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맥러플린(John McLaughlin) 공연

*2005년 존 맥러플린 내한 공연에 맞추어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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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연주자 존 맥러플린은 음악 장르와 상관없이 기타 연주 자체만으로도 감상자를 황홀경에 빠지게 만들 수 있는 기타 거장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화려한 기교를 기본으로 블루스, 재즈, 스패니시 기타 음악, 롹, 인도 음악 등 다양한 음악을 기타 연주로 들려준다. 그리고 그가 연주하는 이 다양한 색깔의 연주들은 모두 완벽에 가깝다. 게다가 놀랍게도 이러한 존 맥러플린의 음악적 다양성은 긴 시간을 통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그의 음악 수행 초기에 이미 확립되었다.

초기 시절

1942년 영국의 요크셔에서 태어난 존 맥러플린은 11세 때부터 기타 연주를 시작했다.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던 그에게 기타의 매력을 알게 해준 음악은 바로 머디 워터스 같은 흑인 블루스 연주자들의 음악이었다. 한편 당시 그는 학교에서 포크 음악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 때부터 플라멩고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14세가 되던 해에는 집시 재즈 기타의 전설인 쟝고 라인하르트를 비롯하여 탈 팔로우, 웨스 몽고메리 등의 재즈 기타 연주를 듣고 재즈 기타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이어 17세 때 비로소 마일스 데이비스와 존 콜트레인의 연주를 듣게 된다. 이 두 연주자의 연주는 존 맥러플린에게 즉흥 연주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기회를 제공했다. 이렇게 재즈를 들으며 기타와 즉흥 연주에 대한 관심을 심화시키는 한편 그는 라벨, 스트라빈스키, 바르톡 등의 현대 클래식 작곡가들의 음악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시간이 보다 더 흐른 뒤 인도 음악을 접하고 음악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삶에도 큰 영향을 받게 된다. 따라서 70년대 음악적 구루가 되어 이끌었던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나 오늘 공연을 보게 될 “Remember Shakti”는 이미 존 맥러플린이 20세가 되기 이전에 운명적으로 결정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20대에 들어섰을 무렵 존 맥러플린은 한 개인이 평생에 걸쳐 접해도 그리 쉽지 않은 다양한 음악을 사랑한다 할 정도로 깊이 이해했으며 또 이를 전 존재를 바쳐 피나게 연습한 기타 연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는 성급하게 자신의 음악적 자양분을 소진하려 하지 않았다. 차근차근 전문 연주자로서 입지를 다져나갔는데 그 중 최근 재즈 보컬로 새롭게 변신하여 입지를 확고하게 다진 조지 페임(George Fame)이 이끄는 그룹 Blues Fame에서 활동하면서 약간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블루스 롹의 대가들인 그레이엄 본드, 잭 부르스, 진저 베이커 등과 연주하면서 막 얻기 시작한 명성을 견고히 다져나갔다. 그 결과 1968년 색소폰 연주자 존 셔먼, 드럼 연주자 토니 옥슬리 등과 함께 첫 번째 앨범 <Extrapolation>을 녹음하기에 이르렀다.

70년대의 비상(飛上)

첫 앨범을 녹음하고 나서 그는 1969년 드럼 연주자 토니 윌리엄스가 이끄는 그룹 Lifetime의 앨범 <Emergency>(1969) 녹음에 초청되어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 때 그의 나이는 26세였는데 이 미국 행은 그에게 운명적인 만남을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토니 윌리엄스와 함께 연주한다는 것도 그에겐 큰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놀라움이 있었으니 바로 그에게 재즈 즉흥 연주에 관심을 갖게 했던 마일스 데이비스와의 만남이었다. 언제나 재즈에 새로움을 불어넣어왔던 마일스 데이비스는 당시 지미 헨드릭스로 대표되는 롹 기타 사운드의 장대함과 화려함 그리고 이에 대한 대중들의 환호를 목격하고 새로운 형태의 재즈를 구상 중에 있었다. 물론 그 때까지 마일스 데이비스는 존 맥러플린의 연주를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클럽에서 존 맥러플린을 만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In A Silent Way> 앨범 녹음에 그를 초청했다. 이 세션은 가히 존 맥러플린을 위한 세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시 마일스 데이비스는 건반 연주자 조 자비눌이 작곡한 앨범 타이틀 곡을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존 맥러플린에게 마치 기타를 연주할 줄 모르는 듯 테마와 코드를 연주하라고 지시했는데 그것이 곡을 신비로운 분위기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이 연주를 마일스 데이비스는 매우 흡족해 했고 급기야 퓨전 재즈의 태동을 알린 명반 <Bitches Brew>에서는 존 맥러플린의 이름을 건 곡을 작곡하여 헌정하기도 했다.

