는 브라질 출신의 여성 보컬 훌리아나 아키노(Juliana Aquino)의 <Disco (Meets) Bossa>는 보사노바가 복잡하고 답답한 현대 도시의 삶에서 일종의 신선한 공기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그것은 앨범 타이틀이 의미하듯 디스코 시대의 흥겨운 명곡들을 보사노바의 틀 안에서 새로이 노래했기 때문이다. 앨범에서 그녀가 노래하는 곡들은 산타 에스메랄다(Santa Esmeralda)의 히트 곡인 ‘Don’t Let Me Be Misunderstood’을 시작으로 디스코 시대를 대표하는 비지스(Bee Gees)의 ‘Stayin’ Alive’, 글로리아 게이너(Gloria Gaynor)의 ‘I Will Survive’, 샤카 칸(Chaka Khan)의 ‘I’m Every Woman’, 도나 섬머(donna Summer)의 ‘On The Radio’, 스테파니 밀스(Stephanie Mills)의‘Never Knew Love Like This Before’등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 많은 사람들을 열광하게 했던 디스코 시대의 명곡들이 빠른 디스코 템포의 옷에서 보사노바의 유유자적(悠悠自適)한 옷으로 갈아 입었다. 이들 곡들을 훌리아나 아키노는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포근한 목소리로 마치 현재라는 시공간을 벗어난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로 노래한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강조하지도 않는다. 보사노바의 한 부분이 되기를 희망하는 듯 그녀를 감싸는 사운드에 스며들듯이 노래한다. 따라서 이 앨범에서 훌리아나 아키노는 단순한 보컬의 위치에서가 아닌 편안하고 부드러운 사운드의 조율자 혹은 연출자의 위치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아닌 음악을 강조하기!

한편 앨범 타이틀은 ‘Disco Meets Bossa’이지만 사실 음악을 두고 말한다면 ‘Disco Becomes Bossa’가 더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디스코 시대를 빛낸 곡들이 완전히 보사노바에 녹아 들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녀는 디스코 시대의 영광을 과감히 추억으로 돌리고 그것을 부드럽게 순화시켰다. 그래서 ‘Don’t Let Me Be Misunderstood’의 중독성 강한 기타 리프,‘Can’t Take My Eyes Off You’의‘빠~밤’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던 브라스 섹션,‘I Will Survive’의 절정의 후반부, ‘Stayin’ Alive’의 가성과 속도감 등 각 곡에서 디스코 시대를 상징했던 부분들을 과감하게 생략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보사노바 특유의 부드러운 여백으로 대신했다. 그 결과 빠른 템포에서 들을 수 없었던 멜로디 자체의 달콤함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었다.

그렇다고 훌리아나 아키노가 멜로디의 숨은 매력을 새로이 드러내는 것으로 만족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다른 장르, 스타일의 곡을 보사노바로 노래한 앨범들 가운데 상당수는 보사노바라는 리듬에만 충실한 나머지 사운드를 단순하게 가져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담백함이 아닌 핵심이 빠진 심심한 음악으로 비추어지기도 했다. 그녀도 이를 의식했던 모양이다. 자연스러운 어쿠스틱 사운드에 펜더 로즈, 드럼 프로그래밍 등 세련된 일렉트로 사운드를 가미했다. 그리고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만드는 보사노바 특유의 분위기 속에 도시적인 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기타, 트럼펫, 색소폰 등의 재즈적인 솔로를 추가했다. 그렇기에 앨범은 여유가 있는 사람은 물론 여유가 필요한 사람까지 감싼다. 이러한 도시적인 감각은 그녀가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뉴욕)과 브라질을 오가는 활동을 했고 또 밀톤 나시멘토(Milton Nascimento), 카에타노 벨로주(Caetano Veloso), 질베르토 질(Gilberto Gil), 갈 코스타(Gal Costa), 쟈반(Djavan) 등 브라질 음악의 대표 인물들과 함께 하는 와중에 많은 광고 음악 활동을 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한편 유명 팝 히트 곡들을 리메이크했다고 해서 그녀와 이 앨범을 단순한 상업중심적인 앨범으로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실제 이 앨범은 브라질은 물론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그녀를 바쁘게 만들었다. 그 가운데 ‘Don’t Let Me Be Misunderstood’는 브라질 글로보 방송국이 제작해 큰 인기를 얻은 드라마 ‘Páginas da Vida 삶의 페이지’의 주제 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은 앨범이 단순히 상업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잘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멜로디를 강조하지 않고 보사노바 특유의 감미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서 그녀는 편곡 외에 현 브라질 대중 음악을 대표하는 셀주 폰세카(Celso Fonseca) 를 비롯하여 레오 간델만(Leo Gandelman), 토루카토 마리아노(Torcuato Mariano), 마르시오 몬타로요스(Márcio Montarroyos) 등 브라질 음악의 실력자들을 대거 불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앨범은 1990년부터 음악 활동을 시작한 그녀의 첫 앨범임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다시 이야기를 처음으로 돌려 왜 디스코 시대의 명곡들을 보사노바로 노래한 것이‘보사노바가 복잡하고 답답한 현대 도시의 삶에서 일종의 신선한 공기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인지’말해야겠다. 사실 디스코 음악은 디스코텍 혹은 클럽 등에서 여러 사람과 몸을 맞대고 땀 흘리며 춤추기 위한 것이었다. 반면 보사노바는 삼바의 집단적이고 축제적인 성향에 반하여 개인적인 조용함을 지향하는 살롱 음악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디스코 시대의 히트 곡들이 보사노바를 만났다는 것은 타인의 시선, 조직 중심의 삶이 나만의 시간을 누리는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삶으로 이동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나를 잊을 정도로 바쁘게 살다가 잠시나마 차 한잔을 마시며 나를 돌아보며 그 잠깐의 여유에 행복을 느낄 때 배경이 되어주는 음악. 그것이 바로 보사노바이고 이 앨범은 그 보사노바의 매력을 다시 한번 강화시킨다. 그러면 이제 앨범을 들으며 나만의 호젓한 시간을 즐겨보자. 지친 일상에서 꿈꾸었던 행복하고 Luxury한 삶의 순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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