마일스 데이비스를 거쳐간 많은 연주자들처럼 그 역시 마일스 데이비스와 함께 연주하면서 새로운 음악적 눈을 떴다. 그래서 1971년 그는 드럼 연주자 빌리 콥햄, 오르간 연주자 얀 해머 등과 함께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를 결성했다. 이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는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존 맥러플린의 모든 음악 경험이 현대적으로 결합된 음악을 들려주었다. 이 그룹에서 존 맥러플린은 화려한 기교가 빛나는 기타 연주를 바탕으로 롹의 강렬함, 정교하고 섬세한 즉흥 연주가 어우러진 대가적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로 인해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는 재즈를 넘어 70년대를 대표하는 그룹의 하나로 큰 발자취를 남기게 되었다. 특히 1972년에 녹음한 앨범 <Bird Of Fire>는 퓨전 재즈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명반으로 기억되고 있다.

80년대 이후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를 해산시키면서 그는 70년대 그의 음악 인생 전반을 장식했던 뜨거움마저 뒤로 하고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 새로움이란 바로 인도 음악이었다. 1975년 바이올린 연주자 라크쉬미나라야나 샹카르와 타악기 연주자 쟈키르 후세인 등 인도 연주자들과 Shakti라는 그룹을 결성하면서 그의 인도 음악 여정은 시작되었는데 사실 그는 이미 1970년 인도 음악과 철학에 빠져 자신의 이름을 마하비시누 존 맥러플린으로 개종하기도 했었다. 따라서 그가 인도 음악의 색채가 강하게 느껴지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룹 샥티에서 존 맥러플린은 전자 기타 대신 어쿠스틱 기타로 다른 인도 연주자들과 평화로이 호흡하며 인도 음악의 명상적인 분위기를 차분하게 표현해 내었다. 그리고 그 연주는 단순히 분위기 자체를 적당히 표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라가’라는 독특한 스케일부터 복잡한 리듬과 미묘한 음의 변화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진정 인도 음악의 특징을 제대로 이해한 후에야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룹 샥티 역시 그리고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1978년 3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룹 샥티는 존 맥러플린에게 있어 큰 추억으로 남아 1997년 인도의 독립 50주년을 기념하여 Remember Shakti라는 이름으로 재 결성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그룹 샥티를 해산하고 그는 알 디 메올라, 파코 데 루치아와 함께 <Friday Night in San Francisco>(1980)와 <Passion Grace and Fire>(1982) 등의 앨범을 녹음하며 화려한 스페니시 기타 연주 솜씨를 선보이기도 했다. 1997년 내한 공연을 펼치기도 했었던 이 기타 트리오의 연주는 음이 명확하면서도 연주 속도가 매우 빠른 속주 기타의 황홀경을 느끼게 해주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존 맥러플린은 음악적인 새로움보다 자신의 음악 경험을 바탕으로 과거를 새롭게 정리하는데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피아노 연주자 빌 에반스를 추억하는 <Time Remembered>(1993), 존 콜트레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After The Rain>(1994), 라이프타임의 새로운 재현이라 할 수 있는 밴드 The Free Spirits의 <Tokyo Live>(1994)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의 잔영을 드러내었던 <The Heart Of Things>(1997) 같은 앨범을 녹음하면서 자신의 음악 인생을 새롭게 정리해 오고 있다. 오늘 우리가 보게 될 Remember Shakti 역시 존 맥러플린의 음악 인생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새롭게 시작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현재 존 맥러플린은 여러 공연, 재즈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같은 음악 스타일로 연속해서 두 해를 공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 해 Remember Shakti를 이끌고 공연했다면 다음 해에는 보다 정통적인 편성으로 연주하고 또 그 다음 해에는 퓨전 재즈 스타일의 편성으로 공연하는 등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에게 다가가려 하고 있다. 이제 노장의 반열에 접어든 그만의 배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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